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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이 May 21. 2024

독일인의 유머

각지의 노동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독일에 오고 월요일이 좋아졌다. 금요일과 토요일 광란의 밤을 보낸 이들에게 일요일엔 숙취와 피로가 세금징수원처럼 찾아온다. 일요일의 거리는 토요일과 달리 한결 차분하고 가게는 대부분 문을 닫는다. 이런 패턴에 익숙한 현지인은 토요일 저녁 8시에 허겁지겁 마트에서 술과 먹거리를 담지만, 나는 ‘그래도 문 여는 곳이 있겠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민자들이 하는 키오스크는 열겠거니 했는데 아주 잠깐 오전에만 여는 식이다. ‘남들도 다 쉬는데 왜 굳이 우리가?’ 하며 동참하는 건지 아니면 인건비 문제인지 모르겠다.


대체휴일로 주말 포함해 사나흘 쉬어도 쉬면 뭐하냐며 연휴 마지막 날에 정상영업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인은 너무 많이, 오래 일한다. 주 40시간 근무제나 주 4일 근무제를 시급하게 도입해야 한다. 남들이 쉬면 따라 쉬게 된다. 주 52시간 근무가 일반적인 지금,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 것처럼.


피곤한 얼굴로 카운터 앞에 서고 노트북의 전원을 누르는 독일인을 보며 하이델베르크 기념품 사냥에 나섰다. 시내 카웨코 매장에서 민트색의 만년필을 샀다. 매일 일기 쓰다 보니 한국에서 가져온 펜의 잉크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뮌헨의 작은 문구점에서도 슈나이더 펜을 샀는데 지도 앱의 문구점 후기가 재밌다. 독일 개그를 이해하면 독일인이 다 된거라는데..


뮌헨의 높은 집세와 DHL에 대한 피곤함이 전해져 온다


뮌헨의 한 레스토랑 후기에 어떤 손님이 "살면서 이렇게 별로인 서비스는 처음이다"라고 남겼다. 그 레스토랑 관리자가 이렇게 답변했다.

"당신은 베를린에 안 가보셨군요?"

베를린에 있을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몇몇 독일인과 얘기해보면 그들이 바라보는 베를린은 상당히 진보적이다 못해 통제 불가능이란 느낌을 준다. 그래서crazy 라는 단어가 늘 등장한다. 


물건을 고를 때 실용성을 1순위로 꼽는터라 기념품도 다르지 않다. 지금 당장 쓸 수 있고 한국에서도 유용한지 자문한다. 냉장고 마그넷(이미 필요한 만큼 있다)이나 평소 입는 옷 스타일이랑 달라 여행 때만 잠깐 입고 장롱에 넣어 둘 옷은 사지 않는다.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디자인의 만년필, 현지 디자이너가 만든 티셔츠, 카페에서 직접 볶은 원두 등 평소 즐기지만 한국에서 살 수 없는 게 좋다. 집에 돌아가서 여행지에서 샀던 것을 입고 마시면서 이 물건을 손에 넣은 순간을 떠올린다.

내일은 벨기에 브뤼셀로 떠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생들과 밤샘토론을 벌이거나 철학자의 길에서 엄청난 사유의 결과물을 만들진 못했으나 이곳이 첫 날부터 매시간 보여준 아름다운 풍광은 오래도록 생각할 것이다. 저녁 먹으러 가는 길, 손을 뻗으면 덩달아 물들 것 같은 노을이 등 뒤로 펼쳐져 있었다. 멈춰서 사진 찍으니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서서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현요한 풍경도 계속 보면 익숙해지고 아름다움을 잊는다. 그게 우리다.


내 이야기를 하는 데 별로 재능이 없고 과시하거나 주목 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 올리는 글은 하루의 일부를 현미경처럼 확대하거나 지도처럼 아주 축소하여 적는다. 한국에서도 매일 일기를 쓰고 여기서도 틈나는 대로 기록하나 ‘내가 매일 글을 한 편씩 쓸 수 있을까’에 대한 도전에 가깝다.

얼마나 걸어왔나 궁금해 돌아봤을 때 내가 만들어 온 발자국이 보여서 이제 시작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독일에 온 지 3주가 흘렀고 앞으로 남은 날보다 지나온 날이 더 많아졌다.

 

한국에서 가져온 펜을 다 써서 카웨코 만년필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10월 16일, 하이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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