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was a dark and stormy night. 바야흐로 오늘 이 고전 문장이 아주 잘 어울리는 날이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나흘 동안 날이 매우 궂다. 부재한 동안 내 일을 해준 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미피 매장을 찾아가는데 우산이 몇 번 뒤집혔다.
갈색 얼굴과 몸에 무지개 옷을 입은 미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암스테르담 그 자체 같다. 서로의 다름에 우열이 없고 다양성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자신의 취향이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 우리에겐 언제쯤 올까. 가는 길이 멀어도 가지 못하는 길은 아니니까 포기하지 말아야지.
음반을 좋아하는 반려인을 따라 들어간 음반가게는 상당히 넓고 오래된 곳이었다. 단순한 음반 매장이 아니라 음악과 관련한 모든 것을 다루는 커뮤니티에 가까웠는데, 맥주 코너 속 건어물처럼 영화 OST 옆에 영화 포스터와 블루레이까지 진열돼 있었다. 퇴근 후 들렀는지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넘긴 샤프한 정장의 백인 남성(뭔가 헤비메탈을 살 것 같은 반전의 소유자), 한량(처럼 보이는 이)들, 편한 옷차림의 동네 주민들이 서로 보물찾기하듯 음반을 뒤적인다. 이전엔 어떻게 음악을 들었나 떠올리기 어려운 대 스트리밍 시대, 극장에 가지 않아도 단 몇 번의 클릭으로 최신 영화를 휴대폰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요즘에 이런 음반가게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구입해주고 버텨내는 이들이 경이롭다. 그들이라고 매일이 화양연화였겠는가. 그래서 슬프다. 오래된 것을 지키는 데에 잼병인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
암스테르담 그리고 이 모든 여행의 마지막 밤이니 브라운 카페로 마무리 해야겠다. 바람이 아무리 불어봐라 내가 코트를 사 입나 옷깃을 잔뜩 여미고 브라운 카페나 가겠지. 금요일을 목전에 둔 날이어선지 앉을 곳도 없을 정도로 상당히 북적인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2층 벽난로를 가동해 실내에 타는 냄새가 가득하다. 2층 계단 초입에서 반쯤 걸터앉은 채 하이네켄을 마시다가 2층 테이블에 자리가 생겨 우사인볼트급 스피드로 빠르게 앉았다.
창가에 체스가 있다. 진짜 나무로 만든 체스판은 사람들의 손을 타 표면이 반들반들 광이 나고 물과 열기에 약간 뒤틀려 있었다. 아마도 몇몇은 나무 체스판 위에 맥주를 흘렸을 것이다. 우리는 벽난로와 너무 가깝지 않은 자리에 앉아 적당한 온기 속에 체스 말을 옮겼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도 흘긋 우리 체스판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암스테르담을 떠나 서울에 가면, 쇠털 같은 날 중, 브라운 카페에 앉아 체스를 두던 어둡고 폭풍우치는 이 밤이 자꾸 떠오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한 고민 중 별 거 아닌 게 많았다. 이곳에 와서 단절을 시도하면서
로 일기는 끝나있다. 당시에 내가 무엇을 쓰려 했는지 짐작하고 싶지 않아 이대로 남겨둔다.
11월 2일, 암스테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