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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Nov 16. 2024

애매하게 억울한 날에는
이렇게 생각해보자

외국인청에서 겪은 일이 계속 하루 종일 억울했던 날

이번주는 지난 주에 썼던 독일 수영장에 관한 글이 조회수가 15,000이 훌쩍 넘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기분 좋은 날이 더 많았지만(감사합니다!), 그 중 하루가 꽤 억울했다. 


연말은 내게 학생 비자 연장의 시즌이다. 이번에도 외국인청에 방문 예약을 다녀왔다. 하지만 어쩐지 순탄하던 작년과 달리 이것저것 꼬여 조금 복잡해졌다. 그래서 중간에 증빙 서류를 한 번 더 보내야 했는데, 여기서 억울한 일이 생겼다. 분명 이메일에는 11월 11일까지 제출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11월 12일에 만난 공무원은 내게 서류는 최소 방문하기 10일 전까지 보내야 한다며 핀잔을 줬다. 이메일을 쓴 사람과 내 방문 예약을 담당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고, 나는 억울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상황에 대한 이해도 당시에는 바로 되지 않았고, 외국어라서 로딩이 한참 걸리는 점도 그랬다. 그래도 큰 피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그 현장은 그냥 내 잘못인 것 마냥 빠져나왔는데 이게 묘하게 하루 종일 나를 괴롭혔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난 시키는 대로 잘 지켜서 했는데
자기들끼리 소통이 안된거면서!
아, 억울해!



가장 답답한 건 이 상황이 너무나 애매한 케이스라는 것이었다. 불만 사항으로 접수할 만한 일도 아니고, 이미 그 상황은 끝났고, 아마도 나는 앞으로 평생 그 공무원을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운동도 다녀오고 재밌는 예능을 보기도 하고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고 난 후 이제 좀 풀렸나 싶었는데 갑자기 또 훅 하고 머릿 속에 떡 하니 자리를 차지 하고 앉은 이 생각, 그리고 감정. 아, 이제 좀 벗어나고 싶은데. 내일까지 이어지려나 고민하던 찰나 문득 온 깨달음. 


잘잘못을 다 떠나서 일단 이런 내 모습을 내가 스스로 인정을 못하고 있었다. 내 마음은 너무 억울해 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또 다른 내면의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큰 피해 본 것도 아니고 그냥 잊어버려. 다 큰 어른이 뭘 이런 일로 억울해 하고 있어. 쪼잔해 보여.’라며 나를 비웃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 말이 크게 틀린 것도 아니라 반박 불가였고, 내 마음 속은 억울함을 외치는 소리와 그를 비웃는 소리로 하루종일 시끄러웠던 것이다.


그런 마음을 눈치채자마자 우선 억울한 감정을 망설이 없이 인정해 준다. 


’맞아, 이건 너무 억울해. 억울해 해도 돼. 어떤 감정이건, 감정 자체는 옳아. 무엇보다 이건 인간적인 일이야. 크든 작든 자기가 하지 않은 일로 지적 받아서 기분 좋을 사람이 없지. 누구든 말이야.’ 


여기서 주의해야 할 건, 감정이 늘 옳다고 해서 감정적인 태도도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억울하다 해서 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야 말로 내가 경계하는 성숙하지 못한 태도다. 이 경계가 너무 강하다 보니 미처 내 감정을 인정해 주지 못하고 감정까지 꾹꾹 눌러앉고 모른 척 했나보다. 감정과 감정적인 태도를 분리하는 것은 긴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어쨌든 억울한 건 맞지만, 이 일로 불만 메일을 넣어봤자 안그래도 바쁜 외국인청 업무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러면 거주허가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다. 억울하긴 하지만 그럴 만큼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행여 내 불만을 외국인청에서 읽고 성실히 답변한들 무슨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직원 교육을 다시 시킨다고 할까? 담당 공무원이 징계를 받을까? 그럴리도 없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외려 내가 부담스러울 일이다. 사과를 할까? 독일 공무원이 그런 일로? 아니다. 왜 애초에 더 일찍 연락하지 않았냐고, 다음부터는 더 빨리 면담을 신청하라고  할 것이 뻔했다. 


상황은 억울하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그 공무원이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다. 내게 메일을 쓴 사람이 날짜를 잘못 썼든, 아니면 내게 말한 공무원이 메일을 제대로 보지 않았든 그건 실수이거나 오해이거나 둘 중 하나가 일이 아직 손에 익지 않았거나 혹은 너무 바빠서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한결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렇게 누그러지고 나니 역지사지가 되고 차갑고 단단하던 억울한 감정이 잘 달궈진 후라이팬 위의 치즈가 녹듯 흘러내렸다. 


’그래, 나도 살면서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억울하게 만든 적이 있겠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내게 말하지 못한 억울함을 가진 사람이 있겠지. 앞으로도 생길 수도 있겠지.’ 


살다보면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이름도 모르는 타인에게 받은 친절을 갚을 길이 없어 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친절을 베푸는 것 처럼, 누군가의 의도치 않은 실수를 이해해주면 또 다른 누군가가 내 실수를 이해해주지 않을까. 삶이란 그렇게 친절과 이해가 멀리 멀리 서로 다른 사람에게로 퍼져나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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