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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근 Aug 25. 2024

세 번째 생각 정리

만들어진 나의 모습

 요즘 들어서는 큰 사건도 없고, 이렇다 할 문제가 없다. 저번에 복잡한 생각들을 다 정리해서 그런지 기분도 굉장히 좋다. 그럼에도 생각을 정리하는 이유는 나 스스로가 이대로 괜찮은가에 대해서다. 아무런 사건이나 생각이 없다는 건 굉장히 안정돼 있다는 말이지만, 반대로 내게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말이다. 지금 나는 이 상태에 안착해 버린 게 아닐까 싶다.


 처음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가장 친한 친구가 내게 했던 말들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약간 극단적이기는 했지만, 듣고 보면 틀린 말도 없는 거 같고 오히려 정석이라고 느껴졌다. 그 친구가 한 말들은 대부분 이런 내용들이었다. ‘무언가 하나를 할 거면 그거에 진심을 다해서 최고가 될 정도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라거나 ‘처음 진심을 다해서 해봤는데 좋은 신호가 보이지 않으면 그 길을 벗어나서 빠르게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이걸 좋은 신호가 보일 때까지 반복해야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다.’라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지적하며, ‘대부분 게임이나 유흥거리를 하며 놀다가 자기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나중에 자기는 왜 최고가 되지 못하냐며 자책한다.’ 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나에 대해서 말한다고 생각했다. 이 친구가 돌려 말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바로 대부분과 연락을 끊었다. 물론 일상생활은 해야 되니까 기존에 하던 스터디나 가족과의 연락은 유지했다. 딱 그 정도만 유지했다. 다른 모임에도 나가긴 했는데 한 달에 한 번 정도 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번개모임에만 나갔다. 내가 잘 살고 있는가에 대한 정찰 느낌이었다. 번개모임 후에 헤어지고 나면 모두 연락처를 지웠다. 어차피 나한테 연락도 안 할 거고 나도 연락 안 할 거기 때문에 한 순간의 스트레스 풀이 겸 정찰 생각하고 연락처 유지를 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들은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어쩌면 연락이 안 올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막기 위한 일종의 자기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연락만 유지한 채 반년 간 개발만 했다. 심적으로는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결과는 훌륭했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는데,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는 좋았다.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그런 조언을 해주고 심적 안정을 준 그 친구에게도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최근 이에 대해 약간의 혼란이 생겼다.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그 친구도 그 친구의 영역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내 또래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을 했다. 극단적인 연습과 공부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처럼 되고 싶어서 그의 훈련 방식을 따라 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엄청난 성장을 이루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생각이 유해졌다. 조금은 쉬면서 해도 될 거 같다는 말이 그 친구 입에서 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 나도 꽤 힘들었기에 조금은 쉬면서 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던 차에, 그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해주니 뭔가 위안이 되면서도 나도 쉬어도 되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쉬었다. 놀러 다녔다. 하지만 쉬는 중에 난 그 친구만큼 실력을 쌓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직도 실력이 밑바닥이라, 그 친구처럼 쉴 수 없다.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극한까지 몰아붙여야 하는데 몸이 잘 안 따라준다. 번아웃이 온 것일 수도 있다. 아니었으면 좋겠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온 거 같다고 느끼고 있다. 이런 고민을 얘기하면 다들 내게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좀 쉬어도 되는 거 아냐?’라고 하는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엄청나게 무언가가 잘못 됐음을 느끼곤 한다.




 처음에 그 친구가 내게 극단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은 내가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하소연하듯이 이야기한 거라고 했다. 나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주변에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듯이 하소연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난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매일 게임하고 새벽에 늦게 자고 일어나 깨작 공부하고 다시 게임하는 사람이었다. 매일매일 시간을 버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친구가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말을 듣자,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사람들이 나를 너무 모범적인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았고 열심히 살려고도 안 했다. 다만 시키는 것은 다 했다. 학교에서도 수행평가나 숙제는 빠짐없이 다 해갔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가장 중요한 시험 성적이 그 누가 봐도 좋지 못하다고 판단할 성적이었는데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나를 모범생 대하듯이 대했다. 일종의 편애도 많이 받았다.


 편애받는 입장의 사람은 기분이 좋을 거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난 전혀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나의 본모습을 전혀 모른다. 그저 칭찬만 할 뿐이다. 내 실력은 저 밑바닥인데, 나를 그저 치켜세워주기만 하고 나를 칭찬해주기만 한다. 여기엔 내 잘못도 있다. 나도 그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칭찬만 받으면 내게는 성장이 없다. 내가 어느 부분이 부족한 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실력자가 된 거 마냥 착각 속에 살아간다.


 나는 내 친구가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고, 전혀 그렇게 살고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저 열심히 할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서 그런 게 아니고, 그저 내가 내 본모습을 열심히 숨겨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나의 본모습을 너무 숨기고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노는 모습, 내가 시간을 태우는 모습, 이런 모습들 모두 있는데 다들 나를 너무 좋게만 봐주고 있다. 내가 본모습을 보여주거나,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그저 열심히 제 할 일을 하거나 해야 한다. 아무래도 본모습을 보이는 것은 내 성향을 바꿔야 하는 일이라 힘들다. 하지만 어떻게 보든 내 할 일 하는 것은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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