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성은 순순히 정정되지 않는다. 사실에 입각한 지적, 회유, 잔소리, 완력, 그 무엇으로도 손쉽게 각성시킬 수 없다. 자신의 식단에 애착이 있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예를 들면 나와 내 부모님-일수록 더욱 그렇다. 식성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헨미 요는 『먹는 인간』에서 이렇게 말했다. "각 민족이 선조나 문화의 기억을 맛으로 표현하는 것이 음식이다. 그 때문에 '음식'과 관련된 차별은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게 내 생각이다."
차별까지 가지 않더라도, 먹거리에 대한 참견 · 지적 · 교정 역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평생에 걸쳐 구축된 식성은 그 사람의 기호이자 문화이다. 습관이자 역사다. 사적이다 못해 은밀한 영역이다. 그의 육체를 구성한 메커니즘이다. 자신의 생명을 지금까지 견인해온 방편이다. 그러하기에, 먹거리에 대한 이견은 수면 위로 띄우기만 해도 분위기가 어색해질 수 있다. 이견의 목소리를 키울수록 서로의 관계는 껄끄러워진다.
이런 딜레마가 또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좋은 식단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으나 그는 내 이야기를 불편해한다. 그를 탓하려던 게 아닌데, 그는 비난받는다고 느낀다. 조심스레 사실을 꺼내 보이는 것만으로도, 강요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철벽이 세워진다.
요즘은 오지라퍼를 최악으로 여긴다. 나도 가족들의 개별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고상한 인간이 되고 싶다. 그들을 참견하고 간섭하는 악의 축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피붙이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 앞에선 마음이 느긋해지지 않는다. 내 가족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안 하기란 너무 어렵다.
4,5분짜리 채식 · 건강 영상 세 개를 아빠에게 공유한 지 두 시간 후, 답장이 왔다. "사랑하는 딸아. 아빠를 걱정하고 잘 챙겨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구나. 격려와 위로가 많이 된다. 고마워."
진심을 읽어주셔서 감사했다. 몇 년 전보다 괜찮은 반응이기도 했다. 수년 전, 아빠의 관상동맥이 좁아졌다는 진단 소식을 들었을 때도 채식과 혈관병에 관련된 영상을 공유해드렸었다. 그때 아빠는 매우 시큰둥해하셨다. 영상 내용과 본인은 별 연관이 없다고도 말씀하셨다. 완곡한 거부였다. 그 뒤로 수년간 나는 아빠에게 채식의 치읓도 꺼내지 않았다. 삐쳐서가 아니었다. 닫혀 있는 문에는 아무것도 넣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이번에도 내가 추천한 영상 자체엔 반응이 없으셨다. 아예 보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직장에서 은퇴하신 후, 정치 관련 유튜브와 뉴스를 온종일 시청하신다. 드라마에도 푹 빠지셨다. 엄마는 이런 말을 하신 적도 있다. "아빠가 자꾸, 자기가 재밌게 본 드라마를 나한테도 보라고 하잖아. 아유 피곤해." 아빠가 자극적인 영상들을 미뤄놓고 내가 추천한 영상을 보실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나에게도 자극적인 장면이 있다. 서로 다른 곳이 아팠던 나와 남편과 막내가 똑같은 식사를 하며 모조리 회복된 일이다. 채식(자연 식물식 위주 식단)은 내 몸에 있던 여덟 가지 고질병을 삭제했다. 남이 보면 '겨우 개인적인 체험'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우리 가족의 케이스만으로 채식을 두둔하는 건 아니다. 내 몸에 채식 실험을 시작할 때 여러 권의 책과 매우 많은 논문을 읽었다. 방대한 양의 영상들과 다양한 다큐멘터리들을 봤다. 그 과정을 통해 부정할 수 없는 증거들을 쌓았다. 균형 잡힌 자연식물식이 아빠의 심혈관에 도움을 줄 거라는 건 '나의 사색'이 아닌 '밝혀진 사실'이다.
「더 게임 체인저스」는 그런 흥미로운 사실이 가득한 다큐멘터리 중 하나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빠의 호기심을 끌만한 운동선수들의 채식 · 건강 관련 영상이기도 하다. 아빠의 약점인 관상동맥에 대한 내용도 등장한다.
영상 세 개를 보냈던 그 다음날, 나는 아빠에게 카톡으로 저 다큐멘터리를 소개했다. '넷플릭스에서 볼만한 게 없으면 이것도 한 번 시청해보세요'라며 무심한 투로 추천했다. 드라마 권하듯 가볍게 툭.
이틀 연속으로 채식 관련 영상을 밀었으니 이제 한동안 영상 공세는 멈출 생각이다. 나의 영업이 드세어지면 아빠는 피곤해 하실 거다. 그러면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대신 게임 오버(game over)가 되겠지. 작전상 후퇴다.
아이들에겐 부모님과 다르게 접근했다. 접근보다는 진격에 가깝다. 후퇴란 없다. 부모님의 식탁까지는 고속도로로 두 시간을 달려야 도달할 수 있지만 우리 집 식탁은 내 손안에 있다. 나는 부모님을 '키우지' 않지만 내 아이들은 '키운다'. 내 아이들이 먹는 음식은 내 소관이다. 아이들의 채소 섭취는 기호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닦고 책상을 정리하는 것처럼 꼭 해야 하는 생활 습관이다. 샐러드나 익힌 채소를 식탁에 올릴 땐, 다른 반찬처럼 그릇 하나에 담아 내지 않는다. 1인용 접시에 각자 먹어야 할 분량의 채소를 할당해 준다. 그 안에 든 건 접시 주인이 반드시 비워야 한다. 물론,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준다. 그래야 채소에 정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좋아하는 소스(발사믹 글레이즈, 사과 농축 식초, 샤부 수끼 소스, 피넛 월남쌈 소스, 쌈장 등)도 함께 내어 쉽고 맛있게 먹도록 해준다.
이러한 채소 배급 제도는 (그리고 채식 위주 식단은) 아이의 심한 아토피를 역전시켰다. 나는 가족 밴드에 아이의 채식 전후 이야기를 자세히 적었다. 극적인 비포 애프터 사진도 올렸다. 치유의 기쁜 소식도 나누고, 그 소식을 다리 삼아 채식의 유익도 슬쩍 소개하고 싶었다. 글의 마지막엔 「Forks over Knives」 다큐를 첨부했다. 내게 깊은 인상을 준 채식 관련 다큐멘터리였다. "좋은 다큐멘터리인데 안 보신 분들은 한번 보셔도 좋을 거예요."라고 덧붙이면서.
댓글이 달렸다 "그래도, 아무거나 먹어도 보통 사람처럼 이겨내는 체질이 되면 좋겠다", "크면서 빨리 스스로 적응할 수 있는 체질이 되면 좋겠네요" 가족들은 채식의 효과에는 관심 없었다. 다큐멘터리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집안에서 말발이 안 선다. 집안의 막내인 내 말은 수십 년 전부터 가족의 귓등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십 대 시절에 크게 방황하기도 했다. 이런 불리한 입지에 있는 내가, 가족의 식습관이라는 신성불가침 영역을, 언어를 통해 살짝이라도 진동시키는 일은 정말이지 만만치가 않다.
그럴지라도 나는 가족들에게 야금야금 보여준다. 훌륭한 성적이 나온 나의-채식인의- 건강검진 결과를 보여준다. 아토피를 벗고 건강하게 지내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채식 위주로 맛있게 차린 식구들의 생일상을 보여준다. 수년째 일탈 없이 채식을 지속하는 내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처럼, 몇 년에 한 번씩 채식 관련 영상을 추천하기도 한다. 채식에 관심 없는 걸 넘어 거의 부정적이다시피 한 가족들을 향해 채식을 해보라고 우격다짐하지 않는다. 육식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켜 선동하는 짓은 꿈에라도 하지 않는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면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조심조심 열어 보일 뿐이다.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다. 너무 조심하는 태도 때문에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나 스스로 희석시키는 중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것 말곤 다른 전략이 없다. 앞으로도 말없이 뭔가를 보여줄 생각이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해도, 아무도 관심 없어도, 아무도 조금도 바뀌지 않아도.
한편, 아빠의 응급실 사건 후 엄마는 말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어. 저러다 네 아빠가 언제든 가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 " 그런 뒤 이렇게 덧붙이셨다. "물론 나는 네 아빠가 나랑 오래 살면 좋겠지만…."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부모님의 말은 가끔 거짓말이 되나 보다.
거짓말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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