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백 안에 휴대폰과 지갑을 넣고 작업실을 나섰다. 가끔 남편이 과일이나 고기를 알아서 사 올 때도 있지만, 통화를 한 김에 같이 가서 장을 볼 참이었다.
대문을 열고 경사가 진 골목을 조금 내려가면 마을버스가 다니는 2차선 도로가 나온다. 왼쪽 방향으로 300미터쯤 걸어가면 집아파트 정문이고, 맞은편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큰 마트가 있다. 집과 작업실이 걸어서 5분 거리인 데다 마트도 가까워서 오가면서 자주 장을 보는 곳이다.
입구에 비치된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신선식품 코너를 살피는 사이 남편이 도착했다.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하곤 걸어오는 남편이 보였다. 오자마자 바구니를 손에서 낚아챈다.
장 볼게 많지는 않았다. 원 플러스 원 요구르트와 유정란, 바나나 한 송이, 천도복숭아. 키오스크에서 결제를 하고 남편 차에 짐을 실었다. 남편을 집으로 보내고 걸어가려는데 작업실까지 태워준단다.
"걸어가면 금방인데, 뭘"
"아냐, 타."
왠지 안 타면 서운해할 것 같은 눈빛이었다. 걸어가도 1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차로 움직이니 3분도 안 되어 작업실 골목까지 도착했다.
"과일 반 나눠서 가져 가. 요구르트도 챙기고."
"그럴까?"
어차피 집에서는 먹을 시간도 없으니 작업실에 두고 먹는 게 낫겠다 싶었다. 둘째가 자주 작업실에 들르는 터라 간식도 필요했다.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 작업실에서 챙겨 나온 에코백에 요구르트 한 팩을 넣었다. 바나나 두 개를 떼내고 복숭아와 계란 몇 알도 조심스레 담았다. 가방을 두 손으로 받아 안고 남편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들어 가."
"응. 나중에 봐."
남편과 헤어지면서 돌아서는 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는 우리의 모습이 퍽 생경했다. 같이 장을 보는 거야 예전부터 하던 일이지만. 한 동네에서 식료품을 사놓고선 각자 다른 집으로 들어가려니 영 낯설었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 밖에서 외식을 하고 작업실 앞에서 돌아서거나 손 잡고 동네를 산책하다가 골목에서 헤어지는 일이 어느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작업실 앞으로 차를 가져와 드라이브를 갈 때면 놀이공원을 가는 아이처럼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남편과 함께 살기로 마음먹고 결혼을 한 것처럼, 함께 살지 않기로 마음먹으면 헤어질 수도 있을 거라고. 관계가 고비를 넘을 때마다 그런 유혹에 시달렸다. 언제든 결혼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서로를 떠나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왜,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을까.
아직도 서로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내와 남편으로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양육이나 경제적 상황을 떠나 서로에 대한 진짜 감정.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건 함께 살면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좋아해서 같이 사는 것인지, 같이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좋아하는 척하는 것인지. 따로 살아보지 않고서야 어찌 알 수 있을까.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으니 당연히 함께 살았던 게 아니라 부부가 되기로 한 선택을 지속해 온 것이라면.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