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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일만 Oct 27. 2024

미스터 엑스

노일만 단편선 #13

기훈 형님과 나는 오래 아는 사이다. 심지어 가족끼리도 친하다. 특히 형수님과 나는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내가 형수님이 만드신 회사에서 근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훈 형님이 얼마 전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와이프가 요새 좀 이상해. 남친이라도 생긴 건가?”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그 남친이기 때문이었다.


형수님과의 관계는 노래방에서 시작됐다. 퇴근하고 직원들이 다 같이 술을 마셨다. 그리고 노래방에 갔는데, 사람들이 하나둘씩 조용히 집에 갔다. 결국 단 둘이 남게 된 나와 형수님은 같이 노래를 한 곡 불렀다. 그러다가 눈이 맞았고, 간주 구간에서는 손이 닿았고… 2절은 아예 안 불렀다. 노래를 부르기엔 입이 너무 바빴다. 자세한 건 독자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노래방 사건 이후로 우리는 틈만 나면 만났다. 그리고 한이라도 서린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몸을 비벼댔다. 금지된 만남이라 더 짜릿했고, 지속될 수 없는 만남이라 더 열심히 즐기게 됐다.

노래방 사건이 몇 달 전의 일이었던가? 모르겠다. 지금은 생각할 게 너무 많다.


나는 지금 기훈 형님의 시체를 끌고 야산으로 차를 몰고 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거의 기훈 형님 탓이다. 둘 사이를 알게 된 형님은 식칼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식칼에 이미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형수님이 잘못 됐음을 알았다. 우리 둘은 몸싸움을 벌렸고, 그 과정에서 형님이 죽고 말았다.


나는 시체를 야산에 버렸다. 마구 버린 건 아니고, 최대한 꼼꼼하게 파묻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갑자기 전화가 울려 경찰인 줄 알고 혼비백산 했지만 전화를 건 것은 형수님이었다.

형수님은 곧장 우리 집으로 왔다. 그녀는 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우리는 흥분을 가라 앉히고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놨다. 기훈 형님이 갑자기 형수님의 핸드폰을 낚아채더니 카톡을 확인했다고 했다. 형수님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형님은 씩씩대며 식칼을 꺼내왔다. 다툼 끝에 칼이 형수님의 목을 살짝 그었다. 피가 나긴 했지만 다행히 긁힌 수준이었다.

형수님은 방으로 도망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경찰에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형님이 “현호 그 새끼를!”이라면서 밖으로 나가더란다. 나는 그 뒤의 이야기를 했다. 기훈 형님이 과연 식칼을 들고 찾아왔고, 몸 싸움 끝에 기훈 형님이 죽었다는 걸. 시체는 야산에 파묻었다는 것을.

우리는 줄창 담배를 피웠다. 그것 말고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어보였다.

한국이었다면 사정은 더 나빴을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가. 중앙아메리카에서도 부패 지수가 높기로 유명한 니카라과 아니던가.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특히 사업 수완 좋고 아는 사람 많기로 유명한 형수님이라면 말이었다.

어쩌면 좋겠냐는 내 질문에 형수님은 말 없이 담배를 한 대 더 피우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미스터 엑스?”


미스터 엑스라는 상대방과 형수님은 한참 동안 통화 했다. 대충 짐작건대 여러 사태의 뒷수습을 해주는 해결사인 모양이었다. 이만 코르도바(니카라과 현지 화폐 단위)를 얘기하는 걸 보니 한국 돈으로 대충 이백만 원 정도면 해결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알고 지내요?”

전화를 끊은 형수님에게 묻자 형수님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저런 일이 생겨. 그러다 보면 이런 저런 사람도 알게 돼지.”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죽은 사람을 처리할 수 있다면 죽이는 것도 가능한 것 아닐까. 앞으로 형수님의 심기는 절대 거슬러선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형수님은 주변 사람들에게 남편이 급한 일로 한국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아무일 없던 듯이 지냈다. 나도 조용히 회사에 나갔다. 형수님과는 가끔 저녁을 먹었다. 일부러, 남들 보라는 듯, 회사 가까운 오픈된 장소에서 만났다. 대놓고 드러낼 수록 사람들은 우리둘을 수상하게 보지 않을 거였다.

그나저나 미스터 엑스는 어떤 일처리를 어떻게 한 것일까?

자초지종은 알 수 없었지만 미스터 엑스의 일 처리가 어지간히 확실한 모양인지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몇 주가 쏜살 같이 흘러갔다. 나는 불안과 초조함을 꽤 많이 극복했다. 정말 이렇게 완전범죄가 성립되는 것인가? 그런데 며칠 전 형수님이 유독 초조해하면서 조용한데 가서 얘기를 좀 하자는 것 아닌가. 장소를 우리집으로 옮긴 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형수님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뭐라고요!”

“정말이야. 메시지가 왔다니까.”

“그것 좀 보여줘요.”

나의 말에 형수님은 휴대폰을 꺼냈다. 알 수 없는 이가 시작한 채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었다.  


I know what happend to your husband.
(나는 네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

Either send us U$ 200,000 to account below or I will tell this to the police.
(아래 계좌로 20만불을 송금하지 않으면 경찰에게 말하겠다.)

You have 2 days.
(이틀 주겠다.)


메시지 밑에는 계좌번호가 쓰여 있었다. 시간을 보니 메시지가 온 건 어젯밤이었다. 그럼 이제 하루가 지났으니, 협박범이 설정한 기한으로부터 딱 하루 남은 것이었다.

“어쩌죠?”

“내 말이. 대체 누구지? 어떻게 해야 되지?”

“누님, 이십만 불이 있긴 있어요? 나는 한국으로 돈을 다 부쳐서 현금이 없는데.”

“좀 기다려봐, 왜냐면.”

“누님, 이성적으로 생각해요. 하루 남았어요. 잡히면 무슨 죄죠? 나는 살인? 누님은 살인동조? 둘 다 여기서는 사형이던가요?”

나는 ‘사형’이라고 말할 때 일부러 발음을 강하게 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래야 누님이 빨리 송금을 하기로 마음을 먹을 것 같았다. 내가 찍어준 스위스 비밀 계좌로…


그렇다. 나는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니카라과의 생활을 빨리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가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하지만 새 출발을 하려면 정착금이 있어야 하지… 그걸 누님으로부터 지원 받으려는 생각이었다. 물론, 협박범의 가면을 쓰고 말이다.

죄책감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생활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어라. 근데 누님이 어디갔지.  뒤를 돌아보니 누님은 누군가와 통화중이었다.

“오케이, 땡큐.”

“누구예요?”

“빌딩 관리인. 아무튼 동생, 나 집에 좀 가볼게.”

“지금요? 어딜 가세요 누님? 우리 이 문제의 결론을 내야죠.”

“아니야. 결론 이미 났어. 돈 보내야지. 집에 가서 내일까지 마련할 수 있는 현금 좀 싹 찾아볼게. 동생은 좀 쉬어.”

“아, 그래요?”

나는 자못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누님을 배웅했다. 중간중간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걸 겨우 억눌렀다. 나의 연기는 끝까지 완벽했다.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얌전히 있어.”

차에 타기 전에 누님은 마치 엄마처럼 말했다. 나는 걱정말라며 손을 흔들었다. 누님의 차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흔들었다. 이제 내일이면 이십만 불이 생긴다. 한국 들어갈 티켓을 예매해야겠군. 얼마 만에 밟아 보는 모국 땅이냐. 캔 맥주라도 사서 자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까지 걸어 갔다오는 길에 한국에서 할 일들을 생각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기분이 너무 좋았던 모양이다. 계산대에서 꺼내고 보니 담아온 게 꽤 많았다. 캔맥주 몇 개, 위스키 한 병, 토닉 워터, 음료수와 과자들까지… 뭐 어떠랴. 오늘은 이 정도로 기분을 내도 괜찮을 거였다. 형수님과의 은밀한 관계로 즐거웠던데다 범죄도 완벽하게 은닉했겠다, 심지어 고향가는데 필요한 여비까지 생겼으니…


생각해보니 형수님은 복덩이었다. 멍청한 년. 내가 지 남편도 죽이고 돈까지 빼앗아 가는 걸 모르고 어디 돌아다니지 말라고 걱정까지 해주다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이 어두웠다. 이상하다. 내가 불을 끄고 나갔었나? 손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그리고 불이 켜졌을 때, 나는 심장이 멎을 뻔했다.

소파에는 보안관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의 손에는 총이 쥐여져 있었고, 총 끝에는 소음기가 달려 있었다.


젠장.


방금 누님이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있으라던 말… 누님이 빌딩 관리인이라고 했던 사람, 그는 바로 이 사람이었다. 형님의 시체를 처리한 사람, 누님의 의뢰로 협박법을 찾아낸 사람, 그 협박법을 처리하러 온 사람, 완벽한 일처리로 유명한 해결사…

“미스터 엑스.”

내가 말하자 상대방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 노우 미?”

미스터 엑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순간 비닐봉지로 손을 뻗었다. 위스키병을 꺼내 미스터 엑스에게 휘두르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미스터 엑스의 행동이 훨씬 빨랐다.

탕!

미스터 엑스의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내 머릿 속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건 이상하게도, 한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먹으려고 했던 시큼한 김치찌개 생각이었다.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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