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직장을 그만둔 지 5개월,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 한 지 14년째다. 최근 들어 이제 정말 끝이 다가오고 있구나, 생각하면서도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퇴사를 내년으로 미룬 채 도살장 끌려가듯 회사에 다니고 있다. 자발적 노예 중에서도 가장 불행한 노예의 모습으로. 아내는 자기 혼자 쉬고 있어서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나에게 미안해한다. 14년을 쉬지 않고 일한 후에 잠깐 숨을 고르고 있는 아내가 이 귀한 시간에 누군가에게, 그것도 남편에게 미안해서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나 때문에 오빠가 그만두고 싶어도 참고 다니는 것 같아서 미안해.”
“당신 때문이 아니고, 내가 내년까지 다니기로 해서 다니는 거야. 절대로 신경 쓰지 마.”
“그래도 내가 안 그만뒀으면 오빠가 쉬어도 되잖아.”
나는 이 대목에서 울컥한다.
“당신이 회사를 다니든 아니든 나는 내년까지는 다니고 그다음에 당장 때려치울 거야. 당신이 쉬어서 내가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야.”
그래도 아내는 썩 시원한 표정이 아니다. 이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다. 미래를 맡길 듬직함 같은 게 나한테는 없는 상태다. 내가 좀 더 의욕적이고 직업적인 성취욕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아내가 불필요하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미안하고 작아진다.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하게 회사를 다닐 정도의 정신 상태도 아니라서 문제다.
나는 상상의 장소로 도피한다. 유럽과 중동의 도시 중 열두 개의 도시를 선정해, 한 도시에서 한 달씩 살아보자던 약속. 포르투갈의 도시 포르투의 축구장 좌석 가격을 찾아보고, 이탈리아의 골목 커피숍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나 혼자 상상하는 게 아니고 기어이 아내를 끌어들인다. 춘천에서 살자는 약속. 춘천의 30평 아파트가 얼마인지 찾아보고, 구축과 신축의 가격 차이를 보며 혀를 찬다. 한적한 강가를 손잡고 거니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 혼자 상상하는 게 아니고 아내에게 그 모습을 떠올려보라고 재촉한다. 제주도에서 살아보자는 약속. 제주도 구인구직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아르바이트 자리가 나오는지 알아보고,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며 매일 바닷가를 산책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 혼자 상상하는 게 아니고 아내를 그 바닷가로 데리고 가기 위해 마음이 급하다.
아내는 올해를 방황하는 해로 삼고 있다. 그동안 궁금했지만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원 없이 해보기로 한 것이다. 플로리스트 수업이 끝나자 명리학 수업을 신청하더니 수요일마다 노트에 여덟 글자의 한자를 적어두고 이리저리 맞춰보면서 혼자 구시렁거린다. 뭐가 잘 이해되지 않는지 매번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동네 도서관에서 하는 무료 강연도 찾아다니고 카페에서 책을 읽다 피곤하면 집에 와서 낮잠을 잔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방송통신대학의 원예과에 등록하더니 요즘은 교재를 펼쳐놓고 강의를 듣는다. 마흔에 다시 학생 모드로 돌입하여 시간표를 짜는 아내. 할 때 확실히 방황하기로 한 듯해서 대견한 마음이 든다. 퇴사 후 잠깐 자신감을 잃었던 아내가 다시 그걸 찾아가는 것 같다.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고 보는 아내. 오빠는 회사 때려치우고 책 읽어, 내가 먹여 살릴게,라고 말하는 아내.
아내와 나는 한 회사에서 같은 일을 각자 15년씩 한 사람들이다. 특별히 기술이나 엄청난 지식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고, 그저 어쩌다 우연히 그 일을 하게 되어 그냥 눌러앉아 다니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 아내와 나는 지금까지 해 온 일을 다시 하거나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채로 마흔을 넘기며 방황하고 있다. 아내가 먼저 발을 뺐고 나는 한 발을 걸쳐 놓았지만 뺄 타이밍만 재고 있다. 우리는 아무런 기술도 경력도 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먹여 살릴 뾰족한 수는 사실, 전혀 없다. 가게를 접는 자영업자들의 한숨 소리를 뉴스에서 쉬지 않고 실어 나르지만,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인 것처럼 희망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책을 사면 당신이 사주를 봐주고 사주에 맞는 글을 엽서에 타자기로 적어서 선물로 주는 거야. 어차피 독립책방 같은 데는 컨셉이 중요하잖아. 아니면, 책을 한 권 사면 꽃을 한 송이 주는 거지. 아니, 아니, 꽃을 사면 책을 한 권 줄까.”
나는 작은 서점을 하면서 책을 읽고 글도 쓰고 싶다는 희망을 오랫동안 아내에게 얘기해 왔다.
“춘천도 좋고 제주도도 좋은데, 어디든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게 만들어야 돼. 우리 갔던 바라나시 책방처럼. 우리 있던 잠깐 사이에 몇 팀이 왔다 간 거야. 그럼 하루에 어림잡아 20, 한 달 매출 500이라 치면 이거 저거 떼면 200 남겠네. 한 명은 편의점 알바라도 해야겠는데…….”
때로 자신감이 차오르기도 한다. 그까짓 거. 언제는 확신을 갖고 살았나. 미래는 원래 불투명하다는 걸 잊은 적이 없지 않나. 우리는 아직 젊고, 각자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또, 성실하다. 한 직장을 15년씩 다녔다는 게 미덕은 아닌 시대이고, 근속의 이유가 진득함보다는 게으르고 용기가 없기 때문일 수 있지만, 일단은 성실한 편에 가깝지 않은가.
때로는 노예 중에서도 가장 불행한 노예인 상태로 언제까지고 이 회사를 다녀야 할 것 같다는 예감에 극도로 우울해진다. 그럴수록 상상의 장소로 도피하려는 나의 발걸음은 빨라진다. 여행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벽에 붙여놓은 세계지도는 너덜거린다. 아내에게 어서 이 여행에 합류하라고 재촉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아이를 낳고 싶어. 마음은 반반인데, 할까 말까 할 때는 해야지. 안 그러면 후회할 것 같아.”
나는 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어느 정도는 합의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적잖이 당황했다.
“그럼 우리 세계 도시 한 달 살기는? 서점은? 약속했잖아.”
“난 약속한 적 없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고 돌이켜 보니, 정말 그랬다. 아내는 한 번도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상상의 장소로 도피한 건 나였다.
“아이 낳으면 못해? 하면 되지.”
아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는 일의 무게에 짓눌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젓는다. 나는 순간 아내가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나지만 아내에게 화를 낼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아내의 바람을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낸다 해도, 핑계일 뿐이다.
끝없이 유예하며 현실을 외면해 온 건 바로 나다. 아내의 현실감각을 탓하지만, 사실 문제가 나에게 있다는 걸 안다. 나의 알량한 현실감각이 얼마나 자신을, 우리 부부를 옥죄고 있는가. 나에게는 현실감각 자체가 없다. 지금을 혐오하고, 있지도 않을 미래만 찬양한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을 바꿀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떠나고 싶고, 당장 모두와 연을 끊어버리고 싶지, 상황을 개선할 의지가 없다. 타인을 증오하다가 그 감정은 결국 자신을 향한다. 건강하지 못하다. 바로 그런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에게 아내가 손을 내민다. 아내에게도 뾰족한 수는 없다. 그러면서 아이를 낳자고 한다. 자신이 돈을 벌 테니 나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한다.
나는 어떻게든 이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어와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일하기가 끔찍이도 싫지만, 누군 안 그런가. 그러니 참는 수밖에. 머리가 다 빠질 만큼 스트레스를 받아도, 새벽에 깨서 잠들지 못할 만큼 회사의 누군가가 싫어도. 그냥 죽은 척 출근하는 거다. 나는 그걸 혼자서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손을 내민다. 아내는 아내대로 이 가정을 책임지려고 한다. 그냥 나를 뭉클하게 하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래서 더 뭉클해진다.
우선은 내일도 참고 출근하기로 한다. 우울함은 가시지 않았지만 절망할 정도는 아니다. 적어도 혼자일 때보다는 더 강해진 것 같다. 우리 둘을 한꺼번에 부러트릴 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뭇가지 여러 개를 모으면 부러지지 않는다며 형제애를 일깨우려던 옛이야기가 떠오른다. 전에는 이 이야기가 솔직히 유치하다 싶었는데, 이젠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