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12
일요일이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비가 내려서 집 밖을 돌아다니기 싫은 날이었어. 느지막이 일어나서 휴대폰을 확인하고 조금 게으름을 부리다가 평소와 같이 운동을 했어. 그러고는 남자 친구와 함께 간단히 장을 보고 동네에서 따뜻한 국물에 점심밥을 먹었어. 이번 주엔 일부러 평일 약속을 많이 잡지 않았는데도 주말에 해야 할 일이 많아서 한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것 같아. 물론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에너지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그래서 오늘만큼은 주말 다운 주말을 보내려 노력했어.
이렇게 바쁘고 피곤한 요즘, 남자 친구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우리 둘 다 각자 아침이 되면 일을 하러 집을 나서서 오후까지 (혹은 밤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잖아. 그러면 겨우 저녁 한 끼를 같이 먹거나 그마저도 빠듯한 날에는 잠에 들 때가 되어서야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있어. 물론 하루 중 아주 적은 시간뿐이지만, 내가 똑바로 눈을 쳐다보며 위로받을 수 있는 친밀한 이가 나의 집에 함께 있다는 건 큰 기쁨이야.
나와 내 남자 친구는 지금 충분히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해. 당연히 쉽게 그렇게 된 것은 아니야. 아직도 가끔은 위태롭다고 느낄 만한 사건들이 생기기도 하고, 그래도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서로를 칭찬할 만한 숭고한 일을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해. 또 이제는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하고도 마음이 통하는 어떤 감정을 공유하게 된 것 같아. 사랑이 덜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감정이 또 우리 관계 위에 생겨난 기분이야.
특히 우리가 함께 같은 집에 살면서 끈끈한 그 무언가를 얻게 된 거라고 생각해. 처음 함께 살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결혼, 비혼에 대한 신념을 나누고 신중하게 결정한 게 아니었어. 그저 얼떨결에 같이 살게 된 거지. 그냥 함께 있는 시간이 좋고, 함께 집이라는 공간에 있다는 게 좋았으니까. 물론 우리가 좋았다고 해서 모든 커플에게 동거를 추천하지는 않아. 우리가 꽤나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해. 우연히 집안일이나 정리 정돈 상태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다른 부분도 맞춰가기 쉬운 편이었거든. 나는 함께 살기 위해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가치관의 공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동거는 안 해본 사람들의 상상대로 로맨틱한 무언가가 아니라 현실이니까 말이야. 우리는 적어도 지금으로서 서로에게 연인인 것과 별개로 가족이기도 한 거지.
가족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도 언젠가 우리의 관계에도 끝이 오겠지. 하지만 그게 무섭다고 지금을 포기하거나 망쳐버리고 싶지는 않아. 누구보다도 내가 그 끝을 슬퍼할 사람이겠지만, 그때가 와도 우리가 함께 한 지금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만은 있어. 오늘도 남자 친구와 같이 밥을 먹고 해리포터 시즌 6을 함께 본 후에 이 글을 끄적이는 중이야. 이렇게 특별한 일 없는 주말도 누군가와 함께라는 건 참 따뜻해. 꼭 같이 사는 게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서로의 곁을 지켜온 관계에서만 이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겠지. 너에게도 오랫동안 널 지켜봐 온 너의 애인이, 그리고 4년이나 너와 많은 따뜻함을 나눈 내가 있어. 혼자라 외로운 날에도 꼭 그걸 기억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