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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일만 Oct 27. 2024

죽게 놔둔 이유

노일만 단편선 #9

2300년 대한민국. 끝없는 인구 감소 끝에 모두 죽고 최후의 2인이 남았다. 두 노인은 이제 자신들이 죽으면 대한민국은 소멸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남은 인생 동안 서로 돈독하게 지내기로 약속했다.

최후의 2인 중 한 사람인 김용필이 말했다.

“문근아. 떡 먹자.”

만화책을 읽던 장문근이 고개를 들어보니 과연 김용필의 손에 떡이 들려 있었다. 쟤는 대체 어디서 저런 걸 구해오는 것일까? 아무튼 두 사람은 떡을 먹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냉동되었던 것이긴 했지만, 품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김용필이 갑자기 컥 소리를 내며 장문근의 팔을 쳤다. 만화책을 읽으며 떡을 먹던 장문근이 고개를 들어보니 김용필이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굴은 발갛게 달아 오르고 두 눈은 부풀듯이 커져 있고 한 손으로는 제 목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은 다급히 장문근의 팔을…

목에 걸렸구나! 

장문근은 금방 상황을 깨달았다. 김용필은 그런 장문근의 표정을 보고 생각했다.

상황을 이해했구나! 

김용필은 이제 장문근이 하임리히법을 써서 자신을 구해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정작 장문근의 생각에 잠긴 듯했다. 뭐지? 김용필은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장문근은 식탁 모서리를 바라보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김용필의 머릿속에 작은 가능성이 하나 떠올랐는데, 그건 순식간에 가장 유력한 가설이 되었다.

도와줄 생각이 없구나!

김용필은 절망과 공포를 느끼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죽고 말았다.






김용필이 죽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장문근도 죽고 말았다. 두 사람은 저승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김용필이 저쪽부터 헐레벌떡 뛰어 왔다. 마음 같아서는 뺨을 한 대 갈기고 싶었지만, 분풀이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대체 왜 그랬냐고 묻는 일이었다.

“왜 그랬어? 대체 나를 내버려둔 이유가 뭐야?”

김용필이 핏대를 세워가며 묻자 장문근이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용필아. 내가 형이잖아.”

그게 무슨 말이냐고 김용필이 묻자, 장문근은 설명했다.

“내가 22년 생이고 네가 23년생인데, 어느샌가부터 네가 말을 놓더라고. 그게 말이 되냐.”

그 말에 김용필이 너무 어이가 없어, 말을 더듬으며 되물었다.

“고, 고작 이유로 하나 남은 친구가 죽게 놔뒀다고?”

그러자 장문근이 김용필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친구가 아니라 형이라니까 그러네.”

그렇게 말한 뒤 장문근은 뒤를 돌아 제 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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