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북 감골이라는 마을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흙수저 집안에 태어났다. 부모님의 작은 키를 물려 받았고, 외꺼풀에 피부가 가무잡잡한 아이였다. 학구열이 높은 엄마 덕에 초등학교 시절 서울 유학생활을 했지만, 명문대를 갈 만큼 머리가 똑똑하진 못했다. 등록금을 나누어 내주는 오빠들 덕분에 대학은 다녔으나 열심히 공부하는대신 학생운동을 택했고 졸업장도 없이 대학을 나왔다. 그 흔한 어학연수도, 유럽 배낭여행도, 교환학생이나 워킹홀리데이도 가보지 못한 채 이십대를 마감했다.
집안, 외모, 학벌, 인맥, 스펙. 그 어느 것도 딱히 내세울 것 없는 내가 남들과 다름을 구분 짓기 위해 택한 것 중의 하나가 책이었다. 태어난 환경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지만 책을 읽을 수는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지성이 나의 무기가 되어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옷이나 액세서리, 화장품은 못 사도 괜찮은데 책을 못 사는 건 괴로웠다. 빌려 읽고 돌려주는 책은 어쩐지 마음에 남지가 않았다. 나는 책을 소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나니 모든 소비가 아이들 위주로 돌아갔다. 외벌이에 박봉인 남편의 월급으로는 늘 돈이 모자랐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책을 사고 나면, 그다음 책을 살 돈이 없어서 먼저 산 책을 되팔아 다시 책을 사기를 반복했다. 책을 판 값이 그냥 생활비로 쓰이는 일도 적지 않았다.
티브이나 지인의 집에서 벽면이 책으로 가득한 책장을 보면 부러웠다.
'저 사람들은 먹고살만한가 보다. 책을 저렇게 많이 갖고 있다니!'
책을 팔지 않고도 계속 소유할 수 있는 능력. 나에게 책은 힘이자 능력이었고, 그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 주는 표상이었다.(내가 마을도서관을 거쳐 마을북카페에서 활동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한때 전국의 마을카페에 책을 공유하자는 유행이 불었다. 각자 추천하고 싶거나 평소 읽는 책을 마을카페 책장의 한 칸에 보관해두고, 누구나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비치하자는 취지였다. 책장마다 책의 소유자 이름을 붙여두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몰라도 책에 대한 취향과 관심사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이 동했다. 당장 우리 마을카페에서도 실행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책장은 이미 포화상태였고, 사람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안 되겠다. 나라도 하자!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책을 배낭에 담아 카페로 옮기고 성에가 껴서 쓰지 않는 작은 냉장고를 깨끗이 닦았다. 냉장고에 책을 꽂은 뒤 이 곳이 공유 서고임을 알리는 쪽지를 붙였다. 몇 권은 잘 보이도록 카페 입구의 창가에 비치해두었다.
사람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로 마련한 공유 서고.
그후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냉장고에 든 책을 발견할 때마다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어머? 냉장고에 책이 들어있네?"
그러면 나는 얼른 그옆에 가서 원하는 책이 있으면 꺼내서 읽어볼 수 있는 공유서고임을 알려주었다. 매주 만나는 소모임 회원들에겐 평소 취향이나 기호를 고려해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무기한 대출도 해주었다.(대출을 받는 게 아니라 대출을 해주는 입장이 되는 건 꽤나 뿌듯한 일이다.)
전에 추천한 <죽음학 수업>이 너무 무겁고 어려웠다던 이에게는 죽음을 유쾌하게 풀어낸 일본 동화작가 사노 요코의 <죽는 게 뭐라고>를 권하고, 결혼생활에 헛헛함을 느끼던 이에게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추리소설 작가가 아닌 다른 필명으로 여성의 삶을 그려낸 <봄에 나는 없었다>를 꺼내주었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해보이는 이들과는 매일 글을 쓰는 모닝페이지와 자신과의 데이트를 과제로 내주는 <아티스트 웨이>를 펼쳐 보여주고, 책에서 나누어준 12챕터에 따라 12주간 함께 책을 읽기도 했다.
창가에 별도 비치한 공유 도서 5권.
냉장고로 만든 공유서고를 본 후, 사람들은 좀 더 자유롭게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읽었던 책과 함께 읽고 싶은 책에 대해. 우리는 서로 읽고 싶은 책들을 모아놓고 마음껏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곤 했다. 이 책이 왜 자신의 마음을 울렸는지, 이 책을 통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그렇게 한 권의 책을 선정하고 다시 모이면 우리는 같은 책을 읽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각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서로의 삶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과 책을 공유하고 독서모임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위로와 공감을 얻는다는 것.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책으로 나의 경험과 사유를 나누고, 그들로부터 공감받기를 바랐다.
<자기만의 방>으로 나만의 공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야기하고, <데미안>을 통해 여전히 나 자신을 알기 위해 투쟁 중임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장자의 소요유를 인용하며 내가 원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전 여행에 관심이 있어요"라고 말하기보다 "<여행의 기술>을 읽고 있어요."라며 말하는 쪽을 택했다.
때론 이런이런 책을 읽고 있다며 과시하거나 허세를 부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모임을 통해 내가 사람들과 나눈건 자신에 대한 솔직한 성찰과 따뜻한 위로에 가까웠다. 카페지기로 월급은 받지 못하지만, 사람들의 응원이야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책모임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보너스를 받는 셈이었다.
(좌) 매주 저녁마다 만나 술 한잔과 함께 책을 읽었던 '한잔의 낭독' / (우) <The Little Prince>를 1챕터씩 26주간 읽어나갔던 영어낭독 모임
(좌) 책모임이 시작할 때면 꼭 김형경 작가의 <소중한 경험>을 읽곤 했다/ (우) <아티스트 웨이> 를 12주간 함께 읽기 위해 따로 꾸린 책모임에서의 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