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어느 채식 관련 영상에서 '예수님도 채식을 했다'라는 내용을 봤다. 채식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에서 무리수를 둔 건지, 주워들은 말을 검증 없이 덜컥 영상으로 제작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였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생선을 드셨다는 기록이 등장하니까(누가복음 24:42-43).
성경 전체를 하나의 문맥으로 봤을 때, 성경이 채식을 강제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에덴동산에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채식을 지정해 주셨지만 노아의 홍수 뒤부터는 육식을 허용하셨다. 신약에 가서는 율법에서 식용이 금지되던 동물들까지 모두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인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는 내가 믿는 종교의 율법과는 상관이 없다. 채식을 교리로 규정하는 몇몇 타 종교와는 달리, 성경만을 믿음의 내용으로 삼는 기독교는 채식을 교리로 못 박지 않는다.
또한 내가 채식 위주 식사를 한다고 해서 성경에서 벗어난 성도는 아니다. 고기를 안 먹는 행위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은 아니다. 성경은 모든 걸 다 먹어도 된다고 '허용' 했을 뿐 특정한 음식을 '반드시' 먹으라고 떠밀지 않기 때문이다(성찬은 예외).
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육식을 허용하신 이유 중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게 '생존'이라고 생각한다. 약간만 과거로 돌아가도 1년 내내 채식이 가능한 지역은 지구에서 몇 되지 않았다. 극지방이나 사막 같은 극한의 지역은 당연하고, 다른 지역에서도 해마다 겨울이 오면 싱싱한 채소와 과일의 충분한 섭취는 불가능했다. 그럴 땐 말리거나 절인 채소·과일 등으로 섬유소 섭취를 겨우 이어나갔을 것이다. 지금도 그린란드 같은 극지방은 대부분의 채소를 수입해서 먹기 때문에 채솟값이 비싸다. 오이 하나에 4,000원[1], 양상추 한 통에 7,000원[2]에 달한다. 기술이 어지간히 발달한 오늘날에도, 척박한 기후의 나라에선 채식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비닐하우스나 냉장고가 없던 시절엔 오죽했을까.
하나님께서는 태초의 사람들에게 채식을 양식으로 지목해 주셨다.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과 하와는 벗은 상태로 지냈다. 1년 내내 기후가 매우 온화했다는 이야기이다. 그 동산은 온갖 과일과 채소가 풍성한 곳으로 묘사된다(창세기 1,2장). 아무 문제 없이 365일 채식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짧았다. 노아의 홍수 이후부터 사정이 달라진다. 환경이 어떻게, 왜 변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나오지 않지만 지구의 상황이 변했다는 사실은 유추할 수 있다. 그 시점부터 사람들의 수명이 1/10로 줄어들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돌연 육식을 허락하셨다. 더 이상 채소와 과일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할 만큼 지구 환경이 척박해졌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하나님은 양식이 줄어든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을 막으시고자 동물을 양식으로 허락해 주신 게 아닐까.
성경이 육식을 허용한다고 해서 현대의 육식 문화를 상큼하게 정당화하는 건 무리가 있다. 성경이 쓰이던 시대엔 지금과 같은 육식 문화가 없었다. 기형적일 만큼 거대해진 육식 문화 때문에 매년 수십억의 동물이 비참하게 길러지고 도살당하는 현실을 하나님은 과연 좋게 보시려나. 김기석 목사님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3]다고 말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 속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3]
하나님은 바다의 동물과 새를 만드신 후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창세기 1:22). 동물들을 만드신 후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했다(창세기 1:25). 시편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주는 그가 만드신 모든 것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시편 145:9) 하나님은 "그분이 만드신 모든 것들에 대해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다(시편 145:17). 하나님은 동물을 돌보고 키우는 분으로 묘사된다. 그분은 "가축들에게 음식을 주시며 어린 까마귀들이 울 때에 그들에게 먹이를 주"신다(시편 147:7).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새들을 먹이신다"(마태복음 6:26)라고도 말씀하셨다. 더 나아가 동물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까지 묘사된다(시편 148:9).
한편, 성경에는 수많은 동물의 죽음도 등장한다. 사람들의 죄를 씻기 위해 셀 수 없는 동물들이 제물로 바쳐졌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라는 제단에서 죽으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씻는 제사는 완성됐다. 이젠 동물을 죽여서 내 죄를 씻을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요즘의 동물들, 특히 가축들은 그다지 기쁘지 않을 것 같다. 구약시대의 제사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천문학적인 수의 동물이 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문화, 거대 음식 산업, 단백질 신화 등이 쉼 없는 도살의 이유이다. 이런 식문화를 성경은 얼마나 지지하고 있을까.
잠언은 "술이나 고기를 탐하는 자와 어울리지 마라"라고 말한다(잠언 23:20). 전도서에는 이런 말씀도 있다. "…대신들이 아침부터 잔치에 빠져 있는 나라여, 화가 있을 것이다. 반면, …대신들이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먹는 나라여, 복되도다."(전도서 10:16-17 일부)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소개한다. 그중에는 '절제'가 포함된다(갈라디아서 6:23).
성경엔 먹는 것을 탐하다가 죄를 지은 사례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고 인류 최초의 죄를 지었다. 에서는 죽 한 그릇에 장남의 권리를 팔아치웠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창세기 25:32). 광야 길을 걷던 이스라엘 백성은 고기 타령을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민 11:33). 나발은 다윗이 군량을 지원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다윗을 모욕하며 거부했다. 그래놓고 자신은 "왕처럼 먹"고 즐기다가 심장이 멈추고 몸이 돌처럼 굳어져서 죽는다(삼상 25:36~38).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고기를 율법에 따라 관리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골라 먹었다. 성경은 그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삼상 2:12). 초대교회에선 가난한 사람들이 모임에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온 사람들이 성찬 음식을 먹어버린 일도 있었다. 바울은 이를 두고 "절대로 칭찬할 수 없"다고 질책했다(고린도전서 11:22).
한편, 「덜 착취하고 덜 파괴하는 길」에도 썼지만, 육식 위주의 식사는 지구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 성도라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의 아픔에 무감각할 수 없다. 나의 식생활이 환경과 이웃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식습관을 재고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 김기석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자연을 닦달한 결과 기후 변화 현실이 다가오게 됐고 기후 변화 문제가 가장 먼저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은 가난한 이웃들이란 말이죠. … 나의 편의를 위해 과도하게 소비된 것들… 과도하게 생산돼서 우리에게 공급되는 그것들이 결국은 지구를 아프게 만들고 지구촌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죠."[3]
식량개발정책기구에서는 지구에서 "매일 5만 명의 어린이들이 굶어 죽는다"[5]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가축을 통해 곡물을 순환시키는 건 죄악에 가깝다. 육식은 채식에 비해 낭비가 심한 식사이다. 미국이 경작하는 "옥수수의 80% 이상과 귀리의 95% 이상"[5]이 동물 사육에 사용된다. 『존 로빈스의 음식 혁명』에는 이런 대목도 등장한다. "2000년, 유엔의 21세기 영양문제에 관한 위원회는 앞으로 대대적인 변화가 없으면 20년 안에 어린이 10억 명이 칼로리 부족으로 영구적인 장애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위원회는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한 첫 단계로 전통적인 식품인 곡물, 과일, 채소를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상엔 배고픈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굶주린 사람들을 보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저 사람들을 위해 빵을 사려면 이 정도의 돈이 들겠군, 그런데 여긴 너무 외진 곳이고 시간도 늦었으니 저 사람들을 해산시켜서 각자 밥을 사 먹으라고 해야겠군.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복음 14:16) 나도 가끔 계산기를 두드린다. 세상의 기아 문제는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와 기타 복잡한 요인들이 뒤섞여 탄생한 합작품인데 나 한 사람이 돕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구호 단체들은 과연 믿을만한 것일까 등등. 그런 나에게도 예수님은 말씀하실 것 같다. "네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내가 가진 걸 나눔으로써, 자원의 낭비가 적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이웃의 허기를 달래주고 싶다.
하나님은 우리가 허기를 느끼는 육체임을 아신다. 성경은 먹고사는 일을 폄하하지 않고 그 일에 무관심하지도 않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간구하라고 가르치며(마태복음 6:11), 엿새 동안 힘써 일하라고 명령한다(출애굽기 20 :11). 먹고살기 위한 애씀과 기도를 속되다 핀잔하지 않으신다.
동시에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마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이 필요한 줄을 아신다"(마태복음 6:25,32하)라고도 말씀하신다.
나는 채식 지향 식단에 매우 애착이 있다. 건강한 음식에 관심이 많다. 먹고사는 일에 드는 수고를 감당한다. 자녀의 입에 밥을 넣어줘야 할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것들에 전전긍긍하지 않으려 조심한다. 끼니에 목숨 걸고 싶지는 않다. 밥 먹고 사는 일에 최고의 정성을 쏟고 싶지도 않다.
성경은 성도에게 밥심으로만 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신명기 8:3) "썩어 없어지는 음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원히 있어서 영생을 주는 음식을 위해 일하여라."(요한복음 6:27상)
예수님은 스스로를 "나는 생명의 빵"(요한복음 6:35중)이라고 정의하셨다. 그분이 하신 일과 그의 가르침이 내 영혼의 양식이 된다. '영혼의 양식'과 '내 영혼'이 어떠한 관계인지는, '육체의 양식'과 '내 육체'가 등장하는 그림자극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당기는 게 밥이다.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반드시 섭취해야 한다. 음식은 내 입에 기쁨과 환희를 선사하며 나를 만족시킨다. 그것은 내 육체를 힘차게 견인해 주는 연료이다. 먹지 않거나, 덜 먹거나, 잘못 먹으면 탈이 난다. 음식과 내 몸의 이러한 관계는 내 생명이 유지되는 메커니즘인 동시에, 영혼의 양식과 내 영혼의 관계에 대한 힌트가 된다.
한편 성경에는 이런 말씀도 있다. "모든 음식을 먹는 사람은 채소만 먹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또 채소만 먹는 사람은 모든 음식을 먹는 사람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4:3)
오늘날엔 건강이나 입맛, 환경 보호 등의 이유로 육식인과 채식인이 대립하기도 한다. 바울이 기록한 저 상황은 오늘날의 경우와는 달랐다. 종교적인 문제가 다툼의 원인이었다. 음식에 대한 구약의 율법을 따르는 무리와, 음식에 대한 명령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무리가 대치한 것이었다. 이유가 어떠했든, 먹는 음식의 차이로 서로를 비난하는 일이 2천 년 전 초대 교회에도 있었다. 바울은 그러지 말라고 권면했다. 나처럼 특정한 음식에 끌리는 사람이 새겨 들어야 하는 가르침인 것 같다.
이상의 내용들이 내가 성경에서 길어 올린 '먹는 일'에 관한 교훈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들이 불필요하게 고통당함으로써 얻어지는 음식은 최대한 덜 먹기,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환경을 망치는 음식은 지양하기, 먹는 것에 욕심내지 않기, 건강을 위해서 먹기, 나와 다른 식성을 가진 사람을 비난하지 않기, 굶주린 이웃에게 양식을 나누기, 먹고사는 일에 책임을 다하되 그것에 집착하지 않기, 내게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다는 사실을 믿기, 육체의 양식보다 영혼의 양식을 소중히 여기기.
나는 이 목록들을 빠짐없이 온전하게 추구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기도하며 애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한다. 채식 위주 식사는 그 일 중 한 가지 이다.
1.https://www.freshplaza.com/article/2193827/why-does-a-cucumber-cost-almost-3-euros-in-greenland/
2. https://www.numbeo.com/food-prices/country_result.jsp?country=Greenland
3.https://www.youtube.com/watch?v=p-sZT3V9u9Q
4. 애니 레너드, 『물건 이야기』, 김영사
5. 존 로빈스, 『육식의 불편한 진실』, 아름드리미디어
녹차의 일러스트 샵 ▼
https://marpple.shop/kr/nokc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