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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Oct 31. 2020

아이의 코로나19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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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는 더위를 많이 탄다. 잠바나 양말을 입으라고 하면 싫어한다. 어제도 아이는 얇은 면 티 하나를 걸치고 가을 찬바람 속으로 나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못 입게 된 내복의 팔을 잘라 민소매를 만들며 놀았다. 그걸 입곤 재밌다며 꼴까닥꼴까닥 웃어댔다. 추우니 옷을 제대로 입으라는 내 잔소리는 "하나도 안 추워요, 깔깔깔깔"이라는 소리로 돌아왔다.


오늘 새벽 5시. 큰애 방에서 "으아아!" 소리가 났다. 쥐어짜는 듯한 기침소리도 이어졌다. 아이는 코가 막혔다며 울먹였다. '찬바람 쐬더니 그럴 줄 알았다'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고 아이를 달랬다. 코와 목이 불편한지 캑캑거리고 킁킁거렸다. 해 뜰 때까지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뒤척였다.


오전 7 . 체온계로 아이의 열을 재니 37.6˚ C였다. 37.5˚ C 이상이면 학교에   없다. 매일 등교  체크해야 하는 건강 상태 자가 진단 사이트에 들어갔다. '37.5˚ C 이상 발열감' 항목에 처음으로 체크했다. '제출' 클릭했다. '등교할  없습니다' 적힌 화면이 떴다. 처음 보는 문장이었다. 큰애의 담임 선생님께도 '여차 저차 하여 아이를 집에서 쉬게 하겠습니다.'라고 카톡을 보냈다. 정상 등교 시작한  일주일 조금 넘었는데 감기 탓에 다시 집콕이다.


하루 종일 심심할 큰애를 위해 책을 대출하러 도서관에 갔다. 문 여는 시간 9시에 맞춰 도착. 사서께서는 단골이기도 한 첫 손님의 체온을 재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내가 고르는 책을 보며 "회원님이 고르시는 책은 다 재밌어 보여요. 책을 참 잘 고르시는 것 같아요."라고 살갑게 말을 걸어 주시기도 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37.5˚ C가 넘었을 경우 무조건 보건소에 연락하여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물어봐야 한단다. 스무 권의 책을 짊어지고 집으로 허둥지둥 왔다. 아이는 여전히 코를 풀고 기침을 하며 사과를 먹고 있었다. 보건소에 전화하려고 보니 대표 번호를 못 찾겠다. 나뭇가지처럼 세분화된 부서들의 전화번호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그렇게 헤매고 있을 때 담임선생님의 카톡이 왔다. 일곱 자릿수의 보건소 전화번호가 정답처럼 적혀 있었다.


통화 연결음 두 번 만에 보건소 직원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 상황을 이야기하니 전화상으로 역학조사를 진행하셨다. 아이 주민번호, 주소, 본인 해외여행 유무, 기타 가족 해외여행 유무, 타 도시 방문 유무, 방문판매나 종교시설 방문 등을 재빨리 물어보셨다. 말투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능수능란함과 똑 부러지는 일처리가 든든하게 느껴졌다. 당연한 소리지만, 성실하게 협조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우러났다. 직원분은 "상부에 보고한 후 검사 유무를 결정해서 10분 안에 알려드리겠습니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2,3분 뒤 전화가 왔다. 코로나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며 지금 즉시 00동 보건소로 오라고 했다.


아. 말로만 듣던 코로나 검사가 우리 가족의 일상으로도 들어왔구나.


민둥한 기분을 느낄 짬도 없이, 보건소 직원분의 당부가 이어졌다. "보호자와 아이 모두 마스크를 쓰되, 차에선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으셔야 합니다. 지금 바로 오셔야 저녁에 결과가 나옵니다." 승용차 안에서 떨어져 앉아봤자 그게 그거지만 최대한 조심하라는 말씀이겠지. 연락을 듣고 집에 온 남편이 우리를 보건소로 데려다주었다. 차 안에서 담임 선생님께 상황 보고를 했다. 선생님께선 '그래요??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이 있었나요?? 조심히 다녀오세요'라고 톡을 주셨다. 네 개나 되는 물음표에서 담임 선생님의 대경실색한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큰애는 "코에 집어넣는 그거 해야 돼요?"라고 물었다. 몇 년 전 독감 걸렸을 때 해본 검사를 말하는 거다. 길쭉한 면봉을 콧속 깊이 넣어 후비는 검사였는데 아이가 질색했었다. 나는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가 봐야 알 것 같아"라고 거짓말했다. 미리 겁줄 필요는 없으니까.


이보다 더 화창할 수 없는 가을 하늘 아래에서 내 마음은 조금씩 흐려졌다.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만에 하나 아이가 코로나에 걸렸다면?'이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아이와 우리 가족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우리 밖의 사람들이 우르르 떠올랐다. 우리 가족은 서로의 폐 안에 들어갔던 공기를 작은 집 안에서 모조리 공유했다. 그 상태로 둘째 아이는 학교에 간 것이다. 지금도 반 아이들 모두와 함께 숨 쉬는 중일 거다. 남편은 일터 동료들과 함께, 나는 도서관 직원분들과 함께 숨 쉬었다. 마스크는 쓰고 있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벌써 이렇게나 많은 이들과 접촉해 버렸다. 그 접촉자들 역시 또 다른 사람들과 부지런히 연쇄 접촉 중일 것이다. 우리 가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람들을 향한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마음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코로나 확진자와의 접촉자 파악, 이 바이러스의 종식 같은 이야기가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어려운 것인지도 와락 인식되었다.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이 있었나요??'라는 질문에 누가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 아이나 우리 가족 모두 해외나 타 도시 방문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우리 네 식구가 모인 집, 같은 반 29명 아이들과 선생님이 매일 만나는 학교 교실, 수많은 학생들을 접촉하는 학교 급식 시간, 대여섯 명의 학생이 매일 모이는 작은 피아노 학원, 너른 예배실에서 열댓 명 모여 일주일에 한 시간 드려지는 초등부 예배, 이것들 모두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접촉은 촘촘한 연결망 속에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링크와도 같다.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수많은 사람과의 접촉에 다름없다. 그와의 접촉은 그의 가족, 그가 방문한 마트의 손님과 직원, 그의 직장 사람들과의 접촉을 함축한 것이다. 무인도에 살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구나 쉽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이러스 접촉자나 전파자가 될 수 있다.


보건소에 도착하니 직원분이 전화로 안내해 주신 선별 진료소가 보였다. 컨테이너 박스로 임시 설치된 선별 진료소 벽면에는 '누르시오'라는 글자와 빨간 버튼이 있었다. 버튼을 누르니 방호복을 입은 직원이 나와 이름을 물었다. "의사 선생님 금방 내려오실 거예요"라며 A4 종이 두 장을 주셨다. '격리 통지서'와 '자가격리 대상자를 위한 생활수칙 안내문'이었다. 본 격리조치에 따르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수 있음…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 같은 무시무시한 '있음'들이 눈을 휙휙 스쳤다. 나와 너의 안전을 위해 약속해달라는 간곡함으로 읽혔다. 곧, 마스크를 한 젊은 의사 선생님이 도착했다. 컨테이너 박스 옆엔 사람 한두 명 들어갈 법 한, 작은방 두 개가 있었다. Specimen Chamber라고 쓰여있는 그 방은 뒷면에 출입문, 앞면에 큰 유리창이 나 있었다. 유리창엔 구멍이 두 개 뚫려있는데 그 구멍으로 파란색 팔 토시 같은 게 바깥으로 달렸다. 의사 선생님은 Specimen Chamber에 들어가 팔 토시에 자기 팔을 끼웠다. 그런 뒤 Medi 어쩌고라고 쓰여있는 작은 박스에서 아이보리색 의료용 장갑을 꺼냈다. 피부에 껌처럼 달라붙는 빡빡한 그 장갑을 양손에 두 장씩 착용하셨다. 그 후 빨갛고 긴 비닐봉지에서 긴 면 봉 두 개를 꺼내셨다. 큰애는 그걸 보자마자 질색팔색. 선생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했다. 아이의 목과 콧속으로 면봉을 후비적후비적 문지르셨다. 20초도 안 되어 검사가 끝났다. 코를 찌르는 검사 때문에 아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저녁 8시 안에 문자로 검사 결과 알려드립니다, 집에 가면 격리해야 하고 식사도 따로 주세요." 저녁 8시라니 정말 빠르구나. 우리 아이 덕에 야근하실 보건소 직원분들을 생각하니 죄송하고 감사했다. 감사하다고 생각한 것도 뭔가 죄송하다. 몇 분 만에 보건소를 나섰다. 검사비 같은 건 없었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곧 잠들었다. 어차피 같은 공간에서 실컷 숨 쉰 처지에 가족끼리의 뒤늦은 격리가 무슨 소용이겠냐만, 할 수 있는 한 지침을 따랐다. 아이는 마스크를 낀 채 잤다. 나는 아이 방 바로 앞에 있는 부엌에서 마스크를 끼고 점심을 준비했다. 자고 일어난 아이의 방으로 점심을 갖다 주었다. 둘째 아이가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평소답지 않게 집 안에서 마스크를 끼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둘째에게 오늘은 큰애와 같이 놀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줬다. 심심한 아이들은 닫힌 방문 사이로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 말았다. 큰애는 입맛이 없는지 점심을 천천히 비웠다. 큰애가 물린 점심 식기는 다른 가족들의 식기와 섞이지 않게 따로 설거지한 후 끓는 물로 소독했다. 오후가 깊어질수록 큰애는 다시 끙끙거렸다. 큰애 방에 들어가 열을 재 보니 37.9˚ C. 해열제를 먹였다. 다 써버린 화장지를 새 걸로 리필해 주었다. 코 푼 휴지들은 힘없는 큰애처럼 방바닥에 무수히 널브러져 있었다. 휴지를 치워준 뒤 바닥과 책상을 소독제를 사용해 닦았다. 아이는 화장실 갈 때 말곤 방에서 나오지 못한다. 나는 이래저래 큰애 방에 계속 들락날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마스크를 꼈고, 손을 씻고, 손 소독을 했다. 하지만 큰애 방문이 여닫히면서 아이 방의 공기가 우리 집 곳곳으로 퍼졌을 것이다. 사람이건 바이러스이건 그것을 완벽하게 격리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약기운에 열이 떨어진 아이는 조금 살만해졌지만 이젠 심심해 죽을 지경이 되었다. 방 밖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를 궁금해하기도 했다. 읽은 책을 또 읽고, 혼자 보드게임을 하고, 누워서 뒹굴거렸다. 저녁에 뭐 먹고 싶냐고 물으니 짜장밥을 해달란다. 뭐라도 먹고 싶어 하는 게 반갑다. 애호박, 당근, 양파, 감자를 썰던 그때, 문자가 왔다. '보건소입니다.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후 5시 37분이었다.


"코로나 음성이래!" 마스크 따윈 하지 않은 내가 큰애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담임선생님께도 검사 결과를 알려 드렸다. 몇 시간 동안 헤어졌던 큰애와 둘째는 시끌벅적하게 재회했다. 큰애의 수저를 포함한 가족들의 수저가 식탁에 당당히 함께 놓였다. 아이들은 깔깔깔 장난치며 짜장밥을 먹었다. 저녁 먹은 후엔 나란히 앉아 귤을 까먹으며 만화를 시청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묘한 기분으로 설거지를 했다. 가족 모두의 식기를 싱크대 안에 아무렇지도 않게 섞어 놓을 수 있는 자유가 손끝에서 감각되었다. 이런 것마저 자유였다니.


날이 차가워질수록 우리 아이 같은 경우는 늘어날 것 같다. 코로나인지 단순 감기인지 알아내기 위해 선별 검사를 하게 될 사람들이 많아질 테다. 공무원인 사촌,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몸 약한 지인,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교회 집사님, 학교 선생님으로 있는 후배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과로로 절여질 연말을 앞둔 그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시애틀 추장은 말했다. "사람은 삶의 그물을 엮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물의 한 가닥일 뿐. 그가 그물에 무엇을 하든 그건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니." 빽빽한 그물의 씨줄과 날줄로 바이러스도 오가고 도움도 오간다. 완벽한 격리가 불가능하고 무한 접촉이 만연한 세상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에게 언제나 뭔가를 주게 된다. 나와 아이의 오늘이 그러했듯, 누군가의 돕는 손을 필요로 하는 날도 불쑥 생길 것이다. 살을 조이듯 달라붙는 의료용 장갑을 두 장이나 낀 채로도 남을 능숙하게 돕는 그런 손. 무균 상태로 탁월하게 남을 섬기는 착한 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손을 줄 수 있을까.


이틀 후 큰애는 36.5˚ C가 되었다. 아이는 "예스! 학교 갈 수 있다!"라며 팔짝팔짝 뛰었다. 등굣길은 그새 더 추워져 있었다. 껴입는 걸 싫어하는 큰애는 나의 요구에 따라 겨울 상하의, 패딩 잠바, 목 스카프까지 얌전히 껴입었다. 방호복을 껴입은 분들의 불편함과 더위에는 요만큼도 비할 수 없지만, 10월 말치곤 꽤나 포근한 무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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