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한 사유의 인간

by 중앙동 물방개


어떤 이가 맞은편 지인에게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어서 어떤 남자 스타일을 좋아하냐 소개팅 시켜줄까, 회사의 누구 어떠냐 하는 말이 막을 새도 없이 튀어나왔다. 질문받은 이는 충실히 대답했다. 나는 이런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모든 물음은 질문하는 이의 사회적 위치와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질문하는 사람의 교양과 예의 그리고 권력을 드러낸다. 나는 어느 정도 친분 있는 사람과 일대일로 만났을 때, 상대의 성적 취향을 알고 과거 연애사를 어느 정도 공유하는 사이일 때나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연애 여부를 묻더라도 ‘만나는 사람’이라 하지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로 성별을 한정 지어 말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이 이성애자가 아닐뿐더러 연애나 결혼은 의무가 아닌, 개인의 선택이므로 마치 그걸 안 해서 나무라는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한다.


우리가 쓰는 모든 언어는 그 사람이 속한 세계를 투영한다. 이 세계에 주류로 존재하지 않는 이들은 자연스레 언어에서 배제된다. 타고 날 때부터 그런 언어에 노출되다 보면, 언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기 어렵고 주변화와 상처는 일상이 된다. 가부장제가 굳건한 한국사회에서 남성으로 태어나 무탈한 삶을 보낸 듯한 그는 자신의 언어에 대해 의심하거나 사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인지하는 사고는 한없이 가난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가장 먼저 성별로 나누고 이어 결혼 여부로 구분하며 대체로 연애, 사랑, 외모에 관한 얘기밖에 못하는 것은 빈곤한 사유를 보여주는 단초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사유하지 않는 것은 폭력이다. 사유를 더 많이 한 사람을 - 혹은 사유를 할 수밖에 없던 사람을 – 예민한 자로 모는 건 그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빈곤한 사유를 덮고 무지를 포장하기 위해 ‘뭘 그런 것까지 문제 삼느냐’며 상대가 제기한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가장 쉽게 작동시킬 수 있는 그들의 방어기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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