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 봐'의 어려움 (1)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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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녁, 아이들과 모여 앉아 영상통화를 걸었다. 화면에 나온 친정 엄마는 "내가 다시 걸게"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잠깐 등장한 엄마의 얼굴은 어두웠다. 나는 아이들을 보낸 후,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아빠의 몸 상태가 안 좋다고 하셨다. 어지럼증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아빠의 관상동맥은 60% 정도 막혀있다. 저만큼 막혔다는 소리를 들은 게 수 년 전이니 지금은 혈관이 더 좁아졌을 거다. 관상동맥은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중요한 혈관이다. 관상동맥에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다음 과녁은 심장이 된다. 구체적으로는 부정맥, 심부전, 심인성 쇼크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아빠는 최근에 부정맥 진단을 받으셨다. 부정맥은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현상이다. 그러다 보면 혈액이 머리로 원활하게 올라가지 못한다. 이때 어지럽게 되는데, 어지럽다 못해 실신까지 할 수 있다. 희한한 이야기이지만 부정맥 약의 부작용 중 하나도 어지럼증이다. 약을 먹으나 안 먹으나 어지러울 수 있단 소리다. 몇 주 전, 아빠는 극한 어지럼증에 붙잡혔다. 아빠와 엄마는 콜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갔다. 엄마 말에 따르면 그날 아빠는 얼굴이 노래지셨다고 한다.


응급실에 간 아빠는 머리 MRI를 찍었다. 사십몇 만 원이나 하는 MRI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찍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우셨단다. 할 짓이 못 되는 검사라고 아빠는 말씀하셨다. 검사 결과, 머리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사가 이명을 의심해서 이비인후과에도 들렀지만 귀 속도 깨끗했다. 그러나 며칠 전, 어지럼증은 재차 아빠를 괴롭혔다. 머리를 1밀리미터만 움직여도 세상이 미치광이처럼 흔들리는 괴로움이었다. 아빠의 몸은 아우성쳤다. '이 몸엔 여전히 이상이 있어. 깨끗하지 않은 뭔가가 있다고.'


두 번째 찾아온 어지럼증은 다행히 처음 것보단 약했다. 응급실 신세는 면했지만 엄마는 긴장하셨다. 아빠의 상태를 살피느라 엄마는 소화가 안 될 지경이셨다. 엄마의 목소리엔, 힘은 없고 걱정만 있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너무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아빠는 다음날 병원에 예약을 잡았고 그 이튿날 진료를 받으셨다. 의사는 두 번의 어지럼증을 부정맥 때문으로 진단했다. 어지러움을 완화시켜주는 약도 한 보따리 처방해 주었단다. 아빠는 밥 없이 약만 먹어도 배부를 지경이다.


이제 아빠는 우리 집에서 가장 약한 사람 중 한 명이 됐다. 그러나 원래는 우리 집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이었다. 아빠는 평생 술 · 담배를 안 하셨다. 언제나 날씬하셨다. 거의 매일 운동을 하셨다. 누구나 인정하는 자기관리의 표본이셨다. 운동장을 몇 바퀴씩 뛰고, 재빠른 걸음으로 산을 오르셨다. 하지만 밖에서 일하시다 보니 외식이 잦으셨다. 소화력이 좋지 않아서 과식은 못하셨지만 삼겹살이나 곱창 같은 것도 맛있어하신다. 아빠는 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을 즐기신다. 집에서도-좋은 음식도 드시지만- 과자나 고기, 생선, 계란, 빵, 햄, 소시지, 우유, 치즈, 버터 등을 자주 드셨다. 아빠의 혈관엔 서서히 기름때가 끼었을 것이다.


아빠가 응급실에 다녀온 지 얼마 후, 나는 친정에 갔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친정집 냉장고에 있는 버터를 내가 다 먹어버리겠다고 했다. '아빠의 관상동맥에 낀 지방이 걱정돼요. 혈관을 청소해 주는 식물성 음식 위주로 드시면 좋겠어요.'라고 또렷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아빠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하셨다. 잔소리할 거면 앞으로 친정에 오지 말라고.


아빠의 입맛은 수더분하지 않다. 채식 위주로 먹느니, 맘 편하게 맛난 걸 먹다가 때가 되면 그냥 눈을 감겠다는 생각이신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이런 이야기도 자주 하셨다. "오래 사는 게 반드시 복은 아니야. 빨리 죽지 않는 건 본인과 가족들에게 고통일 수 있어." 엄마도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신다. "난 몇 년 전부터 건강검진 안 받는다. 암에 걸리면 치료받지 않고 그냥 죽을 거야." 두 분 다 연명치료에 뜻이 없음은 물론이다.


노인이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말하는 건 우리나라 3대 거짓말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꽤 많은 노인들은 빈다. 너무 오래 살지 않게 해 달라고. 나의 두 할머니도, 자신들을 빨리 천국으로 불러주시길 간구하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두 분의 기도는 멈췄다. 거짓말쟁이라서, 마음이 바뀌어서는 아니었다. 치매 때문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쇠약해가는 두 할머니를 모셨다. 부모님이 친할머니를 모신 건 16년쯤 전이었다. 그때 아빠 엄마는 지금보다 힘 있고 젊으셨다. 아빠의 다른 형제자매들은 친할머니를 모실 수 없다고 했다. 장남도 아닌 아빠와, 맏며느리도 아닌 엄마는 친할머니의 변을 닦고, 몸을 씻기고, 로션을 발라드리고, 죽을 쒀 드렸다.


몇 년 뒤엔 친할머니가 쓰시던 방을 외할머니가 쓰셨다. 외할머니의 치매도 점점 깊어갔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적신 이불을 몇 번이나 빨았다. 얼마 후 외할머니는 요양원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백발의 노인이 된 아빠 엄마는, 아흔의 노모를 손수 닦고 씻기고 먹일 힘과 젊음이 없었다. 엄마는 자기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며 울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요양원에서 면회를 금지했다. 일주일에 한 번 영상통화를 하는 것이 부모님과 외할머니의 유일한 만남이 되어버렸다.


부모님이 정립한 '노후'에 대한 생각은 두 할머니를 모시며 만들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아빠 엄마는 '오래 사는 것'에 피곤해지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것에 조금은 시큰둥해지셨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나 두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나도 과하게 오래 사는 일엔 관심 없다. 내 기준에서 '건강한 삶'은 '장수'가 아니다. 조각 같은 몸매로 사는 것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건강한 삶'은 사는 날 동안 좋은 컨디션으로 지내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의 '장수'도 바라지만 더욱 바라는 것은 그분들의 '무병'이다. 사시는 동안 아프지 않길 바란다. 날마다 상쾌한 일상을 향유하시길 빈다. 마지막 날까지 내 이름을 잊지 않으시면 좋겠다.


아빠가 두 번째 어지럼증을 겪은 다음 날, 나는 아빠에게 카톡을 보냈다. 현미채식을 통해 건강을 찾은 사람들의 영상을 공유해드리기 위해서였다. 아빠 나이대의 사람, 아빠처럼 관상동맥이 취약했던 사람, 이야기를 조리 있게 전달하는 사람, 심지어 외모마저 아빠와 비슷한 사람들의 후기를 엄선했다. 그 영상들이 아빠의 호기심을 조금이라도 건드리길 바랐다. 세 개의 짧은 영상을 보내면서 이렇게 썼다. "아빠, 어제 어지럼증 때문에 고생 많으셨지요. 오늘은 푹 쉬는 하루 보내셔요. 저 영상들은 심심할 때 한 번 보셔요~."


"저 영상들을 반드시 보세요!"라고 쓰지는 않았다. 굳이 나서서 강요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사실을 듣는 것만으로 강요받았다고 느끼니까.


미국 암 연구소 연구자들은 채식주의자가 80세까지 살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1.8배 높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채식주의자가 암에 걸릴 확률은 일반인보다 25~50퍼센트 낮았다. 그 후 미국 암 협회는 암의 발병률을 낮추려면 육류 섭취를 줄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러자 미국 육류연구소는 이렇게 항의했다. "강제적이다시피 음식 선택을 강요하는 가이드라인은 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음식 선택을 강요한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강요당한 사람처럼 화를 냈다.


사람들은 강요받으면 분노한다. 감동받아야 움직인다. 누군가의 변화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강요는 좋은 전략이 못된다. 그래서 나는 늘 조심스럽다.









*. 존 로빈스,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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