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툴 시간이 없다

by 이이름


원래대로라면 퇴근길에 해가 지는 풍경은 꽤 볼만하다. 그걸 보는 마음 상태가 즐겁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멀어지고 집에 가까워지고 있지 않은가! 구름 사이로 새어 나오는 노란 빛줄기는 계시처럼 마음에 부신다. 그날은 그렇지 않은 날이었다.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뿌듯함이 아닌, 하루를 의미 없이 낭비했다는 좌절감에 잠식당한 채 나는 터덜터덜 지하철역을 올라왔다. 거기에 아내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태양이 저물고 있는 하늘 아래로 곧 망할 것 같은 불길한 분위기가 누렇게 펼쳐져 있었다.


아내는 언제나처럼 재잘재잘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내용은 그저 그런 것이었는데, 앞 동에 사는 아주머니를 마주쳤던 이야기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더 그저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울적하고 우울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아내가 알아주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재잘거림에 평소처럼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티를 냈다. 대신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봐 주겠지. 내가 별일이 있는 건 아니라고 하면, 그래도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나를 다독여주고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의 감정을 알려하겠지.


하지만 아내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내 반응이 없으니 말을 멈춘 것 같았다. 그러고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았다. 묻지 않으니 나는 별일이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간 후에도 우리는 조금 서먹한 상태로 저녁을 먹고 TV를 봤다. 아내의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나빠진 게 분명했다. 지하철역 앞에서는 괜찮았으니까. 아내의 기분을 망친 건 바로 나일 것이다. 나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 아내를 보고 나는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울적함이나 우울함보다 더 강한 에너지의 감정이 분출되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화가 나면 빨간색이 연상된다. 피가 머리로 솟구쳐서인가. 말 그대로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라서인가. 나는 빨간색이 되었다. 아내는 아직 분홍빛인 것 같다. 나는 아내를 같은 색으로 물들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조금씩 엇갈려가며 절정을 향해 빨갛게 물들어갔다.


결혼 생활은 조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선을 넘어서기 직전에 이성의 부름에 귀 기울이는 것. 나를 한 줌 내려놓고 상대방을 한 줌 더 올려놓는 것. 내 고집의 추가 너무 채워져 있지 않은지 살피는 것. 그리하여 어깨너비의 폭을 두 사람의 폭으로 넓혀가며 걸어가는 것. 우리는 각자 자기 말을 다 쏟아놓은 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누구나 이유가 있다는 걸 인정할 때 괴로움이 줄어든다. 그게 쉽지 않아서 문제지. 게다가 기대하면 괴롭다는 걸 안다. 그걸 알면서도 기대를 내려놓지 못해서 문제다. 나는 어쩌자고 아내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기대했던가. 내가 건네왔던 따뜻한 말이 저축처럼 쌓이는 것도 아니고, 찾아 꺼내 쓸 요량으로 맡겨놓은 것도 아니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다. 마음은 받으려고 주는 게 아니지 않은가. 물론 이런 생각은 박 터지는 다툼이 끝나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야 든 것이다.


하나하나 이유를 꺼내 놓고 말하다 보면 창피해진다. 파고 들어가다 보면 고작 그 정도 이유였던 거다. 상대방의 그런 작은 마음까지 아껴주고 가여워해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어차피 우리는 다 불쌍하고 조그마하고 곧 사라질 생명체. 다행히 아내는 내가 위로받고자 했던 마음을 이해해 주었고 나는 아내가 위로하지 못하는 유의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돌이켜보면 아내가 누군가에게 기운 내라거나 잘 될 거라는 식의 낙관적인 위로를 건네는 걸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그때서야 난 아내가 그런 위로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내가 그런 식으로 위로하지 못한다는 건 그런 식의 위로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내는 마음이 괴로울 때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내며 이겨내 왔다. 누군가에게 기댈 필요가 없었다. 혼자 해치워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때로 너무 차가워서 좀 심하다 싶을 때도 있는 아내다. 그게 항상 진심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아내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지만, 아내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내의 차가운 면을 대하면 거리를 두고 싶어 질지 모른다.


아내가 위로를 바라지 않는다면 나(남편)라는 존재가 아내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위기다. 그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대전제를 충족시키지 못하는데 생활만 있으면 뭐 하나. 마음이 창백하게 바랜다. 조마조마하게 묻는다.

“그럼 당신이 힘들 때 내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거야?”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으려고 했어. 그랬다가 잘못되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아서…….”

나는 아내가 부모님의 이혼으로 초등학생 시절부터 혼자 서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안다. 그만큼 외로웠고 그로 인해 혼자 선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때로는 매우 시니컬하고 염세적이라는 것도.

“그래서 그런 것 같아. 인생은 혼자 살다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나는 당신이 그렇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제는 안 그렇지. 오빠 덕분에.”


조마조마할 필요 없다. 위안이 되지 않는다면 만나서 같이 살았을 리 없다. 아니, 만나서 살다 보니 위안이 되었을 수도 있다. 순서는 중요치 않다. 세상은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처럼 화사한 빛이 된다.


아내는 내게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혼자 있기를 선택한다. 그래도 나는 아내의 표정을 살피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무슨 일이 있는지 계속 묻는다. 그래도 혼자가 되고자 한다면 너무 멀지 않은 곳에 혼자 있게 둔다. 아내는 내가 우울감에 절여져서 위로를 갈구할 때 외면하지 않기로 한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고, 내가 별일 없다고 하면 그래도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의 감정을 알려하기로 한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위안이 되기로 한다. 조금 더 서로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기로 한다.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불쌍하고 조그마하며 곧 사라질 테지만, 서로 가여워하고 서로 가장 크다 믿으며 함께 오래 삶을 나누기로 한 소중한 친구라는 걸. 다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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