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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an 05. 2021

부부 금슬이 안 좋아서라고요?

부부 금슬이 안 좋아서라고요?     


결혼 후 사년 차 쯤 되었을까. 

시댁에서 남편 형 네 집하고 밥을 먹고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을 시청 중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이 육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연예인이 나왔었는데 아이가 무려 넷이었다. 정신없는 집에서 네 아이를 데리고 연예인 부부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자 형님이 말했다. 

“저 사람들은 얼마나 사이가 좋으면 애가 네 명이나 있을까?”

아이가 없으면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걸까. 반박하고 싶었지만 형님의 기세에 눌려 듣고만 있었다. 만약 지금 다시 그런 말을 듣는다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 

“형님, 그럼 아이가 없으면 부부 사이가 안 좋다는 건가요? 혹시 저희 들으라고 하시는 말 아니죠?”


조카는 내가 결혼할 당시 벌써 초등학생이었다. 형님은 결혼식도 하지 않고 시댁에 들어와 살면서 첫 애를 낳았다. 아이를 낳은 후에 결혼식을 올린 걸로 알고 있다. 계획적으로 아이를 가진 건 아니었던 거 같다. 그래서 그런 걸까. 애는 부부가 사랑하고 잠자리를 가지면 자연적으로 들어서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 낳는 것과 부부간의 사랑은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 부부간에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도 섹스는 자주 할 수 있다. 그 섹스가 여자의 동의하에 하는 섹스가 아니라 일방적인 섹스라도 섹스는 섹스인 것이다. 금슬이 좋을수록 아이가 많다면야 현대화가 이루어지기 전 아이 여섯, 일곱, 여덟이 기본이었던 옛날 분들의 금슬이 한, 둘만 낳는 현재의 부부보다 훨씬 좋았다고 말해야 하리라.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여자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소박까지도 맞아야 했던 시절이었다는 걸 말이다. 아이를 몇 명 낳는지는 부부의 가치관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부부 금슬과 관계가 있는 건 아니다. 


다행히 시부모님들은 우리에게 “언제 아이 가지니?” 하는 소리를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으시다. 그 점에 있어서는 시부모님께 무척 감사드린다. 시어머니의 직업은 요샛말로 하자면 플로리스트이다. 화원을 운영하시면서 손님 댁까지 직접 운반까지 하신다. 새벽에 꽃 시장에 나가 직접 식물을 싣고 돌아오시는 것도 시어머니의 몫이다. 이렇게 자신의 일을 가지고 계신 것도 멋지지만 시어머니에게는 더욱 멋진 취미가 있다. 


시어머니가 소유한 건물 지하에는 음악 연습실이 있다. 시어머니가 만드신 거다. 연습실 중앙에는 난타 장구가 다섯 개쯤 있고, 무대 위에는 드럼, 기타, 마이크가 있다. 옆으로는 작은 방 세 개가 있는데 각 방마다 노래방 기계가 비치되어 있다. 어머니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지하실에 가셔서 악기 연습도 하시고 노래 연습도 하신다. 최근에는 수강생을 받아 장구 강습도 시작하셨다. 


시어머니는 마술 지도사, 레크레이션 지도사 등의 자격증을 가지고 계신다. 환갑이 넘은 연세이신데도 노래와 마술, 장구 연주로 양로원과 요양시설을 포함한 각종 사회복지 시설에 사회봉사 활동을 다니신다.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시는 분이라 자녀들의 삶의 형태에 대해 개입하지 않으신다.  


시부모님께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우리의 결정을 이해해 주시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그분들이 아이 낳기를 억지로 권했다면 그야말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강요에 밀려서 낳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편이 내게 아이를 강요하지 않는 것도 시부모님으로부터 배운 삶의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부모님은 기본적으로 ‘자식의 삶은 자식이 알아서 사는 것’이란 철학이 있으신 듯하다. 전화 연락도 남편에게만 할 뿐 내게 하지는 않으신다. 가끔 찾아가면 우리에게 아무런 부담감도 주지 않으신다. 시어머니께서 너무 바쁘셔서 우리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으신 까닭도 있다. 화원 손님 응대하셔야지, 연습실에서 노래연습, 난타 연습, 장구 연습 하셔야지. 최근에는 유투브를 통해 드럼 독학까지 하고 계신다. 


시댁에 가면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다가 꼭 가보는 곳이 있다. 그 곳은 식물을 키워내는 ‘비닐하우스’이다. 화원의 식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화원 중앙에는 스프링쿨러와 난로가 있다. 겨울에는 난로가 따뜻하게 피워져 있어 거기에 앉아 있노라면 내가 꼭 ‘비밀의 화원’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사방에 식물이 있는 따뜻하고 예쁜 풍경. 그 풍경을 맘껏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 꽃을 가까이 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더니 시어머니를 보면 정말 맞는 말 같다.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예전에는 시어머니의 성화에 아이를 낳자마자 몸 풀기도 전에 바로 밭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본인의 시어머니에게 당한 게 너무 많아서 자신만은 며느리에게 아픔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보통은 자신이 당한 만큼 며느리를 괴롭히지 경우가 많지 않은가. 참 대단한 분이시다. 


난 참 시부모 복은 많은 거 같다. 텔레비전에서나 사람들 말을 들어봐도 손자, 손녀에 대한 조부모의 기대나 압박이 심한 경우가 많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해당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시부모님께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 

하지만 명절 때마다 뵙는 작은 할아버지 내외분들은 다르다. 그 분들은 명절 당일 제사를 치루기 위해 오신다. 결혼을 하고 처음 그 분들을 뵈었을 때는 “둘이 재미나게 살아라.” 하는 덕담을 하셨다. 하지만 이, 삼년이 넘어가자 넌지시 “아이는 언제 가지니? 다음에는 꼭 예쁜 아가와 함께 와.” 하고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물론 내게 달리 할 말이 없었기에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도 모른다. 


“다음 해에는 꼭 예쁜 아가와 함께 와.” 하시는 그들의 바람을 지난 구 년 동안 이뤄드리지 못했다. 물론 앞으로도 들어드리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부부관계가 좋아야 집에 아이가 많다,’느니 ‘아이를 언제 가지니?’등의 말은 아이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불편하고 힘들게 다가온다는 걸 꼭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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