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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범 Oct 22. 2023

11. 이어폰 빼고 내 말 들으면 안 돼?

MZ사회생활기록부 > 예비창업자 노윤재편 (11)

1월 24일, 성과 보고회     


<성과는 '열나 재밌는 동네'>


... 여기까지가 동. 말. 스. 사업의 개요입니다. 그럼 성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동. 말. 스. 는 10개월 동안의 로컬 방송을 통해 호수공원 이용자의 대부분인 90% 이상이 인지하고 이용하는 매체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용'이라는 건, 호수공원을 걸을 때 동. 말. 스. 방송이 나오면 이어폰을 빼고 스피커에 귀를 기울인다는 말입니다. 고전적인 디바이스인 '공원의 스피커'가 이어폰을 이겼다, 이건 트렌드를 거스르는 흔치 않은 일이죠. 전 동. 말. 스. 가 만든 콘텐츠와 커뮤니티의 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니 지역 상권에 대한 미디어의 영향력이 강해졌습니다. 덕분에 사업 기간 중 총 5,000만 원 대의 지역 광고 매출이 발생했습니다. 10여 곳의 제휴사가 생겼구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성과는 지역 스토리 확보입니다. 이 지원사업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죠. 

지역과 관련된 스토리, 즉 지역 주민이 보내준 사연은 사업 기간 중 구축한 전용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방송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꾸준히 접수되었습니다. 점점 증가 추세이기도 하죠. 아, 스토리는 정리해 담당자님에게 제출했고 구청에서도 요청이 있어 괜찮은 샘플 원고들을 보내 드렸습니다. 스토리는 총 800여 건입니다.


신규 채용은 1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업 기간 중 법인 등록을 마쳤습니다. 또한 다음 프로젝트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새로운 지역이나 제휴사와 협의를 진행 중입니다. 


다시 한번 이런 기회를 주고 담당자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윤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성과발표회에 참석한 기관 관계자들과 다른 스타트업의 대표들을 둘러봤다. 흥미를 보이는 이들도 보였지만 앞서 발표했던 ‘돈 잘 버는 사업’들의 발표에 비해서는 비교적 집중도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마무리군.'


윤재는 노트북을 만져 화면에 영상 하나를 띄웠다.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했던 영상으로 발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참고로 영상에 등장하신 분들은 실제 동. 말. 스. 와 함께했던 분들입니다.     


윤재는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경쾌한 음악)




영상의 도입부는 드론으로 촬영한 호수공원과 그곳을 둘러싼 동네, 마지막으로 호수공원의 중앙에 위치한 놀이공원 전경이었다. 다음으로 공원 벤치에 놓인 이어폰이 클로즈업되면서 자막과 내레이션이 흐른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듣고 있습니까?”


“뉴진스의 <디토>~.”

“영어 듣기 모의고사요.”

“유튜브 정치 채널이죠.”

“통화 중!”    

 

<5개월 후>


카메라는 공원에서 산책을 하거나 뛰는 사람들을 흝는다. 스피커에서 유머스러운 멘트가 나왔을 때, 사람들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흐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스피커에서 나오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아이가 스피커를 가리키며 말한다.     


“우리 유치원, 현수야!”     


화면이 전환되며 주점 ‘머머리 라디오 스테이션’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그들의 동. 말. 스. 에 대한 수다들이 티키타카 형식의 빠른 편집컷으로 이어진다.     


영상을 보던 관계자와 여러 스타트업 대표들은 종종 웃음을 터뜨렸다. 

바깥 날씨만큼이나 차갑고 사무적인 실내의 분위기를, 영상 속 머머리 스튜디오 좌담회의 '센' 수다가 4월 봄바람처럼 서서히 녹여갔다.


"시간 다 됐습니다."


진행자가 윤재 몫의 발표 시간이 종료됨을 알렸다. 시간 계산이 잘못 됐음을 깨달은 윤재는 당황했다. 그리고 허둥지둥 노트북을 손대며 말했다.


"잠시만요! 마지막 장면만 보여 드릴게요! 이 마지막 멘트가 동. 말. 스. 의 8개월이 가져다준 변화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킵, 스킵. 그리고 영상의 마지막 장면엔 여고생 수아의 술... 아니 분위기에 취한 발그레한 얼굴이 떠올랐다. 

수아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띠발, 우리 동네 열나 재밌어!”



*** 에필로그


윤재는 꿈을 꾸었다.

세기말 이후의 세상이었다. 세상은 바다와 쓰레기섬 그리고 몇몇의 생존자가 전부였다. 이 꿈에서 자주 보이는 장면은 피부의 염증이었다. 고름이 가득 찬 종기를 짜는 장면이 몇 번 등장했다.


윤재는 쓰레기섬을 헤매다 괴로워하는 지인을 발견했는데, 그의 피부에는 누에를 닮은 벌레가 반쯤 파고들어 있었다. 


“가위를 가져와!” 


윤재는 소리치면서 잠에서 깼다.

그리고 바로 핸드폰을 켜고 누에의 구조를 검색했다. 다리(촉수랄까?) 부위에 갈고리 형태의 구조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 지인의 피부에서 무사히 벌레를 빼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윤재는 꿈속의 세상이 암울하고 혐오스러운 배경과 사건, 그리고 생물들이 가득했음에도 이상하게 스트레스가 아니라 의욕이 가득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변했구나...'


윤재는 잠에서 깬 뒤에도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었다. 결과 발표를 마치고 난 다음 날 아침이었다.





오늘은 오후에 미팅이 잡혀있다. 사업 성과 발표를 하기 며칠 전 윤재에게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전 세계 최초 몰입형 오디오 광고 플랫폼? 꽤 거창한데?'


'제휴 검토 요청'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열고 메일 바디를 읽던 윤재는 서비스 설명의 수식어를 보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들어온 뒤  '세계 최초', '국내 최초'는 서비스나 사업소개서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식어다. 


첨부 파일을 먼저 열어보았다. 그리고 내용을 보는 윤재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 기술을 적용한 스피커를 이용하면 원하는 위치로만 의도한 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 게다가 주변에 소음이 있어도 명료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소개 영상에서는 갤러리에서 각 작품 앞 일정한 영역에만 스피커를 통해 해설을 전달하는 쓰임새가 소개되고 있었다.


'얼~'


윤재는 서둘러 다시 메일 바디를 읽어 보았다.


'노윤재 대표님. 유튜브에 올라온 우. 동. 스. 소개 영상을 보고 연락드립니다. 저희 스피커 기술과 대표님의 스피커 기반 방송 경험이 손을 잡으면 멋진 서비스가 만들어질 거란 확신이 들어 영상을 보자마자 메일을 보냅니다.' 


윤재는 메일을 아영에게 전달하며 메일 바디에 한 마디를 적었다.


"아영, 미팅 ㄱㄱ! 다음 프로젝트 준비 해야지!"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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