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Jul 06. 2017

독일의 밤과 음악사이

함부르크의 헤드폰 파티를 다녀오다



 함부르크는 아무것도 모르고 방문하면 즐길 거리가 없어보이는 도시 같아도, 사실 찾아보면 재밌는 파티나 이벤트가 매주 주말마다 벌어지고 있다. 다 쫓아가기가 버거울 만큼 재밌어 보이는 게 많이 있다. 그중 함부르크에 오면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사진들 중 가장 '쿨'해 보였던 파티.

바로 '헤드폰 파티'였다.




헤드폰 파티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사진. 헤드폰 하나 꼈을 뿐인데 다들 쿨해 보인다.




모두가 귀에 헤드폰을 쓰고 형형색색의 레이저 불빛을 뽐내며 신나게 춤을 추는 이 파티가 나에겐 꽤나 신선하고 흥미로워 보였다. 이 파티는 열리는 주기가 두세 달에 한 번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독일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도 이 파티가 열렸었는데 그때는 몸살감기에 걸려서 친구의 초대를 받고도 가지를 못했다. 그러던 중 다음번 파티가 열릴 때가 왔다. 전 회사 동료들이 모여서 간다는 말에 선뜻 따라나섰다. '드디어 여기를 가보는 구나'라는 설렘이 잔잔하게 마음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헤드폰 파티의 시작 시간은 10시. 

보통 클럽에 갈 때는 너무 일찍 가도 썰렁한 건 한국이나 여기나 비슷해서 밤 11시~12시나 되어야 움직이는데 이 날은 웬일로 친구들이 조금 서두르는 기색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예전에 늦게 가서 헤드폰이 모두 나가버리는 바람에 몇 명은 함께하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했었다고. 들뜬 마음으로 왔는데 얼마나 시무룩 해하며 돌아갔을까. 





파티가 열리는 곳은 Feldstraße역에서 내려서 도보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보이는 KNUST라는 이름의 술집이다. 실내에서도 실외에서도 즐길 수 있게 공간이 구분되어 있고, 역과도 거리가 가까워서 오래 걷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았다. 멀리서 형형색색의 레이저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만원이 좀 안 되는 입장료를 내고 팔목에 도장을 찍고 들어갔다. 신분증을 가져오는 걸 깜빡했었는데 다행히 신분증 검사는 하지 않았다.




KNUST 내부 스테이지의 모습 





사진으로 봤던 것처럼 쿨 해 보이고 멋있었지만, 사실 이 파티의 첫인상은 '음...?' 이런 기분이었달까. 한마디로 적응이 되질 않았다. 처음 홍대 클럽에 갔을 때 멍 때리면서 30분을 두리번거리며 적응을 못했던 스무 살의 내가 생각났다. 좀 다른 게 있다면 괴리감이었다. 여기는 정말 헤드폰으로만 음악이 나와서 헤드폰을 받으러 가는 동안, 내 눈에 비친 사람들은 그저 좋아서 웃고 날뛰는(?) 이상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진짜 이상하다는 건 아니고, 대충 이런 거다.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헤드폰을 낀 사람이 흥에 넘쳐서 바운스를 타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볼 때 내가 그 음악을 듣고 있지 않으면 엄청난 괴리감이 드는 경험을 다들 한 적이 있을 텐데, 딱 그 느낌이다. 혹은 최근에 무한도전 이효리 편에서 한 명의 멤버만 헤드폰을 끼고 춤을 추고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음악을 듣는 장면에서 나왔던 그런 괴리감이기도 하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손목에 도장을 받고 들어가서 KNUST라는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친구들을 따라 오른쪽 구석으로 가니 헤드폰을 대여해주는 곳이 있다. 헤드폰은 신분증을 맡기거나 10유로를 보증금으로 맡기고 대여할 수 있다고 했다. 보통 10유로를 맡기는 듯했다. 헤드폰을 반납할 때 맡긴 신분증이나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일찍 온 편이었는지 헤드폰을 기다리는 줄은 길지 않았다. 




이것만 쓰면 변신(?)할 수 있는 마법의 아이템




헤드폰의 오른쪽에는 음량을 조절하는 버튼이 있고, 왼쪽에는 채널을 고를 수 있는 버튼이 있다. 이 파티의 매력 포인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점인데, 헤드폰에서 3가지 채널에서 각각 다른 스타일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나는 내가 원하는 음악을 골라서 들을 수 있었다.




아래 3가지 채널 중 골라들을 수 있었다.

1. Indie / Alternative / Rock
2. Pop, Hip Hop, Electropop, Soul
3. 80s / 90s




나는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하지만 굉장히 수동적으로 듣는 편이라 아무 노래나 잘 듣는다. 즉, 음악에 조예가 깊지는 않다. 게다가 나의 추억팔이는 당연 한국 노래이다 보니 이렇게 외국에 나올 때는 음악에 공감하기가 쉽지는 않은 편이다. EDM을 좋아하는 한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미국 클럽이 주로 유명 팝송을 섞은 EDM 위주라면, 독일은 클럽마다 음악적 특색이 강하고 정말 순수 리듬과 박자로 이루어진 EDM이 많아서, 독일 클럽 음악은 아는 노래가 나와야 신이 나는 나와는 좀 맞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과하게 믹싱 되지 않은 원곡 그 자체가 나오는 곳이라 나도 조금씩 흥이 나기 시작했다.




같은 곳에 있지만 각자 다른 음악을 들으며 즐기고 있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비눗방울을 불고 있길래 뭔지 물어봤더니 선착순 300명에게는 비눗방울을 나눠주었다고 한다. 아쉽지만 비눗방울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갔다. 적응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익숙한 노래들이 흘러나오자 리듬에 몸을 맡기고 립싱크를 하기 시작했다. 같이 간 친구가 다른 노래를 듣고 있으면 따라서 채널을 바꿔 들어보기도 하고, 내가 듣는 채널에서 신나는 곡이 나오면 친구에게 손짓하며 얼른 이 채널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곤 했다. 그러다 가운데 몰린 사람들이 미친 듯이 흥에 겨워 서로 몸을 부딪히며 날뛰기 시작하길래 어떤 노래인지 궁금해서 채널을 돌렸다. 미친 척 하기 딱 좋은 락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문화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특정 사람들은 이런 빠른 템포의 락이 흘러나오면 음악이 끝나는 내내 서로 어깨를 부딪히고 뛰어다니면서 광분한다. 너무 광분하고 뛰어다닐 때는 그 사람들을 피하느라 영상을 담지는 못했는데 적당히 부딪히는 건 글 맨 아래에 영상으로 올려두었다. 같이 뛰어다녀볼까 잠깐 생각도 했지만, 독일의 문도 무거워서 잘 못 여는 내가 저 안에 들어갔다가는 나는 그냥 찌부가 돼서 나올 것 같아서 참았다. 




풍선을 던져주자 다들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신이 났다





시간이 좀 흐르자 갑자기 머리 위로 풍선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비눗방울에 이은 두 번째 이벤트였다. 다들 자기 쪽으로 풍선이 오면 서로 풍선을 치려고 폴짝거렸다. 오랜만에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특히 나는 어릴 때부터 내 앞에 '공' 같은 게 오면 반사적으로 손이나 발이 나가는 습관이 있어서, 풍선이 올 때마다 초스피드로 손이 튀어나갔다. 아마 내가 멀리서 이 모습을 봤다면 어린아이들의 유치한 장난감이라고 생각하며 어른인 척 했겠지. 하지만 막상 비누 방울을 바라보고 풍선을 튀기고 있자니 내 몸도 마음도 여전히 그 기쁨을 기억하고 즐거워하는게 분명히 느껴졌다. 



 노래는 정말 다양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 제목이나 가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일일이 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알만한 유명한 팝송이 많이 나왔다. (참고로 독일인들도 꽤 미국 문화에 심취해 있다)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Everybody,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 심지어 나중에는 크리스마스의 대표곡 Last Christmas 까지 나왔다. 이렇게 유명한 곡들이 나오면 마치 우리가 밤사에서 코요테의 순정이 흘러나오면 다 같이 '오오오~ 오오오~' 하고 따라 부르듯이 다 같이 떼창을 하는데 이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사랑해요 떼창)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한국의 밤사 같은 느낌이었다. 



파티가 끝나는 시간은 아침 6시였지만 요즘 너무 일찍 자 버릇해서 피곤했던 나머지 더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말이 6 시지 요즘 이 곳에 해 뜨는 시간이 5시니까 정말 해 뜨고 나서 까지 노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다. 다음에는 해 뜰 때까지 한 번 있어보고 후기를 한 번 더 올려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음악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분위기 차이를 느껴보시라고 살짝 편집한 영상을 올리며 후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다음 헤드폰 파티 때도 또 가는 걸로 :) 




헤드폰 파티 1분 맛보기 영상: https://youtu.be/NH6RuO-C6PM























이전 04화 내가 갑이다, 독일의 택배 기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