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할 게 있어, 부끄럽지만 들어줄래? [아루쿠마]

by 잠긴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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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쓰는 일기가 너무 늦어져서 미안해. (이전 교환일기도 사진을 섞은 근황일기였으니) 어떻게 된 게 내가 처음 제안했던 교환일기인데, 내 답장이 자꾸만 늦어져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마침 몇 시간 전 저녁식사를 준비하던 도중에 너의 카톡메시지를 확인했고, 언제쯤 교환일기가 올라오냐는 너의 물음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해서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려봐. 그래도 너에게 답장했다시피 이 일기는 내일, 그러니까 화요일에 올라갈거야. 내일까지 쓰기로 마음 먹은 글을 지금 이렇게 쓰는 건, 어쩐지 자꾸만 너의 카톡메시지가 뇌리에서 잊혀지지가 않고 마음이 쓰여서야. 그도 그럴 게 어제까지 합치면 2주째 교환일기를 올리지 않았으니 영 신경이 쓰일 수밖에.

저번에 말한 적이 있었잖아, 한창 학기중에 울음이 터져서 나 너무 힘들다고, 너무 여러가지를 손에 쥐고 있어서 교환일기가 뜸하게 올라갈지도 모르겠다고, 터지기 전에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그런데 이번에 2주동안 답장을 쓰지 못한 건 그때와 다르지. 12월 말이 가까워지면서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종강을 했고, 나는 방학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니까. 오늘에서야 제대로 다시 토익책을 펼치고 한 달의 공부 플랜을 세워보면서 스케줄러를 확인해보니 12월 중순 이후로 스케줄러를 쓰지 않았더라. 핑계라고 느낄지도 모르겠어서 이렇게 말하기 부끄럽지만, 학기 중 힘들었던 것에 대해 1-2주의 방학같은 날들은 보상으로 쳐도 된다고 생각하니 더 늘어졌던 것 같아.

하지만 너의 입장에선 조금 의아할 수도 있을거야. 교환일기는 그저 일기일 뿐인데? 과제가 아닌데? 하고 말이야. 너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는지 확실치 않아서 말해보자면, 사실 나는 늘 내 글이 부끄러워. 글을 쓴다는 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고... 10년이 넘도록 일기를 써 온 것도 모자라 그 일기를 하나 하나 옮기는 작업을 하는 너와는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할까. 교환일기를 제안했을 때 가벼운 편지나 일기 같은 글을 쓰는 거니까 비교적 부담이 덜 할거고, 너와 연락하는 빈도가 예전과 달라졌으니 안부도 물을 수 있고, 글 쓰는 실력도 조금은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어. 그런데 내가 초심을 잃어서인지 쓰면 쓸수록 내 글의 조회수는 눈에 띠게 적어지기만 하고, 어느샌가 보여주는 글이라는 점에서 자신감이 줄어들어 점점 부담감이 생겨나기 시작했어.

내가 글을 올리는 요일을 목요일에서 일요일로 정해두었으니, 그 즈음이 되면 모든 걸 글감으로 써 보려고 머리를 굴리면서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조급함이 느껴졌어. 웃기지? 과제도 아닌데 말이야. 사실 이번주에는 너무 편안하게 쉬다가 일요일 저녁에서야 잊은 게 있는데 싶어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그게 바로 교환일기였다는 걸 알았어. 그런데 밤이 되어서야 기억난 바람에 글로 쓰고 싶은 메시지도 없는데다가 그냥 하루만, 하루만 생각하면서 미뤄버렸어. 그냥 너한테 솔직하게 말했어도 되었을텐데, 뭐랄까 나 어느순간부터 내가 별 것도 아닌 걸로 너에게 징징대면서 힘들다고 하면 한심스럽게 보일까 걱정이 되서, 결국 이렇게 네 입에서 먼저 교환일기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으면서도 그날 밤 그렇게 모른척 넘겨버렸어.

너는 내 앞에서 술을 마시면 실수하거나 쪽팔린 일이 많다고 했지만, 나는 너와 함께 시작하게 된 일에서 마치 치부를 들켜버린듯이 어쩔 줄 몰랐던 순간이 많았던 것 같아. 어떤 업무나 목표치에 대해서 너는 주로 ‘성장’을 꿈꾸는 사람인데 비해, 나는 ‘현재’ 나의 마음과 상태를 더 중요시하는 사람인 것 같아.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성장을 향해 달려가고 싶다는 너의 옆에 서서, 나는 너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특히 너를 가장 잘 안다고도 감히 말해볼 수 있는 나라면) 너와 발을 맞춰 나의 모습들 중에도 가장 완벽한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던 것 같아. 너가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딘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찝찝함이 있었는데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싶어. 너를 알고 너에게 맞추어 함께 일하고 싶은 내가 사실은 그러기에 부족함도 많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그런 내가 틀린 것만 같아서, 자꾸 숨기고 자꾸 들키는 반복이 이어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교환일기도 그런 것들 중 하나였어. 내가 먼저 제안했고, 그러니 책임을 갖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 너한테 뒤지지 않는 수준의 글을 써야 한다고. 너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나 알게 모르게 사람들한테 느끼는 열등감도 정말 컸나봐. 자존감만 낮은 줄 알았는데. 썼다 지웠다, 주제를 이리저리 바꿔봤다 반복하면서 어느새 지치고 어느새 이렇게까지 부담을 느끼게 되었어. 혹시 여기까지 읽으면서 왜 얘가 이런 이야기를 지금에서야 하는건가 하고 서운함이 느껴진다면, 꼭 알아줘. 나도 오늘에서야 어느정도 말로 정리해서 전달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어서라는 걸. 깨닫게 되자마자 전달하려 하니까 오해가 생기진 않을까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서 내일 아침에 다시 한 번 이 글을 읽어보고 올리려고 해. 네가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나한테 많이 실망하지는 않았으면. 그리고 만나서도 더 깊은 대화를 나눠볼 수 있었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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