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녹차 Feb 08. 2021

이 집순이 집돌이들아


Copyright 2021. 녹차 all rights reserved.






- 2021년 1월 6일의 산책 -


아이들이 체스판만 보고 있었다. 오전부터 점심 먹은 뒤까지. 격자무늬 판을 수호하는 비석인 양 미동들이 없었다. 오늘뿐 아니라 며칠 내내 이 초등학생들은 집에서 은둔 중이다. 온라인 수업, 온라인 예배, 5인 이상 집합 금지 등으로 아이들은 칩거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몸 쓰는 일을 망각하면 안 된다. 햇살도 섭취해야 한다. 그래서 산책을 제안했다. 체스광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 책에서 영감을 받은, "너희 몸은 일련의 실내에 존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란다."라는 식의 문장으로 두 어린이들을 꾀어 볼까 싶었지만,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아서 포기했다. 결국 나는 인문학 대신 영양학으로 승부를 던졌다. "햇빛 쬐지 않으면 비타민 D가 결핍돼서 뼈 부러질 수 있어." 큰애는 어쩔 수 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둘째는 여전히 가기 싫다고 투덜대며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자비롭고 민주적인 어미이며 언어의 마술사이기도 한 나는 둘째에게 말했다. "빨랑 옷 입어." 


어쩌겠나. 아이들을 저 햇살에 노출시키지 않는 건 우주의 낭비였다. 나는 저걸 애들에게 먹여야 했다. 아이들의 관절을 재가동시켜야 했다. 초딩 입맛들이 손뼉 치며 좋아하지 않을지라도 끊임없이 채소를 식탁에 올렸던 것처럼, 해야 하는 건 그냥 해야 했다. 아이들은 이제 채소를 잘 먹는 사람이 됐고, 더 건강해졌다. 아이들의 불만스러운 표정은 보기 싫었지만(그리고 난 솔직히 혼자만의 산책이 더 당겼지만) 은둔자들의 등을 떠밀었다. 마지막 잔소리는 속으로 삼키면서. '인간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광합성을 해야지, 이 집순이 집돌이들아.'


쾌청한 날씨였다. 아이들은 강을 보자마자 들고 온 킥보드를 던져버리고 모래톱으로 뛰어갔다. 몽땅 언 것은 아니었지만 강엔 꽤 넓은 얼음판이 덮여 있었다. "이렇게 큰 얼음 처음 보지?", "네!", "엄마도 그래." 강은, 중앙으로 갈수록  살얼음이었고 가장자리는 두껍게 언 상태였다. 물은 아름다운 무늬를 제 몸에 새긴 채 굳어 있었다. 별 모양 같기도, 기하학 문양 같기도 한 패턴이 촘촘하게 얽혀 빙판을 이루었다. 꽝꽝 언 강의 경계선 바로 옆으로는 촉촉한 모래톱이 붙어 있다. 거기엔 물새의 발자국이 화석처럼 또렷이 찍혀있었다. 우리들은 새의 산책 흔적과 얼음의 결정이 빼닮은 걸 보며 신기해했다. 동일한 작가가 창조한 작품이라는 티가 났다.


우리 셋은, 약속한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불균등한 빙질을 무시한 채 강 위에서 점프할 담력은 없었다. 대신 모래톱 안쪽으로 동글동글 얼어붙은, 비교적 얕은 물웅덩이를 공략했다. 깊은 강의 얼음은 검정이었지만 야트막한 웅덩이의 얼음은 흰색 페인트처럼 하얬다. 하이얀 얼음을 콱 밟았다. 2~3 센티미터의 도톰한 얼음은 분하다는 듯, 그러나 가냘프게 '뿌-지-지-지-' 소리를 내며 천천히 갈라졌다. 얼음의 상당한 두께와 어울리지 않는, 참새 방귀소리 같은 그 음향이 우스워서 우리들은 깔깔 웃었다. 꽤 많은 웅덩이의 얼음들을 거진 다 박살 냈다. 우리는 의기양양한 얼음 파괴자들이었다. 멀쩡한 얼음이 하나도 없는 걸 확인한 우리는 산책로로 복귀했다. 


실제론 꽤 멀었지만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워 보이는 목 긴 백로가, 걷고 있던 우리 셋을 멈춰 세웠다. 저 새는, 마땅히 입을 벌리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아함이었다. 깨작깨작 사냥하다가 훌쩍 날아가는 하얀 새가 콩알만큼 작아진 뒤에야 우리들의 다리는 다시 움직였다. 


강을 가로지르는 나지막한 둑에 도착했다. 나는 그곳을 싫어한다. 끔찍한 쓰레기들 때문이다. 강물에 쓸려 온 잡다한 쓰레기들이 둑의 땅과 나무를 덮쳤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썩은 오너먼트가 치렁치렁 휘감긴 풍경이다. 둑이 이러할진대 강 아래엔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가라앉아 있을까. 물새들과 물고기들의 보금자리인 강을, 우리의 생명줄이기도 한 강을, 우리들은 어쩌자고 이따위로 다루는 것일까.


아이들은 쓰레기에 괘념치 않고 둑 안으로 쭉쭉 들어갔다. 거기엔 오물에 시달리는 나무뿐 아니라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있었다. 거기에 대단한 얼음이 숨겨져 있었는데 두께가 사전보다 두툼했다. 아이들이 그 얼음 위로 힘껏 돌을 던졌다. 둔탁한 소리만 날뿐 방탄유리처럼 깨지지 않았다. 한편, 멀리 떠 있는 물새들에게 돌팔매질 소음이 위협이 될까 봐 걱정이 됐다. 나는 "새들이 놀랄 수도 있으니까 이제 그만 던지자"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아 참! 그러네"라며 돌을 내려놨다.


다시 돌아간 산책로엔 행복한 강아지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큰애는 웰시코기의 엉덩이를 보며 말했다. "식빵! 식빵! 아~ 토닥여보고 싶어." 아이들은 울퉁불퉁한 산책로에서 매끈한 자전거도로로 건너가 킥보드를 끌고 온 보람을 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애들이 고른 껌을 사주었다. 밖에 나가기 싫다고 짜증 내던 둘째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에 도착했다. 얼음을 밟고, 푹푹 꺼지는 모래톱과 폭신한 산책로를 걷고, 자전거 도로를 팍팍 박차느라 능동적인 육체를 회복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안락한 둥지에 복귀하여 달달하고 따끈한 유자차를 만족스럽게 홀짝였다.









- 2021년 1월 8일 산책 -


봤던 것 중 가장 넓은 면적으로 강이 얼었다. 밥그릇이자 수영장이 거의 다 얼어버려서 물새들은 강에 출근을 안 했다. 새 발자국 한 줄만이 모래톱에 사슬처럼 찍혀 있었다. 발자국 주인이 대표로 순찰 왔다 갔나 보다.

누군가가 강가에 큰 돌을 던져서 얼음을 요만큼 박살 내놨다. 깨진 얼음은 두께가 5센티 정도 돼 보였다. 그보다 두껍게 얼은 쪽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 강의 윗면 60% 이상이 반듯하고 딱딱하게 멎었다. 애들이랑 박살 냈던 웅덩이의 얼음들은 이틀 사이에 녹았다가 얼기를 반복했다. 하얀 양초가 굳어진 것처럼, 희고 얌전한 얼음으로 복원돼 있었다. 강의 얼음엔 새털과 작은 섬 같은 바위도 끼어 있었지만 쓰레기도 불청객처럼 끼어 있었다. 자연이 인간의 추잡함을 얼음에다 박제해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저 무례는 약과였다. 공원을 뒤집는 공사판에서 트럭이 움직였다. 트럭은 흙길로 된 산책로를 차도로 빌려 썼다. 바짝 건조한 겨울 흙바닥을 달리는 트럭 꽁무니로 먼지 구름이 피었다. 한 번 보면 다신 잊을 수 없는 집채만 한 먼지 적란운이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풍선껌 불기 일인자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풍선을 부풀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헐 대박, 헐 대박'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두 다리가 강물처럼 얼었다. 트럭은 '내가 그래도 양심은 있거든'이라는 뉘앙스로 천천히 달리기는 했다. 그럼에도 자동차인지라 산책객들보다는 빨랐다. 산책객을 따라잡은 위압적인 먼지가 그들을 쌈 싸 먹기 시작했다. 보행자들은 뿌연 감옥을 탈출하고자 트럭 반대 방향으로 허둥지둥 도망쳤다. 눈은 거의 감다시피 한 채. 마스크에 덮인 입과 코는 손으로 한 번 더 감싸고서. 도망자들 중에는 나도 있었다.


딱 봐도 전시행정과 돈지랄이라고 밖엔 생각할 수 없는 저 공원 개발이 오늘따라 더 미웠다. 김기석 목사님은 『청년 편지』에서 "겨울은 허장성세를 지양하고, 안으로 자기를 성찰하는 계절"이라고 했다. 공원을 발전시키겠다며 분출하는 웅장한 먼지는, 겨울철에도 지양할 줄 모르는 인간의 허세가 아니려나.

이전 10화 두 번 졌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