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스킨라빈스는 세계 최대의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다. 존 로빈스는 배스킨라빈스의 상속자였다. 그러나 그는 기업 상속을 포기했다. 천문학적인 유산도 사절했다. 집안을 나와 가난하게 살면서 회사로부터의 경제적 지원도 거부했다. 아이스크림을 포함한 각종 유제품과 축산물에 대한 진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존 로빈스는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이하 『음식혁명』)에 음식과 사람, 음식과 동물, 음식과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방대한 과학적·역사적 사실을 엮어 유려하게 풀어놓았다. 존 로빈스가 진실을 알았을 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처럼, 그의 책들을 읽은 독자는 읽기 전의 삶으로 쉽게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음식혁명』에서 존 로빈스는 말한다. 인간과 동물과 지구 모두에게 가장 좋은 식사는 식물 중심 식단이라고.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의 음식에 대해 판단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책에서 느껴지는 어투에서도 그런 면을 느낄 수 있다. 그의 문장엔 우물쭈물하는 구석이라곤 없다. 동시에, 강요나 무례함 역시 없다.
『음식혁명』에는 존 로빈스의 친구 이야기가 등장한다. 마이크라는 그 친구는 육식을 즐겼다. 마이크는 존 로빈스가 채식을 하는 것과 어떤 책을 집필 중인지를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존 앞에서 채식을 조롱했고, 스테이크를 권했다. 반대로 존은 친구에게 채식을 강권하거나 그의 식단을 비웃지 않았다. 그저 육식과 암의 관계에 대한 '사실'을 말해주었고 친구의 건강을 걱정했다. 하지만 마이크는 무시했다. 시간이 지나 마이크는 결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도 마이크는 두꺼운 비프스테이크를 먹었다. 그는 치료의 희망을 의약품과 수술에만 걸었다. 식단과 대체 치료에 대해선 말도 하기 싫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마이크는 그의 마지막 날에 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내 여행에 동참하지 않은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나는 채소를 싫어해. 네 여행길에는 채소만 있을 뿐이잖아."
존은 대답한다. "나도 동감이야. 하지만 마이크, 나는 너에게 더 독단적으로 나가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워.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마이크는 말한다. "아니야, 결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 나는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갔거든. 나는 항상 내 마음대로였지. 네가 아무리 권했어도 나는 네 말을 듣지 않았을 거야."*
존은 꺼져가는 친구의 생명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한편, 존 로빈스가 친구를 대한 방식과 반대였던 사람도 있다. 나의 엄마와 외할머니가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작은 외삼촌은 알코올중독자였다. 외삼촌은 술을 드시면 외할머니나 엄마에게 꼭 전화를 했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외삼촌의 전화 주정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응대했다. 가끔은 애걸하거나 살살 달래기도 했다.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으름장을 놓을 때가 가장 많았다. 험한 말로 소리 지르며 싸우기도 많이 하셨다. 싸우면 싸웠지 외삼촌을 포기하고 전화를 끊어버린 적은 없었다. 명절 같은 날 외삼촌을 만나면 외할머니나 엄마는 삼촌에게 반드시 훈수를 두셨다. 그러나 외삼촌은 계속 술을 마셨다. 노모와 누나에게 욕을 먹을게 뻔한 걸 알면서도 전화 주정 또한 이어갔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외삼촌이 술을 끊고 제대로 살아보길 원했다. 두 분은 외삼촌에게 술 끊으라는 잔소리를 숨 쉬듯 하셨다. 외할머니는 외삼촌을 위해 평생 눈물로 기도했다.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었지만 엄마는 외삼촌을 경제적으로 끊임없이 지원했다. 외삼촌은 제대로 된 직장이 없으셨기에 사촌들의 학비를 엄마가 보탰다. 외삼촌을-외삼촌의 떨떠름한 동의하에- 알코올중독 병동에 입원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아빠가 평생 근무한 회사에서 퇴직하고 받은 퇴직금으로-아빠의 동의하에- 외삼촌을 위한 가게를 오픈해 주기까지 했다(그 가게는 몇 년 후 폐업했다). 외삼촌은 50대 즈음에 다리에 심한 통풍을 얻었다. 다리를 절게 되면서 일상생활은 더 곤란해졌다. 통풍의 원인은 당연히 술이었다. 엄마는 외삼촌의 병원비를 지원했다. 외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진 외삼촌의 집에 들어가셨다. 그 집은 아주 좁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였다. 외삼촌은 말년에 간이 완전히 망가졌다. 복수가 찬 외삼촌은 병원에 입원해서 밥투정을 했고 간호사들에게 불평을 쏟아냈다. 엄마는 기차로 한참을 달려 외삼촌이 계신 병원에 도착했다. 성질을 부리는 외삼촌을 보던 담당 의사는 엄마에게 말했다. "보통 이 정도 되면 가족들도 아무도 안 와요." 엄마도 외삼촌의 태도에 기막혀 하셨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외삼촌의 수술 비용을 지원했다. 아빠도, 늘 그래왔듯, 처남을 돕는 일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위험한 수술이었고, 수술을 한다고 나아질 거라는 장담은 없었다. 그러나 엄마는 말했다. "네 외삼촌이 죽는 걸 무서워하더라." 엄마는 막내 남동생을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삼촌은 그 수술에서 깨어나지 못하셨다.
존 로빈스와 내 외할머니와 부모님은 자신들의 온 삶을 투신하여 '먹지 마'라고 청했다. 방법은 전혀 달랐지만 메시지의 내용과 사이즈는 비슷했다. 초거대 기업의 상속을 포기하면서까지 '먹지 마'라고 했다. 때론 싸우면서, 때론 평생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면서까지 '먹지 마'라고 애원했다. 이보다 더 간곡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마이크와 내 외삼촌은 바뀌지 않았다.
두 사람의 죽음을 주변인들의 미숙함 탓으로 돌리고 싶진 않다. 호소의 스타일이 너무 약했다거나 너무 거칠었다는 식으로 함부로 재단하고 싶지 않다. 고기와 지방, 알코올에 들어있는 중독성을 과대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주변의 진심 어린 도움이나 인간의 의지, 의학적 치료로는 오래된 입맛이나 중독을 뉘우치게 할 수 없다고 폄하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먹지 마'라는 말의 명중률이 태생적으로 낮은 건 아닐까….
그럼에도 그 말이 꽂히는 사람은 존재한다. '먹어 봐' 또는 '먹지 마'라는 말이 먹히는 사람은, 의심하고 있는 사람이다. 자기의 식단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자신에게 주입하는 음식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이다. 식습관이라는 악착스러운 관성에서 튕겨 나갈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 존 로빈스,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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