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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Feb 27. 2021

개똥과 새똥을 복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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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월  21일의 산책-


산책만큼 좋아하는 일이 있다. 산책 갔다 온 이야기를 적는 일이다. 공원에서의 일을 집에 돌아와 기록하는 건 즐거운 복습이며 든든한 예금이 되어준다. 산책할 수 없는 날엔 예전 산책 기록을 꺼내 읽는다. 그것만으로도 유사 산책 효과를 맛볼 수 있으니까. "에모리 대학교와 요크 대학교의 신경과학자들은 우리가 촉감에 관한 은유적인 표현을 읽을 때는 촉각을 담당하는 영역의 신경망인 감각 피질이 활성화되고, 움직임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운동 뉴런이 활성화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산책의 추억을 읽을 때 비록 내 근육은 움직이지 않을지라도 산책의 기쁨은 뇌 속에서 팡 팡 터진다. 그러니 오늘도 오늘 치의 복습과 예금을 남겨본다.


오늘 하늘은 하얗게 흐렸다. 공원에는 쨍한 빛이라곤 없었는데 그 덕에 쨍한 그림자도 없었다. 흐릴 땐 직사광선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컴컴한 그늘도 사라진다. 자연에는 삶을 떠올리게 해주는 은유나 알레고리가 많다. 오늘의 하늘은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인생이 뿌옇게 흐려질 땐 밝은 날이 그립겠지. 그렇지만 짙은 암흑을 피해 간 셈이기도 하니 조금은 다행이잖아?'


구름 온실에 갇힌 공원은 따뜻했다. 몇 걸음 미처 못 가서 목과 손을 감싼 물건들을 벗어야 했다. 마스크도 벗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공원에서 나는 냄새 때문이었다. 포근한 공원에서 나는 냄새는 갓 구운 진한 빵 냄새와 결을 같이 했다. 냄새는 멀리까지 퍼졌고, 사람들을 향기의 진원지로 끌어당겼다. 냄새 측정기나 수치로 계측 될 수 없는 초자연적이며 무시무시한 냄새였다. 그 후각 자극 물질은 명백히 존재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안락한 콘크리트 상자 안에 든 사람들을 이렇게나 많이 꾀어 낼 순 없는 거다. 달큰하고 따스한 공원 냄새에 투항하여 공원에 붙잡혀 온 포로들은 하나, 둘, 셋을 지나, 백 명. 치명적인 향기는 인질의 육체를 조준하여 잔인하게 살포되었다. 공원 가스에 노출된 산책객들은 이상 증세를 보였다. 헤벌쭉 웃었고, 고무공처럼 통통 튀듯 걸었고, 뜬금없이 손뼉을 쳐댔고, 모르는 사람끼리 인사를 나누었다. 무수한 산책객들 틈을 걸으며 나는 마스크를 단단히 꼈다. 코로나 시대의 예절이기도 하지만, 방패를 걷어 낸 코로 이곳 냄새를 들이마셨다간 공원에게 코가 꿰일 것 같았다.


온화한 날씨 탓에 강의 얼음은 거의 다 녹았다. 포를 뜬 듯 얇은, 종이 같은 얼음들이 조금 보였다. 나는 세상 만물을 '먹는 것'과 연관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을 쳐다보다가, 뱅어포 대신 얼음포를 반찬으로 만드는 상상에 빠진 건 그 때문이다.


녹는 점이 260도 정도 되는 -그러면서도 얼음 특유의 찬 기운은 유지하는(이게 말이 돼?)- 얼음을 누군가가 개발한 미래를 가정해봤다. 나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후 얼음포를 넣고 달달 볶는다. 간장, 설탕, 물엿, 참기름을 넣고 졸이다가 마지막에 통깨를 뿌려서 마무리한다. 겉바속촉 또는 겉뜨속차의 이 즐거운 반찬은, 안전하게도 입속 아밀라아제와 만나면 온도와 상관없이 사르르 녹는 화학 구조를 가진다. 날카롭고 얇은 얼음조각이 식도를 할퀼 걱정일랑 버려도 좋다. 영유아 · 임산부 · 노약자 모두 안심하고 즐기세요. 이렇게만 된다면 남획과 환경파괴로 어획량이 매우 감소하여 찾아보기 힘든 뱅어**에게도 희소식이고, 반찬 값도 줄고, 수분 섭취도 늘릴 수 있을 거다. 그러니 과학자들이여, 이런 얼음을 개발하라. 그리고 지구인들아, 지구 좀 살살 벗겨 먹...


...자,라고 생각하던 내 눈앞에 작은 벌레 하나가 나타났다. 그 작은 것이 어찌나 팔팔한지 붕! 붕! 날아다녔다. 알레그로 빠르기의 경쾌한 클래식을 온몸으로 지휘하는 것 같았다. 벌레는 갑작스러운 포근함 탓에 생일을 앞당겨 태어났나 보다. 나는 벌레와의 충돌을 피하려고 허둥댔다. 머리와 손을 마구 젓는 통에 얼음포에 대한 상상은 멀리 날아갔다. 겨우내 공원에서 곤충을 못 봤는데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하고, 선잠을 깼을까 봐 짠하기도 했다.


공원 가로등 옆엔 항상 개똥이 있다. 산책로 여기저기 개똥이 진짜 많다. 상식적인 대부분의 견주들과는 조금 다른 견주들도 존재한다. 어쨌거나, 반질거리는 누런 개똥은 알감자와 닮아 보였다(갑자기?). 점심때 먹은 감자 한 알 반이 생각났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집에 가면 유자차 한 잔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달달한 차 생각에 기분이 화사해졌다. 개똥에서 유자차로 미끄러진 내 의식의 흐름은 과연 상식적인가.


상식적이지 못한 것들은 또 있었다. 강변에 쓰레기가 평소보다 많았다. 우유팩, 검은색 등산 모자, 종이컵, 물티슈, 비닐봉지, 목장갑, 커다란 스티로폼…. 하얀색 목 긴 백로는 강에 착 달라붙듯 어울린다. 하얀색 스티로폼은 그렇지 않다. 하얀색이라고 다 같은 하얀색이 아니다. 사람이 배설한 흰색은 개똥보다 더럽다.


한편 어떤 중년 남성이 강 건너편을 향해 짱짱한 목소리로 아아아아! 소리를 질렀다. 그 외침은 건너편 산에 부딪혀 내 귀로 돌아왔다. 소음 공해라기보단 농담처럼 들렸다. 나도 미친 척 후련하게 소리를 뽑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실천하진 못했)다. 층간 소음 피해자와 가해자들이여, 이곳으로 오셔요. 이 너른 공원엔 아래층도 없고 위층도 없답니다. 마음껏 소리치고, 뛰고, 메아리를 만드세…


…요,라고 낭만적인 생각에 빠지려는 찰나, 공사하던 포클레인의 구제를 받았다. 그것의 큼직한 삽이 나를 낭만의 구덩이에서 건졌다. 노란 굴착기는 먼지를 일으키며 덜덜덜 다가왔다. 굴착기 바퀴에서는 먼지 구름이 뭉실뭉실 자랐다. 나는 거북이 목처럼 숨겨놨던 비상용 다리를 재빨리 꺼냈다. 도망은 타이밍. 여섯 개의 다리로 냅다 뛰는 곤충처럼, 나는 피신했다. 언덕에 도착해서 산책로를 내려다보았다. 굴착기에서 자란 먼지 꼬리가 길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늘 산책은 그렇게 강제 종료됐다.






-2021년 1월 22일의 산책-


나무에 참새 열매가 조롱조롱 열렸다. 집 근처의 큼직한 은행나무가 1월에 맺은 결실이었다. 열 마리도 넘는 참새가 마른 가지에 동글동글 고여 있었다. 참새는 보통 촐싹거리며 총총거리고 짹짹거린다. 생동감 넘치는 동그란 생명이다. 그런데 이 나무에 열린 참새들은 오직 부동자세였다. 식곤증인가? 무기력하니? 아니면, 일광욕 중이야? 질문하는 내 눈빛을 향해 참새들은 근엄한 표정으로 답했다. '알 것 없다, 인간.'

참새 나무 옆은 단풍나무이다. 그 나무엔 원래 오그라진 단풍잎 몇 개가 달려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에도 못 보던 열매가 달렸다. 간밤에 내린 시원한 비 때문에 가지마다 빗방울이 응어리졌다. 작은 수정이 동글동글 붙어있는 것처럼 맑고 예뻤다. 


젖은 골목길을 지나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공기는 축축했다. 눈앞의 모든 풍경도 촉촉했다. 산책로도 물을 머금고 있었다. 어제보다는 산책객이 줄었고, 오리는 꽥꽥거렸고, 강물엔 얼음 사금파리 한 조각이 없었다. 


초등 고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들 세 명이 강변에서 놀고 있었다. 저 아이들의 옷차림엔 사계절이 다 있었다. 첫 번째 아이는 패딩을 걸쳤다. 두 번째 아이는 긴팔 옷과 청바지를 입었다. 마지막 아이는 반팔 티와 반 바지 차림이었다(안 춥나?). 각각 한대 기후, 온대 기후, 열대 기후에서 온 아이들은 서로의 출신 따위에 아랑곳없이 깔깔대며 어울렸다. 장화 신은 발 여섯 개가 사이좋게 물가에서 참방댔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토독토독 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내리는 비가 내 모자에 떨어지는 중이었다. 오늘은 비 온다는 말이 없어서 마음 놓고 나온 건데. 그냥 맞는 수밖에 없지 뭐.


갈대밭에서는 가냘픈 짹짹 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삐약삐약에 가까운 가느다란 울음이었다. 아마 어린아이 같은 징징거림일지도 모르겠다. '아아 니이- 오늘 비 안 온다며. 내 털 다 젖었잖아. 우산도 놓고 왔는데 어떡할 거야. 내 털 드라이해 줘, 책임져, 물어 내, 쫑알 쫑알 투덜 투덜.'


후투티 나무(공원에서 후투티들이 즐겨 앉는 나무가 있는데 내 맘대로 그 나무를 이렇게 부르는 중이다)에는 후투티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휴대폰에 설치된 '조용한 카메라' 어플을 실행했다. 엄지와 검지 끝을 샥샥 벌려 피사체를 확대했다. 최대한 끌어당긴 후투티는 작은 화면에 점묘화처럼 흐리게 담겼다. 그래도 좋았다. 다른 각도로 두 장 더 찍었다. 이제 1200만 화소의 카메라는 퇴장하고, 내 얼굴에 달린 5000만 화소 렌즈로 후투티를 볼 차례다. 나는 사알- 사알- 나무 쪽으로 다가갔다.


나 같은 조류 애호가에게는 직감이 있다. 새들이 인간과 자신의 거리를 어느 정도까지 허용해 주는지에 대한 직감. 나는 후투티의 심리 상태와 바이오리듬, 후투티를 둘러싼 바람의 방향과 일조량 등, 총 12가지 요인을 100분의 1초 만에 분석했다. 그리고 나의 직감은 결론 내렸다. 이번엔 4미터 23cm까지 접근해도 괜찮겠군. 나는 그 안전거리에서 멈췄다. 나뭇가지에 가려진 후투티를 제대로 보려고 요리조리 고개를 기웃거렸다. 나무에 가지가 얼마나 많은지 새삼 느꼈다. 새들은 빠른 속도로 날다가도 접촉 사고나 충돌 없이, 순식간에 나뭇가지 속으로 착륙한다. 어지럽게 얽힌 레이저 도난 경보기 사이를 매끄럽게 통과하는 듯한 기행이다. 어느 학교, 어느 학원에서 저런 기술을 배워 왔을까.


후투티는 휘어진 부리로 자기 몸을 단장했다. 부리로 몸을 쿡쿡 쑤시고 긁고, 날개도 파닥거렸다. 털이 엉킨 걸까? 날개 죽지가 간지러운 걸까? 몸에 가시라도 들어갔나? 털을 고르면서도 고개를 탓! 탓! 들며 주위를 경계했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의 댕기를 부채처럼 확! 펼쳤다. 인디언 추장의 장식 같은 저 댕기. 후투티의 트레이드마크를 눈앞에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어머 어머 멋있어 멋있어,라고 마구 중얼거렸다. 새를 계속 쳐다보면 이런 모습도 볼 수 있구나. 후투티는 몸단장을 관두고 깡총 뛰어서 바로 옆 나뭇가지로 옮겨갔다. 나도 조심스럽게 후투티를 따라 몸을 옮겼다. 그때, 후투티가, 똥을 쌌다. 아… 볼일 봐야 하는데 내가 계속 쳐다보니까 민망했던 건가. 그래서 자리를 살짝 피한 건가. 새를 계속 쳐다보면 저런 모습도 볼 수 있구나…. 나는 오는 비를 다 맞으며 후투티를 조금 더 바라보았다.








*. 매리언 울프, 『다시, 책으로』, 어크로스

**.https://namu.wiki/w/%EB%B1%85%EC%96%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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