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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Nov 27. 2023

15년 전 상상이 불러온 결과

그때 나는 무엇을 상상한 걸까

두 아이를 키우면서 희미해지는 정체성과 숭고한 모성의 틈바구니 속에서 발버둥 치던 시절. 나는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분노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혼란으로 뒤범벅이 된 상태였다. 가슴에 꽉 막힌 것들을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이었을 때. 이 책을 만났다.


그리 친하지 않았던 대학 친구의 추천이었는지 기억마저 가물거리지만, 분명한 건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마 마을카페를 만들지도, 대학원에 진학하지도,  작업실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내 안의 창조성을 깨우는 12주간의 여행'이라는 부제로 출간된 『아티스트 웨이(2007년 4쇄)는 여느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편하게 읽어나갈 수 없는 책이었다. 독서하는 동안 매일 3쪽씩 의식의 흐름에 따른 글('모닝 페이지'라고 불리는)을 써야 했고, 매주 한 번씩은 오롯이 혼자만의 데이트를 가져야만 했다. 주제별로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해야 할 일'을 알려주면서 여러 개의 숙제도 던져줬다. 이를테면 작은 10가지 변화를 적도록 하고, 그중에 한 가지를 실천하라고 일러주거나 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다른 공간과 구별되는 꿈의 구역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글쓰기와 자신과의 데이트, 숙제까지 해야 할 일이 많기도 하거니와 저자가 일주일에 한 챕터씩만 읽어나가도록 구성했기 때문에 12주짜리 챕터를 모두 읽는데 3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몇 권의 노트에 손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 온갖 감정의 파고를 겪었다.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어서 응어리졌던 감정들이 활자로 마구 쏟아졌다. 그건 글이라기보다 정제되지 않은 시커먼 감정 덩어리에 가까웠다. 저자가 책에 쓴 것처럼, 매일 아침에 쓰는 몇 쪽의 글은 자기 검열 없이 감정을 뱉어낼 수 있도록 돕는 배수로였다.


저자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려면 부정적 감정부터 비워야 했다. 상처받고 괴로워하느라 소모하는 에너지가 줄어들어야 그 자리를 창조적 에너지가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복된 창조성을 발판 삼아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실천해 나가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이 지닌 장점이자 미덕이었다.


책을 읽은 후 손에서 놓았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우쿨렐레를 배우고, 평생 쓰리라 생각지도 않았던 소설과 시를 썼다. 창조성의 홍수를 경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하고 마을카페를 만든 것도, 혼자 여행하고, 돈을 벌고,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생각해 보면 책을 읽는 동안 써 내려간 여러 목록들 중 일부에 불과했다.




얼마 전 과제가 손에 잡히지 않아 몇 년 만에 『아티스트 웨이』 꺼내 들었다. 책장을 이리저리 넘겨보다가 색연필로 써 둔 메모들을 발견했다.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 갖고 싶은 10가지 품목을 써보라는 문장이었다. 비어 있는 밑줄에 써놓은 단어는, '싱글침대'였다.


매일 같이 껌딱지처럼 붙어 자는 두 아이 때문에 그저 잠이나 푹 자보고 싶어 하던 시절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싱글침대'를 썼다는 게 의외였다.  



글을 쓰면서 가만히 되짚어보니 싱글침대에 대한 욕망이 책에 끄적인 메모뿐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저자인 줄리아 카메론이 '해야 할 일' 중 원하는 이미지를 꼴라쥬 해보라는 숙제를 내주었는데 그때 노트에 오려 붙인 사진 중에도 싱글침대가 있었다. 젊은 여자 모델이 입은 의상을 광고하는 사진에서 내가 눈여겨본 건 패션 스타일이 아니라 모델이 비스듬히 걸터앉은 침대였다. 정확한 색상은 기억나지 않지만 갈빗살 무늬의 헤드가 있는 아담한 1인용 침대였다.


글을 쓰는 도중, 고흐가 자신의 방을 그린 작품을 한동안 벽에 붙여두었다는 것도 기억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납장 뒷면에 놓여 있던 고흐의 작품집을 꺼냈다. 그리고 뒷면에 테이프 자국이 덕지덕지 남은 '아를의 빈센트의 방(1899)'을 찾아냈다.


Vincent van Gogh, Vincent's Bedroom in Arles, 1899, Oil on canvas, 56.5*74cm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빈센트의 원목 침대와 방 안 곳곳을 채운 노란빛이다. 빈센트는 원래 노란색을 많이 쓰는 작가로 유명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창문과 이불, 베개, 벽면의 그림이 모두 따뜻한 노란색을 띠고 있다. 그림 뒷면에 쓰인 작품 설명에서도 고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에서는 색이 전부라고.


작업실에 굳이 침실을 만들어 노란 체크무늬 커튼을 달고, 노란색 베개와 연노랑 이불, 노란 액자, 노란 벽시계까지 걸어 방을 온통 노란색으로 채운 이유가 이 그림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작품세계로 고단했던 그의 심신을 위로해 준 나무 침대와 작은 테이블, 두 개의 의자, 그리고 벽에 걸린 액자 몇 개가 다인 고흐의 방과 노란빛을 무의식 중에 저장해 놓았던 모양이다.

                                                                                 

작년에 작업실을 얻고 나서 이곳의 포인트 컬러를 노랑으로 정하면서도, 왜 하필 노랑인가 싶었는데. 이미 15년 전의 내가 원목침대와 노란빛으로 가득한 방을 갖기로 결정해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생생하게 꿈꾸기(Reality=Vivid Dream), 자기 예언 충족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가진 거구나, 노란빛으로 가득한 방과 싱글침대.


책을 읽다가 조명을 직접 그림으로 그려놓은 부분도 발견했는데, 삿갓 모양의 3구 조명을 보고 소름이 돋기도 했다. 작업실에 설치한 조명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침대와 마찬가지로 저런 모양의 조명 역시 오래전부터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게 틀림없다.


이 방에도 조명은 모두 연노랑색이라는 무서운 사실. 식탁등으로 쓰고 싶어하던 디자인은 장스탠드로 옮겨갔다는 것도.


아무리 바보 같은 것이라도 상관없으니 무슨 소원이라도 써보라는 페이지에 쓴 문장 중에는 당시로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혼자 다시 살아보기''혼자 사는 곳에서 사람들과 파티하기'가 쓰여 있다. 지난해 1인 살림을 시작하고부터 많은 사람들과 여러 번 파티를 했으니 이 또한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작업실도 마찬가지다. 나는 책에서 '작업실 마련' '작업공간 마련하기'라고 쓴  손글씨를 세 군데에서나 발견했다.


그로부터 15년. 지금 나는 상상하고 마음에 담아 두었던 바로 그 공간에 머물고 있다.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에 '화장대 옮기기'라고 썼던 걸 보면 말이다.


지금 자기만의 공간을 꿈꾸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일부터 해보길 권한다. 그것은 청소나 정리일 수도 있고 책상에 놓을 작은 향초를 마련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공간의 사진을  스크랩하거나 눈에 보이는 곳에 붙여두자. 지금은 살 수 없고, 가질 수 없더라도 언젠가 때가 되면 당신의 마음속에 저장된 그 이미지들이 현실이 되어줄 테니.




참고

『아티스트 웨이』- 나를 위한 12주간의 창조성 워크숍, 개정판

줄리아 캐머런 (지은이), 임지호 (옮긴이), 경당, 2012

원제 : The Artist’s Way: A Spiritual Path to Higher Creativity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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