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카페를 연 그해 겨울, 우리를 찾아온 것은 그 이름도 무서운 '적자'였다.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며 전기요금, 프린터와 정수기 임대료, 인터넷 요금만으로도 운영이 빠듯한데 겨울에 발맞춰 소모임들은 방학에 들어가고 주민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당시 마을카페의 2월 매출은 고작 9만 8천 원이었다.
매출도 떨어지고 소모임 회비도 걷히질 않으니 하나뿐인 난방기인 등유 온풍기에 기름을 사서 넣는 일이 버거워졌다.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운영위원들과 함께 후원주점도 열고 이런저런 재정사업과 새로운 메뉴 개발도 해봤지만, 매출은 쉽게 오르지 않았다.
문을 연 지 1년 후. 400만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이렇게 대책 없이 마을카페를 열다니.
네가 이렇게까지 무능력할 줄은 정말 몰랐어!'
이런 말로 자신을 공격할 만큼 카페지기인 내 마음은 어느새 만신창이가 되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떨어졌다. 장사라곤 경험도 없으면서 괜한 일을 벌인 건가 싶었다. 어설픈 낭만에 취해 덜컥 마을카페를 열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다. 월세를 내야 하는 날이 가까워오면 문을 열지 않는 주말에도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아침이면 카페로 나서는 발길이 무겁다 못해 무서웠다. 퇴직금을 제대로 쓰지도 않고 그대로 마을카페 설립에 출자한 남편이 종종 "오늘은 몇 잔이나 팔았어?"라고 물을 때마다 어딘가에 숨고 싶었다. 월세를 내기에도 부족한 통장잔고를 볼 때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쉽사리 그만둘 수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공간일뿐더러 문을 닫는다 해도 설립 초기에 받은 출자금과 차입금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내 인생에 절대 고민할 일 없을 줄 알았던 경영과 마케팅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사각형의 넓이를 구하기 싫어 산수를 포기했던 나로선 죽을 만큼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을카페를 열기 전까지만 해도 이웃들과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독서 모임이나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운영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카페 창업 관련 책 몇 권을 마구잡이로 잡고 읽었다.
카페 창업전 최소 1년은 동종 업계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아라.
계약을 하기 전 유동인구와 경쟁 업체를 파악하라.
메뉴의 마진과 객단가를 산출해보라.
최소한 6개월간의 운영비를 현금으로 쥐고 있어라.
작은 골목 가게는 절대 짧은 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 자리를 잡기까지 5년 이상은 버틸 각오를 해라.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이거였다. 망했다...
창업에 가장 기본이라는 내용 중 지킨 것이 하나도 없었다. 주민들이 함께 꾸려 갈 커뮤니티 공간 하나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 이윤을 내기 위해 창업으로 뛰어든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핑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엄연히 월세를 비롯해 운영비가 나가는 공간 아닌가. 반드시 수익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머리를 쥐어뜯어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았다. 매출을 올리기 힘든 약점만 계속해서 보였다.
첫째, 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유동 인구도 많지 않은 재개발 동네에다 맞은편엔 상가가 하나도 없는 애매한 위치, 그것도 걸어가면서 보이지도 않는 2층이라는 최악의 조건(그 덕분에 저렴한 월세로 구할 수 있었던 거지만).
둘째,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나 인스타 감성 폴폴 풍기는 개인 카페와 비교가 안 되는 후줄근한 인테리어
셋째, 훈련된 바리스타를 고용할 수도 없고, 카페라기엔 절대적으로 부족한 음료와 디저트 메뉴
넷째, 어떻게든 인건비를 챙겨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는 오너의 부재. (대신 태어나서 '객단가'와 '감가상각'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문과 출신의 카페지기)
마을카페는 하나부터 열까지 약점 투성이었다.
음료 판매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팔아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전집과 잡지를 권당 500원에 팔았고, 집에서 안쓰는 중고물품도 가져다 팔았다. 벼룩시장을 열어 기증받은 각종 물품들과 직접 만든 비누도 팔고, 운영위원들이 품앗이한 집반찬으로 백반도 팔았다. 그야말로 팔아볼 수 있는 건 다 팔아보았다.
매출을 올려보려고 기증받은 도자기며 직접 만든 비누도 팔아보고, 친환경 과자를 도매로 떼와서 팔아보기도 했다. 샌드위치와 카페에서 담근 피클과 각종 과일청, 심지어 운영위원들이 집에 있는 반찬을 싸와서 백반도 팔았다.
그럼에도 매출은 여전히 불규칙적이었다. 어느 달은 백만 원을 넘겼다가 다음 달이 되면 또 몇 십만 아래로 떨어졌다. 게다가 우리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파는 것은 전문성과 경쟁력이 떨어지고 자원활동에 의존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찾아야만 했다. 우리만의 강점을 살린 매출전략을.
몇 날 며칠을 곰곰이 따져보았다. 그래도 우리에게 분명히 몇 가지쯤은 있을 강점에 대해.
자신의 돈을 차용증서도 쓰지 않고 이자도 없이 선뜻 빌려주었던 출자자 33명
주민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과는 차별성을 느끼고 이 곳에서 매월 회비를 내가며 소모임을 하는 주민들
아이들을 환영하는 예스 키즈존이자 무료로 도서 열람과 대출이 가능한 도서관으로서의 공간 정체성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할 수 없는 밥해먹기, 술 먹기, 영화 보기, 악기 연주 등 독립적인 소규모 활동
인건비 받을 생각도 없고 마진 산출도 잘할 줄 모르지만, 읽기와 쓰기를 좋아하고 인문학적 감수성이 충만한 카페지기
그래, 그거다. 사람.
장사와 계산은 쥐약이지만 인건비를 받지 않고 마을카페의 존립을 위해 애면글면하는 나를 포함해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최대 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관계망을 적극 활용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우리는 출자자를 더 모집하고 소모임의 숫자를 늘리기로 했다.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은 내가 소모임 브로커를 자청하고 나섰다. 기존에 하던 영어 낭독 모임과 드로잉 모임에 이어 치유 글쓰기 모임과 저녁에 하는 독서 모임 하나를 더 열었다.
나는 평소 다른 사람들과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는 기회를 얻고, 마을카페는 소모임 회비가 늘어날 거라고 계산했다.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지면 커피 한 잔이라도 더 팔 수 있을 테고.(타고난 문과생이 하는 인문학적 계산에 따르면)
(좌)나름 오랜 취미이자 미대입시에 도전한 경력을 내세워 시작했던 드로잉 소모임/ (우)졸업은 못했지만 대학 전공을 살려 진행한 영어 낭독 모임 동네 청소년들에게 소모임 겸 진행했던 2만원 짜리 마을 과외(만원은 마을카페 수익, 만원은 아이들 간식 제공 비용)/ (우)독서에서 글쓰기로까지 이어졌던 오전 독서모임
그러나 네댓 명이 만나는 소모임의 성격상 갑자기 방문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매출이 확 늘지도 않았다. 새로운 소모임으로 월평균 방문자수와 수입을 늘리려던 계획이 아주 빗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적자 걱정을 완전히 덜 정도는 아니었다.
적자를 더는 방법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일어났다.
치유 글쓰기 모임이 있던 금요일이었다. 모임이 끝날 즈음 나도 모르게 밀린 전기요금 걱정을 늘어놓았다.
"전기요금이 3개월이 밀렸는데 다음 주 월요일이면 전기를 끊는대요."
마을카페의 재정 상태를 정확히 알 리 없는 주민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올 때마다 문이 열려 있고 에어컨이 돌아가니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운영위원들이야 빤히 아는 살림살이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씩 공간을 오가는 주민들이야 전기를 끊는다는 독촉장까지 날아오는 상황을 알 턱이 없었다.
"어머, 어떡해요?"
"가능한 분들에게 차입을 알아보거나 기존 출자자분들께 증자를 좀 부탁해보려고요."
그런데 전기가 끊긴다던 다음 주 월요일 아침. 함께 치유 글쓰기 모임을 하는 C 언니가 불쑥 카페를 찾아왔다.
"전기요금이 얼마나 밀렸어?"
"네? 이십몇만 원 정도 되는데..."
"그럼 내가 30만 원 출자할게."
석 달을 끙끙 앓게 만들던 전기요금이 몇 분만에 해결되었다. 이런 경험은 그 후에도 수차례 일어났다.
저녁에 술 한잔 하며 책을 읽는 <한잔의 낭독>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함께 모임을 한 지 1년이 되어가던 무렵이었는데 어쩌다 마을카페 운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적자가 있어요?"
어쩌다 나온 적자란 단어에 지역아동센터의 교사일을 하던 L선생님이 물었다.
"네, 초기 차입금 말고 운영하다가 발생한 적자가 400만 원쯤 돼요."
"돈을 어디서 빌렸어요?"
"시어머니가 들어주신 보험이 두 개 있는데, 거기서 약관대출을 받았어요."
"이자는?"
"어... 7.9%요. 사실 마을카페는 이자를 지급할 형편이 안 돼서 일단은 제가 내고 있고요."
운영위원이 아닌 주민들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던 이야기를 술기운에 털어놓았다.
"우리가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평소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어오지는 않던 L선생님이 이 날은 책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2년간 이자 없이 빌려주는 출자를 해주시면 도움이 되죠."
"어떻게 출자하면 돼요?"
"한 구좌에 5만 원인데, 원하시는 만큼 해주시면 돼요. 보통 한, 두 구좌 많이 하세요."
"음.... 제가 얼마나 출자를 해주면 될까요? 한 번 먼저 얘기해봐요."
대체 얼마를 출자하시려고 이러나 싶었다. 열 구좌쯤 하시려는 걸까.
"뭐... 많이 해주시면 좋긴 하지만, 출자도 언젠가는 돌려드려야 할 돈이라 한 번에 너무 많이 받는 건 부담되고요. 당장 돌려받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껏 해주시면 되세요."
"그럼 500만 원 해도 돼요?"
"네??"
한 번에 갚지 못할 만큼 큰돈이었다. 선뜻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저희가 나중에 한 번에 출자금을 돌려드리기가 힘들 수도 있어요. 매년 백 만원씩 몇 년에 걸쳐 갚아드려야 될 수도 있고. 여기 문을 완전히 닫으면 보증금 받아서 돌려드릴 수는 있겠지만."
"괜찮아요. 문 닫기 전까지 돌려달라는 말 안 할 테니."
그리고 며칠 뒤 펀드를 해약했다며 500만 원을 송금한 L선생님. 이자도 못 받을 큰돈을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제3자에게 차용증도 없이 덜컥 빌려주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보통의 가게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사장님, 대출 때문에 힘드시다고요? 제가 돈을 빌려드릴 테니 일단 이걸로 갚으세요. 이자는 필요 없고 형편 될 때 갚아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손님이 어디 있을까.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망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한잔의 낭독> 모임의 첫 책거리 파티. 수요일 저녁마다 만나 책을 읽던 이 모임에서 참 많은 책을 읽었고, 마을의 큰손을 두 명이나 만났다.
그로부터 1년 후쯤. 문을 닫기 전까지는 출자금을 돌려받지 않을 거라던 L선생님께 사정이 생겨 급하게 출자금을 돌려드려야 할 상황이 생겼다. 보증금을 빼지 않고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문을 닫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했다. 그 사실을 안 같은 모임의 K언니가 선뜻 500만 원을 출자해주었기 때문이다.
처음 나는 마을카페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적자 걱정을 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곳이 걱정을 끼치고 부담을 주는 공간이 아니라 즐겁고 유쾌한 공간이길 바랐다. 거기에다 평소 아쉬운 소리를 못 하는 성격과 '나의 무능력 때문에 적자가 발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자책 때문에 더더욱 운영에 대한 문제를 터놓고 말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진짜 무능력은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고 해결할 줄 모르는 데 있었다. 마을카페는 소수의 몇 사람이 꾸려가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만들고 채워가는 공간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그러다 함께 운영의 어려움을 나누려는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았다.
걱정을 나누는 것 역시 우리의 일이며 사람들은 언제든 도울 준비가 돼 있다는 걸.
소소한 기증과 후원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마을카페. 출자는 언젠가 돌려주어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던 내게 "돌려받을 생각 없어요, 그냥 후원할게요" 라며 손사레치던 출자자들.
다음 화 => 냉장고에 책을 넣어 보았습니다.
2화 => 17평 카페 인테리어, 어떻게 365만 원에 했냐고요?
1화=> 33명이 함께 마을카페를 차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