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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이 May 14. 2024

왜 외국에서 한식을 먹을까

민족의 정체성은 혀에 있다. 바로 맛과 언어다. 오늘은 정체성 강화를 위해 한식당에 왔다. 그간 한국음식은 귀국하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여행하면서 현지 음식을 주로 먹었다. 비상용으로 챙겨온 컵라면 외에 굳이 식당에 찾아가 한식을 먹은 적이 없는데 독일에 온 지 3주가 되니 웬만한 독일 요리는 다 먹어 봤거니와 빵과 샐러드 모두 지겨워져서 얼얼한 맛으로 민족의 얼을 찾아보고자 한다. 외국까지 와서 한식을 찾는 행위가 여행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음식에 대한 모험심 부족이라 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 고국의 맛은 끝까지 고수하고 싶은 무엇일 수도 있다.

      

저녁 8시, 손님이 어느 정도 빠졌으리라 생각하고 식당에 갔는데 가게는 만석이고 심지어 내 앞에 세 팀이 더 기다리는 중이다. 놀랍게도 대기손님 모두 한국인이 아니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이렇게 한식이 인기 있을 줄이야. 유리창 너머로 슬쩍 보니 식당 내부 손님은 대부분 20,30대 서양인들이었다. 그들도 이제 소세지와 감자가 지겨워진 게 아닐는지.

      

한국 보다 다소 높은 가격대이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진 않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참치김치찌개를 주문했다. 김치찌개 부재료에 두부, 참치, 돼지고기로 복수의 선택지를 두어 좋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직원이 유창한 한국어로 “김치찌개”를 발음했다. 요리 자체는 평범했지만 독일 여행 중 먹다가 지친 적이 없는, 남김없이 끝까지 먹은 최초의 요리였다. 함께 나온 반찬도 야무지게 위 속에 두둑이 챙겨 넣었다. 


생각해보면 하이델베르크 펍에 가서 여기서만 즐길 수 있는 생맥주를 마시는 것처럼 하이델베르크의 한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는 것도 오직 여기서만 가능한 유일한 경험이다. 이곳보다 더 맛있는 김치찌개야 많겠지만, 현지 식재료를 써서 하이델베르크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는 김치찌개는 여기에서만 먹을 수 있다.

     

계산과 작별인사를 모두 한국말로 하고 나왔다. 민족의 정체성을 제대로 충전하는 곳! 세계 어디에나 현지인이 하는 중국 음식점, 케밥집, 이탈리아 음식점이 있고 또 망하지 않는 이유다.

      

며칠 전부터 한국에 돌아가면 먹고 싶은 음식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고 있다. 이제 김치찌개는 지워야겠다. 



10월 15일, 하이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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