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으면 집에 가서 밥을 먹던지.”
“말이 돼? 쟤 은마 아파트에 살아. 거기 평당 최소 삼천이야.”
“부모님이 용돈을 안 주시나 보지.”
윤영이 자리를 뜨자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 오늘도 윤영은 늦게 가면 부모님이 걱정하신다면서 수저를 놓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비가 없어서 그러는데 천 원만 빌려주세요.” 윤영이 식사를 마치고 옆으로 살짝 돌아앉아 동호 오빠에게 부탁을 하자 동호 오빠는 얼굴이 벌게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천원을 내주었다.
“진짜, 너무한다. 언제까지 우리가 저녁 사주고 차비까지 줘야 해?”
“그래봤자 일주일에 오천원씩 한달에 이만원인데 내가 내지 뭐.”
보다 못한 부장 오빠가 나서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마뜩찮은 표정이었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윤영을 기피했던 건 아니다. 윤영이 부서에서 첫 인사를 했을 때 우리는 열렬히 박수를 치며 환영을 해주었다. 우리 부서에는 윤영과 비슷한,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고 지능 지수가 낮은 민원 언니가 있었다. 민원 언니는 이제 부서에 아주 잘 정착해서 급기야 우리 부서의 마스코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윤영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윤영은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간단히 자기소개를 마쳤다. 윤영은 스물 셋이었고, 아주 거구의 여자였다.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느낌을 준 건 그에 걸맞지 않게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남색 땡땡이 원피스였는데 팔뚝 살이 보기 싫게 삐져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최윤영이구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윤영의 목소리는 뭐랄까, 쇳소리가 났다. 쇳소리가 목소리에 섞여난다면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다. 목소리의 높낮이가 극도로 불안정했다. 고음과 저음이 한 음절 속에 공존했다. 이걸 쇳소리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목소리는 정말 작았다.
으레 부서에 처음 온 사람이 있으면 환영의 뜻으로 저녁 식사를 같이 한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처음 온 사람이 우리 부서에 잘 물들 수 있도록 그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대화를 한다. 하지만 윤영은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열심히 감자탕의 고기만 발라 먹었다. 우리는 그녀가 자신에 대해 설명해 줄 어떤 코드를 던져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지나치게 수줍어하면서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민원 언니의 경우와는 사뭇 달랐다. 민원 언니는 떠듬대면서도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다, 자신에겐 아무런 장애 따위는 없다는 듯 그녀는 차분히 젓가락질만 했다.
첫날 윤영이 집에 일찍 가야 한다며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윤영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그 날 윤영이 옆에 앉은 병호 오빠에게 천원을 빌릴 때 병호 오빠의 얼굴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저 조금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 다음 주에 윤영은 부서에 왔다. 예배를 마치고 부서에 모이면 처음에는 찬양을 부르고 특별한 일이 있었던 사람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윤영은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사실은 제가요. 유학을 준비하고 있어요. 영국에서 신학 공부를 하려고요. 목회자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리고 이단 연구를 하고 있어요.”
“우와, 대단하다.”
나 역시 ‘장애를 가진 사람이 목회자가 되려고 하다니, 대단하다’ 고 생각하고 박수를 쳐 주었다.
윤영은 쇳소리를 내며 십분 이상 이야기를 끌어갔고, 사람들은 점차 지쳐갔다. 테이블 밑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보다 못해 넉살 좋은 총무 오빠가 웃으며 나섰다.
“윤영이가 이번 주에 할 말이 많았나 보네. 자세한 이야기는 이따 조모임 때 하고.”
사람들은 억지로 미소를 매단 채 박수를 쳐 주었다. 윤영은 부끄러운 듯, 바닥만 쳐다보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 날 저녁 그녀가 식사비를 내지 않고 자신의 식사만 마치고 일어서자 말할 수 없는 불쾌감이 서서히 나머지 부서원들에게 퍼져갔다. 윤영의 옆에 앉은 사람들조차 윤영에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잠시나마 윤영의 조신한 태도가 수줍음,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믿었던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듯이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녀는 정의내릴 수 없는 어떤 곳에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동정의 대상으로만 장애인을 보아온 사람들에게 윤영은 색다른 존재였다.
“그냥, 걔가 하는 말 들어주기나 하자. 들어 줘.”
하지만 윤영이 그 다음 주 남자 친구 이야기를 꺼내자 모두들 흥미를 보였다. 윤영이 말을 시작하면 늘 고개를 박고 있던 병호 오빠마저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윤영이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움이었다.
“제가 남자 친구를 교회에 데리고 나오려고 해요.”
“어, 정말? 남자 친구는 교회 안 다녀?”
“지난주에 채팅으로 만났는데. 교회에 한 번 와 보고 싶다고 해서. 다음 주에 오기로 했거든요. 그러니까 그 분이 교회에 적응 잘 할 수 있도록 기도 좀 해 주세요.”
채팅으로 만났다는 사실을 저렇게 떠벌리다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건 숨겨야 마땅한 사실이다. 채팅으로 이성을 만난다는 건, 으레 쉬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는 걸까.
말을 끝내자 그녀는 가방에서 전단지를 꺼내서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제가 원래 이단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하지만 이 ‘생명의 말씀’ 단체에서 공부를 한 다음에 진정한 하나님 말씀이 무언지를 알게 되었죠. 그래서 여러분들과 같이 나누고 싶어요. 같이 해요. 지금 영국 유학 가기 전에 시간 남을 때 큰 교회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사람들하고 같이 교제하려고 하는 거예요.”
전단지의 앞면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허허 벌판 저편에 동이 터 오고 있었고 그 앞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종말을 피하려면- 당신이 지금 진실이라고 여기는 믿음을 버려야 할 때.’
사람들의 얼굴은 굳어져 갔다. 윤영은 사뿐사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모든 부서원들은 그녀에게 마음을 닫은 듯했다. 부서에서 천사표라고 알려진 현진 언니도 어느새 그녀에게서 돌아섰다. 윤영은 무리의 끄트머리께 조심조심 걸어 식당에 도착했으며 조심히 밥을 먹고 천 원을 얻어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주에 윤영이 왔을 때에 그녀에게 남자 친구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오지 않게 되자 민원 언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지대해졌다. 민원 언니에 대한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이젠 민원 언니는 모임에 빠져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