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로렌스의 엄마, 즉 미즈 브릿은 미국 상원의 유력 인사였다. 그는 대학시절 만난 남편과의 사이에 로렌스라는 자녀를 한 명 두었는데, 로렌스는 열일곱 살의 학생으로 세인트루이스 하이스쿨에 다니고 있었다.
2026년 10월, 유난히 하늘이 맑았던 그 가을날, 총기를 든 괴한 둘이 세인트루이스 하이스쿨에 진입했을 때 로렌스는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참이었다. 난독증을 가지고 있던 로렌스는 다른 학생들보다 좀 더 긴 쪽지시험 시간을 부여 받았고, 시험을 늦게 마치느라 점심시간을 놓쳤기 때문이었다.
비록 배는 고팠지만 시험을 잘 본 느낌 때문에 로렌스는 무척 기분이 좋았으며, 우리는 그 사실을 그가 죽기전 마지막으로 친구한테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괴한들은 세인트루이스 하이스쿨의 후문으로 진입해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본관 1층에 들어서는데 성공했다. 지역 컬리지를 졸업한 후 계속해서 취업에 실패하고 있던 두 괴한은 어느날 자취방에서 술을 마시며 자신들의 인생을 푸념하다가 이 모든 원흉이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보기에 이르렀는데, 자신들이 졸업한 세인트루이스 모던스쿨의 담임선생님이었던 미스터 파웰이 바로 그 원흉이 아닌가 하는데 뜻을 모으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미스터 파웰은 당시 제자였던 두 사람에게 “이대로 가다간 너희들은 직업도 없고 가족도 없이 길거리나 떠돌게 될 것”이란 말을 했었던 것이다. 두 괴한은 술에 잔뜩 취한 채 즉흥적으로 총을 챙겨 모교를 찾아가 파웰 선생의 가슴팍에 총알을 갈기자는데 합의했는데,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세인트루이스 하이스쿨을 세인트 모던스쿨과 혼동해 다른학교에 가게 되었던 것이고, 처음 가본 장소라 교무실을 찾지 못하고 학생 식당에 도착했던 것이다.
괴한들은 자신들이 어딨는지 헷갈렸고, 그날 결코 파웰 선생을 만나지 못할 것이란 직감을 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농구의 3점슛 포즈로 샌드위치 포장지를 경쾌한 리듬으로 쓰레기통에 골인시킨뒤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던 로렌스를 보며 그냥 이쯤에서 총을 갈겨버리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탕!”
총소리가 들리고 로렌스는 쓰러졌다. 곧바로 출동한 경찰은 손쉽게 괴한들을 제압했지만 죽어버린 피해자까지 되살리진 못했다. 로렌스의 죽음은 곧 전세계에 알려졌다.
아들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미즈 브릿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 나라의 오래된 총기문제를 자신의 손으로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대중도 그 메시지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훗날 NMGS이라고 불렸던 이 운동의 주체는 ‘노 모어 건 샷’이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나온 일반 시민들이었다. 시류에 편승하기 좋아하는 눈치 빠른 정치인들은 NMGS에 발빠르게 참여했다. 또 가수나 운동선수들이 지지 선언을 하면서 NMGS는 점차 힘을 키워 나갔다.
같은 시간, 담배 연기가 자욱한 한 회의실에서 NMGS 행렬을 티브이로 보던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톰 건즈. 이름에도 총이 들어간 이 남자는 할아버지때부터 총기류를 생산해온 회사의 후계자였고, 전미총기생산자협회의 사무총장이기도 했다. 협회의 참모들은 건즈를 찾아와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 어쩌죠?”
“당황하지 마.”
건즈는 참모들에게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선 비서를 불러 매뉴얼을 하나 가지고 오도록 했는데, 비서가 가지고 온 매뉴얼의 제목은 <총기 사고로 인해 총기규제 여론이 생겨날 때>였고, 이미 수십 년 전에 제작된 책자인듯 곳곳에 낡은 흔적이 보였다.
건즈와 협회는 매뉴얼에 쓰여 있는대로 한동안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집회 초반 군중의 상태는 열받은 벌집과 같으니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것과, 한 달만 지나면 집회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니 내버려두면 해결된다고 매뉴얼은 가르치고 있었다.
과연 한달이 되자 NMGS 내부에서 잡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언론도 슬슬 흥미를 잃는 듯했다. 초조해진 미즈 브릿은 감춰두었던 의혹을 하나 터뜨리기로 했다. 전미총기생산자 협회가 해외에서 상상못할 규모의 자금을 세탁하고 있고, 세탁된 돈이 미국 정부 로비에 쓰이고 있다는 의혹이었다. 다급하게 집무실로 뛰어들어온 비서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 받은 건즈는 비서가 말을 마치지마자 “당황하지 마. 그리고 가서 커피나 한 잔 타와”라고 대꾸했는데, 그가 그토록 여유로울 수 있었던 건 매뉴얼의 <집회세력이 협회를 공격하기 시작할 때> 챕터에 다 대응방법이 나와 있기 때문이었다.
매뉴얼에 따라 협회는 먼저 공식성명서를 냈다. NMGS에 우호적인 톤이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예로부터 총기를 제작하고 보급하는 것의 의의는 자기방어를 위한 것이나, 이번 세인트루이스 하이스쿨 사건과 같은 일이 역사적으로 되풀이 되온 것이 사실이며 협회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매우 비통한 심정을 느껴왔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로렌스 군과 그의 가족들, 친구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하고자 하며 NMGS의 중요한 메시지에 협회도 귀를 활짝 열고 있다…’
‘부디 주정부와 중앙정부가 알맞은 대처를 해주기 바란다…’
말인즉 ‘정부한테 가서 따지세요’라는 거였다.
며칠 뒤, 협회는 지역 언론사들을 매수해 다음과 같은 특집기사들을 냈다. ‘총기사용 찬성반대 논란. 왜 여태 결론을 못 냈을까?’라는 기획기사에는 먼저 총기 사용 찬성파들의 의견들이 실렸는데, 국방부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전직 정치인, 사망사고 패턴을 분석하는 민간 빅데이터 회사의 임원, 지역 보안관 그리고 민간인까지 다양한 사람의 입을 빌려 총기가 왜 꼭 필요한 것인지 진술을 얻었다. 또 그들은 총기가 보급된 뒤부터 인구밀도가 낮은 주거지대의 강도, 강간, 살인 등 강력사건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통계치로 발표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 무렵, 공화당 소속의 극우 정치인 미스터 캐퓰릿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로렌스가 세상을 떠난 이유는 괴한들이 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로렌스에게 총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와 학교와 가정은 이제 청소년들의 셀프 디펜스를 위해 소형 무기 지참을 적극 권장해야 하며, 우리 국민들은 누구나 예기치 못한 공격에 맞서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
미스터 캐퓰릿의 말은 NMGS의 반발심을 더욱 키웠다. 학생들에게 총을 주라고? 집회 세력은 본격적으로 열 받기 시작했다. 협회 입장에서는 금방 끝나리라 기대했던 시위가 장기화 되려는 조짐이었다.
“이런 멍청한 놈.”
건즈가 집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내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멍청한 놈’이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정치인의 발언으로 불난 집에 기름 붓는 일이 매번 일어나니, 미리 정치인들을 단속하라’라는 매뉴얼의 지침을 미처 못 지킨 자신에 대한 비판이었다.
본격적인 국면의 전환은 이때 일어났다. 지역 야산에서 굶주린 멧돼지가 하나 내려와 시내를 활보했던 그 사건때 말이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고 다행히 행인이 거의 없었으나, 운 나쁜 애기 엄마 하나가 멧돼지와 마주치고 말았다. 여성은 태어난지 8개월된 자신의 딸이 너무 울어대는 바람에 아이도 좀 달래주고 자기도 좀 걷기 위해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나온 참이었는데, 눈앞에 움직이는 것은 뭐든 들이받고 먹어치울 준비가 된 야생의 맹수와 운 나쁘게 마주쳐버린 것이었다.
멧돼지는 인정사정없이 애기 엄마를 향해 돌진했다. 그때,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멧돼지가 쓰러졌다. 엄마와 아이는 무사히 귀가했다.
이 모습은 CCTV에 찍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언론은 일제히 총을 쏜 사람을 찾아갔다. 그의 이름은 미스터 플리. 총기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처음 총기 회사에 취직할 때 주변에서 걱정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살상무기를 다루는 게 괜찮겠냐는 걱정이었습니다. 저와 저의 커뮤니티 일원들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들이거든요. 하지만 지난 10년간 무기 파는 일을 하면서 저는 한번도 제 직업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이 작은 쇳덩이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는지 가까이서 봐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근래의 멧돼지 사건처럼 말입니다.”
멧돼지 사건으로 인해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된다. 여론은 NMGS측의 입장보다 미스터 플리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잘생겼을뿐 아니라 미혼이었다.) 미즈 브릿은 계속해서 총기 규제에 대해 목소리를 냈으나, 규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빠르게 식어갔다.
그 무렵 건즈가 새로운 매뉴얼을 꺼냈다. 제목은 <사태가 잠잠해지기 시작할 때>였다. 매뉴얼에는 ‘만족하지 말고, 이제 역공을 하라’라고 쓰여 있었다.
건즈는 오랜 친구이자 사촌인 미스터 범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움직이면 좋을 것 같다고 충고를 해주었다. 미스터 범은 전미수류탄생산자협회의 이사이자 제조업체의 대표였는데, 그는 정부가 총기만 허락하고 수류탄은 허락하지 않는 불공정함에 대해 늘 불만이 많은 인사이기도 했다. 미스터 범은 이 기회에 개인용 수류탄 보급을 합법화하도록 제대로 로비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범은 먼저 건즈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참모를 불러 리스트를 가지고 오도록 했다. 상원과 하원의원 중, 후원금이 많이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을 정리한 리스트였다.
이쯤에서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자. 지금까지 ‘미국은 어째서 개인이 바주카 소유를 하도록 만들었을까’에 대한 배경이다. 발단은 로렌스의 죽음이었고, 협회의 역공으로 이제 개인들은 총기뿐 아니라 수류탄도 소유하게 됐다. 게다가 수류탄협회가 정부를 구워삶는 것을 본 바주카협회에서 움직이기 시작해, 결국 집집마다 바주카까지 갖게 됐다는 이야기다.
참. 만약 당신이 음모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미스터플리와 멧돼지 사건의 진실’이라는 유튜브 방송을 한번 보길 바란다. 난 개인적으로 이 음모론을 달착륙 음모론보다 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