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미술관에서 체력을 소진하고 정신의 윤곽을 흐리게 하기 위해 브라운 카페를 찾았다. 압생트를 사랑한 고흐는 분명 내게 박수쳐 줄 것이다.
애플파이와 채식 비터발렌, 콩 수프를 주문했다. 암스텔 라거는 이 모든 요리의 지휘자가 되어 하모니를 만들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 보니 벽에 종이가 붙어있다. 클린턴 대통령네에서 보낸 감사 메일이다. 직원은 옛날 옛적 카페에 클린턴이 왔는데, 경비도 삼엄하고 대통령이 오기까지 두 시간 넘게 귀찮게 굴어서 학을 뗐다고 한다. 그런 그의 마음과는 달리 벽에는 클린턴이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누가 몰라볼까봐 신문기사와 사진이 아주 큼지막하게 액자로 붙어있다. “바로 당신들이 있는 지금 그 자리에 클린턴이 앉았소.” 이 말도 덧붙였다.
보통은 브라운카페를 두 곳 정도 가고 하루를 마무리 하지만,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이전에 스코틀랜드 여행하듯 브라운카페 폭주 기관차가 되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지도 어플에서 리뷰를 보다가 눈에 띄는 단어가 있어서 찾았다. 맥주를 주문하고 직원에게 “여기 고양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왔소이다” 하니 보통 2층이나 밖에 있는데 아무래도 지금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혹시 이 글을 보는 전국의 사장님들, 카페를 열었는데 손님이 잘 오지 않는다면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다정히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고양이가 피리부는 소년처럼 저같은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습니다. 세상엔 단지 ‘고양이’란 이유 만으로 서점과 카페 등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고양이와 20년 가까이 동거한 고양이 애호가이기도 하지만 내가 고양이 친화적인 가게를 찾아가는 데엔 나름의 근거가 있다. 가게는 주로 문을 열어 놓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주변 길냥이들이 가끔 더위나 추위를 피해 들어오려고 한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기에 가게 사장은 같은 고양이를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다. 길 위 작은 생명체에게 마실 물이나 가혹한 날씨를 피할 수 있는 한뼘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친절을 베푸는 곳이라면 일반 손님에게도 충분히 친절할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논리로 비건 식당과 고양이 있는 곳에 가면 차별 당하지 않는다.
맥주 한 잔을 다 비워가는 찰나, 바텐더가 고양이를 당구대 옆에서 찾았다고 한다. 회색털이 함함한 고양이의 이름은 파블로, 당구치는 이들의 함성과 음악 소리에도 불구하고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잠을 청하고 있다. 왼손엔 차갑고 감칠맛 나는 네덜란드 맥주, 오른손엔 따뜻하고 보드라운 고양이의 목덜미.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바에 앉아서 맥주를 들이키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 알은 체를 한다. 어제 간 브라운카페에서 만난 커다란 리트리버 강아지를 동행한 벨기에 부부였다. 함께 얘기하자는 말에 우리는 카페가 문을 닫는 새벽 한시까지 얘길 나눴다. 벨기에 아저씨는 놀랍게도 우리처럼 녹색당원이었고 정치 지도자를 보좌하는 일을 했다. 우리에게 왜 녹색당원이 됐는지 - 거의 입당 관련 영어 인터뷰였다 - 독일이나 벨기에와는 사뭇 다른 한국에서의 녹색당의 입지, 두 나라의 경제 상황과 사회 정책에 관해 심도있게 논의하는 자리였다. 뜻밖의 우연이 겹치는 바람에 네덜란드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과 맥주를 듬뿍 마시는 밤이다.
11월 1일, 암스테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