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바로 수영이다. 나는 좀 특이한 물체질을 가지고 있는데, 물을 아주 좋아하지만, 깊은 물 공포증도 함께 가지고 있다. 정확히는 바다 깊은 곳 공포증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릴 적에 부산에서 부모님과 아빠 친구분들과 해수욕장을 간 적이 있다. 나는 너무 어리니까 당연히 튜브를 끼고 있었는데, 아빠 친구 두 명이 나를 데리고 좀 더 깊은 곳으로 갔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에게는 발이 닿는 곳이고, 손으로 내 튜브를 꼭 잡고 있으니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한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어린 나는 갑자기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그 감각이 너무나 무서웠다. 내 딴에는 싫다고 표현을 한 것 같은데 삼촌들은 괜찮다고 나를 달래며 데리고 들어갔었다.
푸른 하늘, 울렁거리는 바다 물살, 튜브를 꼭 쥔 내 손, 튜브를 잡고 앞장서는 두 삼촌의 어깨, 갈 곳을 잃은 두 발의 감각, 수평선 위로 어깨 위만 빼꼼히 나온 머리들이 가득한 풍경.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은 나임에도 그때 그 상황이 짧은 영상으로 선명히 기억이 난다. 물 공포증이 정말 심한 사람은 물을 쳐다만 봐도 무섭다고 하는데 그런 경험을 한 것 치고는 다행히도 물을 꽤 좋아하는 사람으로 컸다. 그래서 항상 마음 한편에 언젠가는 수영을 제대로 배우고 이 공포를 이겨내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생각은, 아니 그 필요성은 독일에 와서 더 강해졌던 것 같다. 독일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다 수영을 할 수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내가 아주 열심히 물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아닌데도 살면서 여기저기서 그냥 느끼게 된다. 위 사진은 다른 곳에서 가져온 사진이지만, 아마 여름에 유럽 여행을 한 사람들은 물가에서 저런 풍경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패들 보딩, 구명조끼를 왜 아무도 안 입지?
함부르크는 큰 호수를 비롯해서 좁은 물길이 많아 여름이 되면 패들 보딩을 하는 사람이 많다. 호기심에 패들 보딩을 하러 갔었는데 아주 어린아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 직원도 내게 굳이 먼저 묻지 않았다. 처음에 구명조끼 없이도 잘 다녀와서, 두 번째 때도 자존심 부린다고 안 입고 혼자 나갔다가 빠져 죽을 뻔했다. 휴.
여름날 호수로 그냥 뛰어들기
여름 하면 떠오르는 유럽 풍경 중 하나는 입고 있던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호숫가로 뛰어드는 사람들이다. 꽤 깊은 호수인데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물속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노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튜브를 끼고 노는 사람은 아주 어린아이가 아니면 보기 드물 정도다. 심지어 어린아이들 중에서도 잘 본 적이 없다. 한 번은 과제 조사 겸 호숫가에 간 적이 있는데 갑자기 같이 온 독일 친구들은 다 물로 뛰어들어가고 미리 물놀이 도구를 준비해오지 못한(?) 나만 물밖에서 땀을 뻘뻘 흘렸던 경험도 있다.
유럽 휴양지 바닷가, 나 홀로 튜브 수영
몇 년 전, 운 좋게 사람들 틈에 끼어서 몰타에 간 적이 있다. 거기는 배를 타고 깊은 바다로 나가서 수영하고 올 수 있는 코스가 있었는데 배 타는 걸 좋아해서 나도 같이 참여했다. 정말이지 그 많은 여행객들 틈바구니 속에 튜브를 챙겨 온 건 나뿐이었다. 기왕 간 거 뽕을 뽑기 위해 나는 당당히 튜브를 끼고 바다로 내려갔지만, 앞에 말했던 깊은 물 공포증 때문에 긴장해서 마음 편히 즐기지는 못했다. 사실 그전까지는 발이 안 닿는 곳에 아예 안 가서 몰랐는데, 이때 내가 진짜 공포증이 있구나라는 걸 새삼 느낀 계기이기도 했다. 한국에서야 물놀이를 가도 나 말고도 많은 성인들이 튜브를 끼거나 구명조끼를 입고 있으니 위화감이 없었는데 독일에서 혹은 유럽 휴양지를 가면 튜브를 찾는 사람은 나뿐이라 괜스레 민망해진다. 그래도 물놀이 온 김에 뽕은 뽑아야 하니까 혼자서 당당히 튜브와 스노클링 마스크를 쓰고 꿋꿋하게 놀고는 왔지만, 다음에는 다른 유럽 사람들처럼 나도 튜브 없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다는 의욕이 퐁퐁 샘솟았다.
내가 만난 모든 독일 사람들이 다 수영을 할 줄 아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수영 수업이 독일 학교 의무 교육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30대 중후반인 내 독일 이웃의 이야기에 의하면, 자기가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알아서 수영을 배우고 수영 배지 같은 걸 받아왔어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이 되는 듯하다. 보통 아이들이 3, 4학년일 때 수영 수업이 진행된다. 목적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졸업 후에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 심지어 어떤 친구는 자기가 7살 때 부모님이 따로 선생님을 구해서 더 일찍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아프거나, 혹은 독일어를 못하거나 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이렇게 학교 시스템 상 정해진 시간만큼 수영을 배우고 수영을 할 줄 안다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수영을 배우는 문화도 독일은 한국과 전혀 다르다.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독일은 대부분 '평영'을 가장 먼저 배운다. 자유형부터 배우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왜냐면 이들이 학교에서 수영을 배우는 주목적이 '스포츠' 보다는 '생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여나 물에 빠지는 일이 생겨도 가장 힘을 적게 들이면서 뭍으로 나올 수 있는 영법인 평영이 우선시된다. 평영은 머리를 물 밖에 내놓은 상태로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생존에 더 유리하다. 실제로 물놀이 중 내가 보았던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평영을 했다. 내게 가장 신기한 건 제자리에서 머리만 내놓고 물에 떠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긴장을 해서인지 자꾸만 가라앉는데 아주 평온한 얼굴로 물에 떠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자, 이제 나도 수영을 배워볼까?' 하고 마음먹고 뛰어들어보았지만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안 다녀봐서 잘은 모르지만, 한국도 경쟁률이 치열하다고는 들었는데, 함부르크에서는 그냥 수업 자체를 찾기가 어려웠다. 사람들 말로는 어딘가에 성인 대상 수영 수업이 있다고는 하는데, 내가 정보력이 부족한 건지 내 눈에는 띄지 않았다. 수영 수업의 대부분은 아이들 대상이었다.
짐작컨대 대부분의 성인이 수영을 할 수 있는 나라이다 보니 수요가 없으니 공급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만약에 나처럼 수영을 못하지만 물놀이는 좋아하는 사람이 독일이나 유럽 어느 나라든 갈 예정이라면 한국에서 미리 수영을 배워오는 것을 추천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독학을 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갔을 때 수영 잘하는 친구에게 1일 코칭을 받고, 독일 와서는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서 배우고 있다. 10월부터 정기권도 끊었다. 더 자유로운 물놀이를 하고 싶어서, 또 생존을 위해서 시작한 취미지만, 수영은 논문-일만 반복되는 요즘 일상에 한 줄기 활력이 되어주고 있다. '가야 하는데'가 아니라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즐길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하루. 다음에는 독일 수영장에서 느낀 독일 수영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