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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Oct 13. 2022

고장 난 식욕은 멀티태스킹 탓이었구나

지난주에 급체를 했다. 무지하게 아팠다. 급체 후 서서히 회복하며 다짐했다. '앞으론 소식할 거야!!!' 그래놓곤 어제, 점심 식사 후 배가 꽉 찬 상태에서 커다란 과자 봉지를 뜯었다. 정신 차려보니 거기 들어 있던 나초칩을 반이나 먹어버린 후였다. 내 기준에서 폭식까진 아니었지만 빼도 박도 못하는 과식이었다. 


끼니를 채식 위주로 건강하게 잘 챙겨 먹는 편이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먹는 양에선 수정이 필요하다. 답답해질 만큼 속이 꽉 찼는데도 멈추지 못하고 계속 먹을 때가 많다. 허리와 배에 군살이 불어나는 게 보인다. 불쾌한 포만감도 자주 느낀다. 스트레스 받거나 피곤할 때도 음식으로 푼다. 간식도 무질서하게 섭취한다. 결국 지난주엔 제대로 체해서 죽다 살아나기에 이르렀다. '적게', 아니 '적당히' 먹고 멈추는 것은 왜 이렇게도 어려운가.


소식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수로 그렇게 적게 먹는 거지? 검색창에 '소식하는 방법'을 쳤다. 많은 검색 결과들 중 '온전히 먹기'라는 방법이 있었다.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많이 먹은 후에도 더 먹고 싶은 이유는 음식을 온전하게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로만 먹지 말고 머리와 마음으로도 먹어야 한다. 티브이나 핸드폰을 치우고 음식에만 집중해서 먹어라. 아무리 바빠도 식사할 땐 차분하게 집중해서 조용한 공간에서 여유 있게 천천히 식사해라. 꼭꼭 씹어서. 행복해하며 맛을 즐기며 먹어라.(출처)" 이렇게 먹어야만 식욕이 만족하기 때문에 비로소 적당히 먹을 수 있게 된단다. 


'잘 씹어 먹어~ 천천히 먹어'라는 이야기는 흔히 들어왔다. 하지만 단지 수월한 소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먹어야만 정신적 식욕까지 채워진다는 강조점이 신선했다. 좀 찔리기도 했다. 내가 밥 먹는 꼴이 딱 저렇기 때문이다. 식사할 때 밥만 먹은 적은 전무하다. 밥을 땐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식구들과 수다를 떨었다(마지막 항목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함). 음식에 집중할 때라곤 배고파서 뭐 먹을지 상상할 때와 밥 차릴 때뿐이었다. 일단 먹기 시작하면 허겁지겁, 후루룩 먹었다. 그렇기에 '온전히 먹기'라는 약간 새로운 패러다임에 마음이 갔다.


오늘부터 실습에 들어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간식을 안 먹고도, 과식하지 않고도 만족스러운 하루를 살았다. 밥 먹을 때 모든 자극(영상 시청 등)을 끊고 오직 먹는 음식과 맛, 식감에 집중했다. 가족과 대화는 나누었지만 대화 사이사이엔 내 입에 들어간 음식을 열심히 감각하려고 애썼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 행복한 마음으로 즐겁게 먹었다.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서-약 30분- 천천히 오래 씹어 먹었다. 먹은 양도 적당했다. 심지어 점심엔 호박 몇 조각, 저녁엔 사과 세 조각을 남기기까지 했다. 평소보다 약간 덜 먹었는데도 식욕과 허기가 충분히 채워졌다. 더 이상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박탈감 같은 것도 없었다. 나 정말 이런 사람 아닌데... 신기하고 기뻤다.


겨우 1일 차이지만 '밥 먹을 땐 밥만 먹기'의 순기능을 체험하며 멀티태스킹의 해악을 새삼 떠올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은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마이크 부룩스는 "진정한 멀티태스킹 대신 우리는 과제들 사이를 부리나케 오간다."라고 말했다. 만프레드 슈피처도 "멀티태스킹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본질적인 것 하나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안데르스 한센은 "우리는 한 번에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자신은 멀티태스킹을 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여러 가지 과제 사이를 뛰어다니고만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로타르 J. 자이베르트는 "멀티태스킹은... 컴퓨터에 쓰이는 용어로 인간에게는 결코 통용될 수 없는 개념이다."라고 썼다. 이동우도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라. 인간은 원래 멀티태스킹에 매우 취약" 하다고 말했다.


이런 공식은 식욕에도 예외가 없나 보다. 흥미진진한 영화를 보면서 수학 문제를 풀 수 없듯, 눈과 마음이 다른 곳에 팔린 채 성의 없이 먹는 밥으로는 강렬한 식욕을 풀 수 없는 게 아닐까. 무엇을 먹는가와 더불어, 지금 먹고 있는 그 음식에 몰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저녁을 먹은 지 네 시간이 지났다. 기분 좋은 허기가 느껴진다. 몸과 마음이 만족스럽다. 앞으로도 모노태스킹으로 밥 먹는 연습을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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