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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Dec 14. 2020

77억의 공통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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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억 넘는 사람들이 1년 내내 공통의 걱정을 공유했다. 2020년은 그런 해였다. 한 10년 후쯤 <응답하라 2020>이 만들어지지 않으려나. 2020년은 시, 소설, 만화, 영화, 드라마의 소재가 되어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기억되어야만 하는 날들이었으니까.


지구를 착취한 대가, 이웃을 위한 배려를 거부한 사람들, 가중된 고통을 겪은 소외된 이웃들, 머리가 세고 콧등이 까이도록 봉사한 분들, 맘껏 뛰놀지 못한 아이들, 백신 개발에 힘쓴 분들… 일회용으로 스치듯 보내면 안 될 명이 긴 사연들이, 바닷속으로 버려진 15억 개 넘는 마스크처럼 널렸다. 지구인들이 함께 겪은 이 더럽고, 아프고, 감동적인 스토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대신 오래도록 살아남아 지구인들의 과오를 복기하고, 고발하고, 위로하는데 쓰일 테다.


이야기 소재는 넘치도록 충분하니 코로나는 눈치껏 퇴각해 주면 좋겠다. 아쉽게도 바이러스란 애들은 영 센스가 없다. 1030명. 우리나라에서 어제 집계된 코로나 확진자 수다. '올해 최대치'라지만 그 표현은 내일이나 모레 또 사용될지도 모른다.


핸드폰 진동을 징-징- 울리는 긴급 재난 문자를 받는 게 점점 무뎌진다. 또 늘었구나. 또 생겼구나. 아무리 청소기를 밀어도 몇 분만 지나면 방바닥에 또 등장하는 익숙한 머리카락 같다. 지겨운 확진자 수를 읽는 내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하지만 무의식의 한쪽 벽에 기대앉은 나는 핸드폰처럼 징-징- 운다. 불어나는 숫자가 덤덤하지 않다.


프로 집순이였던 나는 이제 집이 갑갑하다.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아쉽다. 외톨이가 된 것 같은 쓸쓸함과 앞날의 막막함은 연말이라는 단어 위에서 몸집이 자란다. '최대치'라는 숫자가 매일 갱신되는 형편에 아랑곳 않고 마이 웨이만 불러 재끼는 사람들에겐 넌더리가 난다.


 모든 곤궁이 범유행이라는  기가 막힌다. 동시에, 조심스러운 위안도 된다. 개인사, 가족사, 국사, 세계사의 경계가 소거된 교집합뿐인 일상.  어느 때보다 고립돼 있지만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다는 부조화를 살아간다. 집에  박힌 나는 슬프다. 77 명과 함께 슬프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슬프다는 것도 슬프다.


전 지구인이 공통 체험하는 것은 출생과 사망, 두 가지로 족하다. 올해 이름을 떨친 공통의 체험 '코로나'는 가뭇없이 사라지는 편이 좋겠다. 아니면 새로운 공통 체험들이 늘어나도 괜찮겠다. '공통'이라는 단어 뒤에 '치유', '반성', '절제', '환경 돌봄' 같은 말이 붙는 건 근사하니까. 코로나19 같은 인수 공통 감염병을 밀어낼만한 합성어이다. 저런 복합어가 '고유한 경험'이 되는 대신 '공통의 체험'으로 번지는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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