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잘 받아들이는 성향
'미국 상담학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존 크럼볼츠(John D. Krumboltz.) 박사가 발표한 이 이론은 인생을 살아가며 군데군데 놓인 우연적 기회들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의 성향' 혹은 '학습기술'을 다루고 있다.
연구를 위한 조사에서는 대학생에서 직장인들까지 진로를 정하는 데 우연적 사건들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답한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에 크럼볼츠 박사는 '우연을 잘 받아들이는 훈련, 혹은 성향을 키우면 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위한 학습 기술로 '호기심', '인내성', '유연성', '낙관성', '위험 감수' 등의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20대 시절 내게도 우연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늘 궁금했고 참아냈으며 어떻게든 되겠지라 생각했던 20대의 내 진로는 그 맥락 속에서 시작됐다.
대학교 2학년 때인 1995년, 난 등 떠밀려 미술 동아리 회장을 맡았다. 봄 전시회를 앞두고 학교 앞 가게들을 돌며 전시회 스폰서를 구하는데 신장개업한 어느 재즈바 사장님이 통 크게 가장 큰 광고상품을 구매해 줬다. 고마운 마음에 전시회 뒤풀이 2차로 그곳에 갔다. 하지만 선배들이 후원금을 내지 않고 죄다 사라진 탓에 15만 원의 외상이 생겼다. 그리고 '한 달간 밤 12시에서 새벽 2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 딱 15만 원'이라는 사장의 말에 난 몸으로 때우기로 결심했다.
당시는 심야영업 규제가 있어 밤 12시 이후 영업은 불법이었다.
하지만 꼭 그 시간에 찾아오는 단골들을 돌려보내지 못했던 사장님은 문을 걸어 잠그고 특별한 신호를 보내는 단골들을 받았다.
외상은 한 달 만에 갚았다. 하지만 매일 같이 범상치 않은 단골들을 만나면서 난 '긴 시간 동안 하나의 장소, 혹은 집단을 관찰하며 작성해야 하는 문화인류학(수강 중인 교양과목) 리포트'를 그곳에서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2학년 1학기 내내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제대를 다섯 달 남긴 1998년, 흠모하던 동아리 선배가 문화 월간지 한 권을 생일선물로 보내줬다. 문화와 거리가 멀던 나였지만 선배로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지속적으로 연락을 받고 싶은 마음에 잡지가 너무 재밌다며 제대 전까지 매달 그 잡지를 받아 볼 수 없냐는 의사를 전했고, 선배는 수락했다.
제대 후에도 매달 지하철 가판대에서 그 매거진을 구매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제대 후 복학 전까지 딱히 할 일이 없어 집에서 빈둥거리는 나를 보다 못한 어머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이라도 읽으라며 등짝 스매시를 날리셨다. 그날 시립도서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을 처음 만났다.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을 한 작가의 소설 몇 권을 읽다 보니 문득 나도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복학 후 일상에서 얻은 소재로 몇 편의 짧은 픽션을 쓰게 된다.
복학 후 처음 맞이한 추석에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던 형 친구는 내게 일본어 학원 수강권을 공짜로 넘겼다. 강남에 새로 문을 연 어학원에서 대폭 할인된 1년 수강증을 덜컥 사버렸는데 아직 한 번도 안 갔고 앞으로도 갈 일이 없을 것 같으니 나라도 다니라고 했다.
덕분에 딱히 관심 없던 일본어 공부를 난데없이 시작한다.
대학교 졸업 전 마지막 1년을 남긴 시점에 난 취업을 위해 준비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학점도 바닥이고 자격증도 인턴 경력도 하나 없었다. 뭐라도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무작정 휴학계를 냈다. 며칠 뒤, 진로 상담을 핑계로 선배들과 동아리방에서 술 한 잔 하고 캠퍼스를 내려오다 한숨 쉬며 올려다본 하늘에서 '일본 워킹홀리데이 지원자 모집' 플래카드를 발견한다.
그날부터 난 워킹홀리데이 비자 지원 준비를 시작한다.
휴학 후 아르바이트를 가는 길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하철 가판대에서 문화 매거진을 구매했다. 그리고 지면에서 '기자 아카데미 모집 공고'를 발견한다. (이 아카데미는 그 해 딱 한 번 운영됐다.)
휴학의 확실한 목표가 생겼다. 기자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따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 뒤 6개월 동안 난 무척 절제된 생활을 했다. 새벽에 도시락을 싸 일본어 학원의 첫 수업을 들은 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귀가 후에는 일본어 공부를 하거나 기자 아카데미 지원을 준비했다. 이어진 우연들이 선사한 건 작은 씨앗들이었고 싹을 틔우는 데는 집중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두 달 동안 준비해 기자 아카데미 공모에 지원했다. 지원에 필요한 건 증명사진 한 장, 자기소개서와 직접 취재한 기사 형식의 글이었다.
(1) 자기소개서
잡지사 편집부의 특이한 취향을 고려하면 평범한 자기소개서는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 끄적였던 픽션 중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작성한 글을 골랐다. 그 앞에 자기소개서란 타이틀과 함께 한 마디를 덧붙였다. 꾸미지 않은 내 내면을 보여주기 위해 1인칭 시점의 픽션을 보낸다고. (살인자가 등장하는,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였다.)
(2) 기사
기사는 앞서 말한 '재즈바 심야 단골 관찰기' 문화인류학 리포트를 손봐서 제출했다. 그 단골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일주일에 두세 번은 혼자 와서 자신이 키핑해 놓은 위스키를 홀짝이다 가는 여자 회사원, 올 때마다 다른 외국인 남자 친구와 동행하는 젊은 여자, 재즈바인데 락을 틀어달라며 CD를 챙겨 오는 아저씨, 재즈바 앞 파출소에 근무하는, 사장 누나를 흠모하던 경찰관 등이었다.
그해 7월의 어느 날 워킹홀리데이 3차 심사 합격 통지를 받고 오는 길, 여의도역 지하철 가판대에 새 매거진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합격자 공지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다. (경쟁률이 무려 25대 1이었다.) 난 지하철 안에서 미친 사람처럼 환호했다. 사람들이 황급히 물러나 흘끔거릴 정도로.
이렇게 우연의 씨앗들은 모두 싹을 틔웠다.
크롬볼츠 박사의 계획된 우연 이론의 학습 방식에 개인적으로는 '개방성'이라는 한 가지를 더 얹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 20대에 무언가를 꼭 이루겠다는 강박이 있었다면 우연이란 변수가 개입할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난 열려있었고 우연한 기회들을 잡았다. 그리고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는 그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선, '대책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다만 그땐, 그리고 나는 그랬다.
지금은 세상이 너무 빡빡하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