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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Feb 24. 2021

내가 사랑하는 약간의 가상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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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0일의 산책-



이게 운동이 될까 싶다. 뭐, 아예 안 되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산책로에서 설렁설렁 30분을 걷는 일은 내 심장 박동을 촉진하거나 땀을 생산해내진 못한다. 나의 산책은 경보輕步가 아니다. 목표한 걸음 수를  악착같이 채우는 것도 아니며, 매일 걷는 것조차 아니다. 세상 한가로운 걷기이다. 산책을 통해 운동이라는 꿩도 먹고, 정서적 쉼이라는 알도 먹고 싶지만 어쩌다 보니 알이 주식이 돼버렸다.


산책로에서 파워워킹을 실천하지 못하는 게 내 탓만은 아니다. 이곳은 내 정신의 갯벌이다. 쫀득한 갯벌에 발이 빠져 옴쭉 못하게 된다. 온갖 것들이 나의 전진을 막는다. 집에서 못 보고 못 듣던 것들이 눈과 귀로 쏟아진다. 한지만큼 엷어진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고요함이 들린다. 부리로 콕 찍어 고요함을 뚫는 새들의 외국어가 들린다. 강에서 탈파닥거리는 물새들의 평화가 들린다. 쉼 없이 서로를 비비며 청정에너지(정전기)를 만드는 갈대 발전소들의 사사사사- 소리가 들린다. 이 모든 소리의 주체들이 직사광선에 부딪혀 내 눈에 맺힌다. 그것들은, 고속 와이퍼조차 쓸어내지 못하는, 차 유리에 들러붙는 폭우의 결정結晶을 닮았다. 망막에 와닿는 고운 상들은 1초에 한 번씩 눈을 깜빡여도 씻겨 내려가질 않는다. 공원은 이토록 자극적인 시청각 놀이터이다. 누군들 걷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


산책의 유희에 취해 내 정신이 산만해지더라도 나는 산책을 추궁할 생각이 없다. 이외수는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아름답지 않은 것에 사랑을 느끼는 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산책은 아름답다. 나의 단골 보행 코스가 흙과 새와 구름으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공원 벤치 아래엔 버려진 담배꽁초들이 허옇게 깔려 있고, 퉁퉁한 쓰레기들이 강의 모래톱에 가시처럼 박혀있다. 공원을 개선하는 건지 개악하는 건지 헷갈리는 굴착기는 쓸데없이 부지런하다. 징그러운 현실의 무늬가 나의 산책로에는 있다. 그럼에도 나는 거기로 간다. 시멘트 상자인 집과 아스팔트 깔린 골목길보다는 이곳이 낫다. 도시의 데시벨이 낮아지고 무거운 고민들이 희미해지는 산책로는 약간의 가상현실이다. 그러면서도 실재하는 나의 세 번째 허파다. 숨을 마시고 뱉으며 멍청히 거니는 행위를, 나는 사랑한다. 그렇다고 전투적인 사랑은 아니다. 얇지만 오래도록 길게 자라는 머리카락 같은 애정이다. 일상도 전투적인데 사랑까지 전투적일 필요가 뭐람.


요즘 같은 겨울엔 해가 땅을 충분히 데운 오후에 산책하는 편이었다. 오늘은 예외로, 아침에 공원 땅을 밟았다. 남편이 오후에 출근하는 날이라 집에 있는 애들 걱정 없이 일찍 나온 것이다. 출근하는 차들이 경쾌하고 빠르게 도로를 오가고 있었다. 영하 7도라는 말을 듣고 잔뜩 껴입었는데 생각보단 포근했다. 공원에 도착하여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8시 53분.


그러나 굴착기와 트럭이 나보다 한 발 빨랐다. 그것들은 내가 즐겨 걷는 산책로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새치기 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쩌겠나. 공원 환경 정비에 할당된 예산이 홀랑 도둑맞는 상상을 하며 언덕 길을 걸었다. 좋아하는 산책로를 잠시 빼앗겼지만 8일 만에 밟은 공원은 반가웠다. 다행히 중장비들은 공사 영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강변 산책로의 다음 손님은 나였다.


잔디에는 아침 이슬이 맺혀 있었다. 작은 물구슬 속에서 아침 햇살이 찰랑거렸다. 좁쌀만 한 다이아몬드 수천만 개가 땅에 뿌려져 반짝이는 듯한 장관이었다. 땅 한 평 없고, 집도 없고, 주식도 없고, 직장도 없고, 이것저것 다 없는 나는, 다이아몬드 밭을 척척 걸어 다니는 벼락부자가 되었다.


강가엔 얼음이 잔뜩 끼었는데 강 안쪽은 얼지 않았다. 겨우 얼지 않은 그 물에서, 놀라운 방수와 보온 기능을 갖춘 기능성 파카를 입은 물새들이 떠다녔다. 작고 둥그런 새들의 헤엄이나, 작대기 다리를 한 새들의 족욕에는 어떠한 서두름도 없었다. 겨울철 차가운 수돗물로 쌀을 씻는 나의 오두방정 떠는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추위를 감각하지 못하는 저 편리함을 새들에게 꾸어봐야겠다.


찬물엔 새들이 제법 있었지만 거대한 공원엔 사람이 드물었다. 공사하는 사람까지 합쳐도 대여섯 명이 될까 말까. 산책로를 바글바글 메우던 오후의 견주와 강아지들은, 평소의 나처럼 오전엔 집안을 선호하나 보다. 아침 산책을 나온 강아지는 딱 한 마리뿐이었다. 수선스럽지 않은 아침 공원이 나는 좋았다.


터벅터벅 걷던 그때, 내 옆으로 작은 새들이 화다닥! 날았다. 구식 뻥튀기 기계에서 강냉이가 뻥! 튀겨지는 모습이 재현된 순간이었다. 어둑한 입구에서 파바박- 발포되던 하얀 동그라미들. 새들의 발사도 강냉이의 탄생만큼이나 요란했다. 갑작스러웠고 순간적이었고 와글거렸다. 내가 너무 우악스럽게 걸었나? 산책로에 바짝 붙어 있는 갈대 속엔 겁 많은 작은 새들이 산다. 씩씩한 내 발걸음은 그들을 배려하지 못한 행동이었나 보다. 늦었지만 '미안해, 미안해'라고 빌었다. 


콩알 같은 새들이 피신한 방향엔 못 보던 산이 서 있었다. 오후의 산과는 다른, 아침의 산이었다. 아침 산이 두른 그림자는 푸르고 진했다. 덩어리진 파란 그늘은 내 눈에 너무 자극적이었다. 그걸 보는 일에 몇 분간 중독돼버렸다.


게걸스레 산을 보던 시선은 처음 보는 쓰리 샷으로 옮겨갔다. 비둘기, 박새, 후투티가 겸상 중이었다. 서로 다른 세 마리의 새가 한곳에 모여 누런 잔디밭을 콕콕 쪼는 풍경이 신선했다. 박새랑 후투티는 서 있는 자리에서 가만히 땅을 쪼았고, 비둘기는 어슬렁어슬렁하면서 쿡쿡 쪼았다. 아아 귀여워. 종을 뛰어넘은 친구들일까? 으으 귀여워.


새들은 곳곳에서 등장했는데 오후엔 자주 못 보던 작은 새들이 특히 많았다. 길쭉한 넥타이를 맨 박새, 목도리만 두른 진박새, 턱수염만 기른 쇠박새, 그리고 이름 모를 온갖 쪼끄만 새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산책로 옆 잔디밭은 후투티의 식탁이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지나가야 하는 길 위에서도 식사 중이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씩이나. 그저 길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저들의 평화를 깰 게 뻔했다. 나는 갈대밭 쪽으로 바짝 붙어서 걸었다. 그렇게 한들 후투티와 충분한 거리를 둘 순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숨을 멈추고, 매우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걸었다. 흔들던 팔은 주머니에 끼워 고정시켰다. 안 그래도 방해받는 일이 수두룩한 후투티의 삶에 나까지 훼방을 보태고 싶진 않았다.

후투티의 주식은 땅강아지다. 땅속 벌레를 잡아먹고 사는 새다. 그러나 우리 동네 공원 잔디밭은 공사 때문에 반 토막이 났다. 후투티의 밥그릇이 반으로 쪼개진 것이다. 

땅을 열심히 쪼던 후투티들은 내가 지나가자 고개를 들어 경계했다. 그러나 나에게 위협을 느끼진 않은 눈치였다. 잠깐 쳐다보더니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덕분에, 아주 찰나였지만, 2미터 거리에서 후투티를 직관할 수 있었다. 날개에 그어진 흰색과 검은색의 줄무늬가 조금의 번짐도 없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후투티를 이만큼 가까이서 본 것도, 걔네들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은 것도 모두 뿌듯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반가운 새를 보았다. 동백나무 안에서 포르르 움직이던 작은 새 두 마리였다. 참새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하얀 뿔테안경을 낀 동박새가 아닌가. 정말 오랜만에 만난, 이 삭막한 동네에서는 처음 보는, 희귀한 새였다. 동백꽃은 아직 봉오리 상태라서 꿀 냄새도 나지 않을 텐데 얘들은 왜 벌써 왔을까. 좋아하는 꽃이 피었는지 아닌지 탐방하러 나왔으려나.


새를 만나려면 아침 산책이 좋다는 걸 배운 하루였다. 그러나 아직은 추웠다. 봄이 다가오면 아침 산책에 재미를 붙일지도 모르겠다.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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