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일만 단편선 #8
‘과거로 돌아가 비극을 막을 순 없을까?’
역사학자 고필규는 생각했다. 그리고 좋은 기회에 시간여행 장치를 손에 얻게 되었다. 그는 곧바로 조선 후기로 이동했다.
고필규는 자신이 미래에서 왔음을 주변에 알렸다. 조정에서 근무하는 여러 학자들이 곧 고필규를 불러 들였다. 고필규는 역사, 과학, 사회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자신이 말하는 것이 진실임을 어필했다. 고필규가 모든 분야에 능통한 것을 목격한 조정의 학자들은 점차 그를 믿기 시작했다. 고필규는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이 일제의 침공을 막아내는 것이며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지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정의 학자들은 그 부분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왕에게 상소문을 올려둔 참이니 재가가 날 때까지 좀 더 자신들과 질의응답을 하며 시간을 보내자고 답변했다.
그러나 학자들은 돌연 생각을 바꾸고 말았다. 고필규가 내뱉은 어떤 대답 때문이었다. 그에 따르면 미래에는 왕정이 사라지고 민주정이 도래한다는 것이었는데, 학자들의 귀에 그것은 정치모략 내지는 내란죄에 해당하는 것이 틀림 없었다. 결국 학자들은 포졸들을 시켜 고필규를 옥에 가두었다. 며칠 후 고필규는 사약을 먹고 죽었다.
시신을 치우던 사람 하나가 고필규의 주머니에서 기묘한 물건을 발견했다. 그는 물건을 조정의 학자들에게 가져다주었다. 학자들은 그 물건이 시간여행 장치라는 걸 금세 깨달았다. 그리고 이 사람을 한명 선발해, 미래를 보고 오게 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조선후기의 학자 김찬이 기계를 써서 2024년으로 넘어왔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채 필사적으로 현대사회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동료 학자들과 합의한 1년의 시간 동안 사회를 관찰하고 꼼꼼하게 기록했다.
1년 후 김찬은 방대한 기록물을 가지고 조선시대로 돌아왔다. 동료 학자들은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고, 김찬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미래에는 건축기술이 발달하여 높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데 대부분 콘크리트라는 혼합물로 지어져 있다. 이 건물들은 튼튼할뿐 아니라 안에서 냉방과 난방이 가능하여 여름이고 겨울이고 사람이 큰 무리 없이 지낼 수 있다. 또 미래에는 질병에 대처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염병, 홍역, 천연두, 나병, 학질이 사라지고 평균수명이 무려 팔구십세에 육박할만큼 인류는 진보하였다.
또 자동차라는 것을 통해 편리하게 이동하고 회사라는 곳을 만들어 누구나 높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데다 교육 체계가 발달하여 아동들도 누구나 글자를 알고 심지어 외국어까지 능숙하게 구사한다. 특히 여자들도 공부하고 취직하는 것이 매우 보편화 되어 있다.
그러나 미래 인류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문명에 지나치게 집착을 하고 있다. 더 높고 커다란 건축물을 소유하기 위해 은행에 큰 빚을 지고, 그 빚 때문에 비참하게 살아간다. 높은 임금을 받아봤자 대부분 은행 빚을 갚고 있으므로 누구하나 마음 편히 웃는 이가 없다. 대부분 인상을 찌푸리고 살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가 너무 많아 나라에서 일일히 돌봐주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또한 사람들은 더이상 결혼을 하거나 자녀를 낳지 않으려고 해서 미래의 조선은 자연스럽게 소멸할 위기에 놓여 있다.”
김찬은 힘을 주어 말을 마쳤다. 그는 자신이 전달한 이 중요한 정보에 대해 동료 학자들이 즉각 반응을 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학자들의 관심사는 정작 다른 데 있었다.
“왕은? 왕실은 어떻게 되었소?”
동료들이 묻자 김찬은 말했다. 고필규란 자가 일찍이 증언했듯 미래에는 왕정이 사라지고 국민이 대표자를 뽑는 민주정이 도래해 있더라고 말이다. 그러자 학자들은 김찬을 반역죄로 옥에 가둔 뒤 왕에게 그 사실을 보고 했다. 김찬은 며칠 후 사약을 먹고 죽었다. 김찬이 죽고 나자 학자들은 다시 시간여행장치를 눈앞에 두고, 이번엔 과연 누가 미래에 다녀와 헛소리를 하지 않을런지 결정하는 토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