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도 무사히...
이제 곧 설이다.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한 달 전부터 순간순간 마음 한구석에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처럼 무거운 마음이 들다가 명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 소화가 안되고 잠도 잘 못 자고 수시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명절은 내게 너무 두려운 행사다.
엄마, 아빠, 언니, 오빠, 나 이렇게 우리 식구들끼리만 간소하게 차례를 지내고 명절을 보내던 우리 집과 달리
시아버지의 일가친척들이 모두 큰집에 모이는 시댁의 명절 풍경. 아직 시부모님도 어렵고 조심스러운 내게 시댁의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명절은 난이도 '최상'의 어려운 자리다. 남편도 거의 40년째 반복하고 있지만 왕복 8시간을 고속도로 교통체증 속에서 보내며 잘 모르는 어른들에게 인사만 하다가 끝나는 명절이 정말 싫고 불편했다고 한다. 남편도 그런데 하물며 보통 그 집안의 최약체로 인식되는 며느리에게 얼마나 불편한 명절인지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더 힘들었던 건 아빠까지 발 벗고 나서서 음식 준비를 하던 우리 집과는 달리 부엌일은 온전히 여성들, 그중에서 며느리만의 일이었단 것이다. 결혼 후 시댁의 큰집에서 처음 맞은 명절. 우리 집에서 늘 그러듯 남편과 함께 설거지를 하자 큰어머니들이 난리가 났다. 남자가 설거지를 하면 불알이 떨어진다며 남편을 모두 뜯어말리셨다. 21세기에 남자가 설거지하면 불알이 떨어진다는 말을 듣다니... 그때 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고 나와 같은 며느리 동지들이 출산과 육아로 명절에 오지 않기 시작했다. 큰집은 아주아주 오래된 시골의 농가라 외풍도 심하고 화장실과 수도 시설도 현대식이 아니다. 시골집의 환경과 왕복 8시간에 달하는 명절 교통 체증을 아기가 버티기엔 무리였기 때문에 한 명, 두 명 자연스럽게 빠지다가 결국 부엌엔 큰어머니들과 딩크족인 나, 그리고 어른들의 눈총을 꿋꿋이 받아내며 내 옆에 있는 남편만 남았다.
해가 더해갈수록 이런 명절 풍경이 익숙해지긴 커녕 갈수록 서러움만 커졌다. 큰어머니들과 큰아버지, 그리고 남편의 사촌 형들만 바글바글한 큰집에서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었고 외로웠다. 명절 음식을 며느리끼리 나눠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출산과 육아로 인한 동서들의 불참은 적극 지지한다. 그래도 동서들과 있을 땐 똑같이 낯설고 어색한 입장이라 우리끼리 서로 의지할 수 있었다. 편하게 말 한마디 나눌 사람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혼자다. 내가 딩크족이기 때문에 받은 페널티처럼 느껴졌다.
혼자여서 더욱 곤란한 것은 어른들의 지나친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시부모님은 우리가 딩크족이 되기로 한 결정을 존중해 주시기 때문에 평소 아이 문제가 화두에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명절엔 우리에게, 특히 나에게 지나친 관심과 질문이 쏟아진다. 아이를 왜 안 낳는지, 올해도 왜 홀몸으로 왔는지, 왜 아이를 빨리 낳아서 '참 어른'이 되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지 않는지... 때론 덕담, 때론 걱정과 염려, 어떨 땐 꾸지람과 훈계 심할 땐 호통까지 다른 옷을 입었지만 내용물을 똑같다.
내겐 너무 괴로운 명절. 혹자는 일 년에 꼴랑 2번 밖에 없는 명절인데 그것도 못 참냐고 한다. 하지만 불편한 장소에서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노동을 강요당하며 내 인생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은 1년에 2번이 아니라 일생에 단 한 번도 겪기 싫은 경험이다.
게다가 명절만 괴로우면 모르겠는데 명절 전, 명절 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명절에 상처 받는 말을 들으면 심지어 1년 내내 괴로워했다. 그렇다고 이제 시댁의 명절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용기도 없었다. 사실 내게 차례를 지내러 큰집에 가지 않는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그냥 무작정 명절이 날 너무 힘들게 하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늘 괴로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너무 억울했다. 하루 종일 날 상처 준 사람을 미워하고 내 처지를 한탄하며 살다니. 내 인생엔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많은데.
책에서 불행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더 커진다는 내용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내 몸에 들어온 불행을 그냥 뱉어버리면 될 걸 꼭꼭 씹어 위까지 내려보낸 것도 모자라 몇 번이나 끄집어내며 소처럼 되새김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쓴맛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느끼면서. 끊임없이 맘속으로 "왜?"라고 질문했다. 왜 날 존중해 주지 않는 거야?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왜 내게 화를 내시는 거야? 나는 왜 혼나야 하는 거야? 왜 TV에선 매년 명절 후 이혼율이 급증하니 모두 말조심하자고 그렇게 떠들어대는데 어른들은 왜 모르는 거야? 몇 번이나 내게 물어보면 해답을 찾을 줄 알았지만 끝내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으니까 당연했다. 그렇다고 어른들과 본격적으로 마주 앉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자니 1년에 2번 만나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 그럴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다.
친척 어른들이 나의 아이 없는 삶을, 내 선택을 나중에 후회할 철부지의 객기로 치부하며 무례한 말로 상처 줬던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고 배려심이 없었던 어른들의 잘못이다. 하지만 1년에 두세 번 만나는 친척 어른들의 무례한 말 때문에 1년 내내 괴로워하는 건 내 문제였다. 어른들이 그런 말을 못 하게 내가 입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일단 감정노동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몇 년 전 명절 큰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인사도 하기 전에 "넌 임신 아직도 안했냐? " 하고 갑자기 소리치는 친척 어른 말에 놀라 눈물을 쏟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모두가 당황하던 분위기가 민망했고 그래도 다 큰 어른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어버렸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 다신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래서 상처 받는 말을 들을 때마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꾹 눌러 참았다. 죽을힘을 다해 표정관리를 하고 '무례한 말에 어른스럽게 잘 넘겼어'라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신승리를 해 봤자 속은 더 심하게 곪았다.
이제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난 괜찮지 않고 깊이 상처 받는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릴 것이다. 어른에 대한 예의와 존중은 깍듯이 지키면서. 그래야 나도 죄책감이나 후회를 느끼지 않고 떳떳할 수 있으니까. 뭐든 나 자신에게 떳떳해야 지속 가능하다. 그때 내가 모두 앞에서 울었을 때 창피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친척 어른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았다.
남자가 설거지하면 불알 떨어진다며 그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나 혼자 하라고 강요하셨을 때 내가 말했다. 우리 집에선 남편이 매일 설거지하는데 불알 안 떨어지더라고. 설거지 거리가 너무 많아서 나 혼자 못하니 같이 하고 싶다고 정중히 말했다. 순간 나를 흘겨보시는 큰어머니들의 눈빛을 느꼈지만 그래도 내가 늘 명절에 큰집에서 느꼈던 최하층 불가촉천민이 된 것만 같은 모멸감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불편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으면 그전에 그냥 그 자리를 피할 것이다. 조용히 산책하겠다고 나가면서. 그래도 소용없이 누군가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면 그냥 그 자리에서 참지 않고 울어버릴 것이다. 그런 말씀은 내게 너무 상처가 된다고 말하면서.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몇 번이고 울어버려야지.
그래서 어른들이 조심하고 명절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덜해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 감정의 쓰레기가 1년 내내 날 괴롭히지는 못하게 제때 버리고 비워줘야겠다.
그냥 시댁 큰집의 명절에 불참하는 선택지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참석하는 게 내 맘이 편해서 그렇게 한다. 하지만 언젠가 상황이 계속 악화되어 참석보다 불참하는 것이 더 맘 편한 날이 오면 그땐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때를 대비해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지금과 같은 명절 말고 좀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명절을 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그 전까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