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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ul 10. 2020

인건비 0원인 카페의 진실

이윤을 추구하지 않으면 무엇을 추구합니까?


마을카페 '나무'의 실무자에게는 어떠한 인건비도 지급되지 않는다.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은 없지만, 인건비를 준다는 약속도 한 적이 없다. 마을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일을 임금노동이 아닌 공동체 활동의 일부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마을카페가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월세와 운영비도 겨우 내는 우리로서는 인건비를 논할 처지가 아니었다. 더구나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는 카페지기인 내가 인건비를 받지 않는데 다른 실무자들이 어찌 인건비를 받을 수 있겠나.




마을카페가 문을 연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내 손으로 원두를 주문하고, 그라인더로 갈아 직접 커피를 내렸지만 커피를 마실 때는 다른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2천 원(오픈부터 지금까지 7년째 아메리카노 2천원)을 냈다. 다른 실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돈이 아까워서 가끔은 한 잔을 내린 뒤 실무자들끼리 물을 잔뜩 부어 나눠 마시거나 손님 커피를 내리고 포터 필터에 남은 원두 찌꺼기를 사골 우려먹듯 한 번 더 내려서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내린 검은 물은 커피라기보다 쓰고 밍밍한 보리차에 가까웠다. 아무리 운영이 어렵다지만 이건 좀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비랑 밥값도 못 받는데 커피까지 돈 내고 마시는 건 너무 하지 않아요? 실무자들이 하루에 커피 한 잔 마시는 것 정도는 카페에서 지원하면 어때요?"


인건비 대신 커피라도 한 잔 얻어마시려고 했건만.



재정을 책임지는 카페지기가 제안하는 말이니 누가 반대하랴. 그렇게 우리는 하루에 한 잔 정도는 눈치 보지 않고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 카페는 커피 소비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보통 원두를 주문할 때 2kg씩 소량만 주문한다. 그러면 1kg씩 포장된 두 봉지가 배송되는데 실제로 배송되는 원두 한 봉지의 용량은 880~890g 정도이다. 로스팅을 거치면서 생두의 수분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들어가는 원두의 양은 로스팅된 원두를 기준으로 15g. 원두 한 봉지를 한 잔 분량으로 나누면 59잔을 내릴 수 있다. 1kg의 원두를 주문할 때 우리가 업체에 지불하는 원둣값이 2만 5천 원이므로 한 잔당 원둣값은 425원쯤 된다.


정확한 계산은 어렵지만 여기에 전기요금과 상수도요금, 커피머신을 비롯한 커피 관련 기자재의 감가상각 및 월세를 더하면 커피 한 잔의 원가는 최소한 500원이 넘는다. 그나마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기에 가능한 금액이다.


만약 3명의 실무자가 매일 한 잔씩, 한 달(주말 제외 평일 20일 기준) 동안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60잔의 커피를 소비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원둣값으로만 따지면 1kg인 2만 5천 원이고, 원가로 계산하면 대략 3만 원이다. 실무자가 3명이니 한 명에게 월평균 1만 원 정도의 커피를 지원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60잔을 우리가 마시지 않고 팔게 된다면?

계산은 완전히 달라진다!   

           

2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60잔을 판매하면 12만 원의 매출이 발생한다. 그중 원가인 3만 원을 빼면 9만 원의 수익이 남는다. 똑같은 1kg의 원두를 가지고 9만 원의 수익을 낼 수도 있고, 3만 원의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실무자들이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매번 커피를 마시는 것도 아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기 때문에 맡은 소모임을 하는 날이 아니면 거의 마시지 않는 데다 두 명의 실무자들은 일주일에 2, 3번 정도만 카페를 왔기 때문에 우리가 마시는 양은 계산한 것만큼 많지 않았다.


실무자가 마시는 하루 한 잔의 커피는 운영에 타격을 줄 만큼 대단히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매월 적자였고, 매년 연말이 되면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까지 차입금이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월 매출 9만 원 카페가 적자에 대처하는 법)


적자에 대한 압박감이 심해지면서, 매월 3만 원 손해라는 계산은 1년이면 36만 원, 수익으로는 108만 원을 포기해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결론에 이르렀다.


하루 한 잔의 커피 정도는 실무자들이 값을 치르지 않고 먹도록 하자던 제안은 결국 뒷걸음질 쳤다. 처음엔 실무자들이 원가 500원을 부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가, 커피머신에 연결된 정수기 필터 교체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누구도 머신으로 내리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요즘 우리는 예전만큼 다양한 음료를 팔지 않는다. 샌드위치나 캐러멜 마끼아또, 초코 라테처럼 만들기 어려운 메뉴를 없애고 뜨거운 물이나 차가운 물만 부으면 되는 간단한 음료를 중심으로 메뉴를 간소화했다.


2015년 당시 입간판. 이제 우리밀 디저트와 식사, 주류, 캐러멜 마키아토 같은 만들기 복잡한 메뉴는 먹을 수 없다.


그러잖아도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데다 관리까지 어렵던 커피머신이 고장 나 버린 뒤로 모든 게 바뀌었다. 이용이 간편한 더치 기구를 활용해 커피를 내려놓고, 누구라도 직접 타서 마실 수 있도록 냉장고에 비치해 둔다. 이용자가 좀 더 자유롭게 주방을 드나들며 음료를 타도록 하고, 마신 컵은 스스로 설거지하도록 안내하기도 한다.


단골이나 출자자들의 경우엔 스스로 커피를 타서 마시고, 돈을 계산하기도 한다. 아예 한 병을 사서 이름을 써놓고 올 때마다 알아서 타 마시는 이도 있다.


이렇게 운영방식을 바꾼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실무자에게 집중된 부담과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다.


우리가 마을카페를 만든 이유는 나뿐 아니라 이웃과 지역사회가 함께  이 공간을 공유하며 소통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공간의 지속가능성은  '사람' 없이는 불가능하다.


실무자나 운영위원들이 아무런 보수 없이 지속해서 자신의 시간과 노동, 에너지를 내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건비를 줄 수 없으니 누구라도 쉽게 시작할 수 있을 정도의 노동 강도여야 한다. 그래야 후발 주자가 뒤따를 수 있으니까.


둘째, 주민들이 서비스를 제공받는 손님으로 머무르기보다 마을카페의 주인으로 함께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같은 주민일지라도 그저 비용을 치르고 음료를 사는 관계에만 머무르게 된다면 주인과 손님 이상의 관계를 만들어가기가 어렵다. 마을카페를 자주 이용하는 주민들에게 금고를 열어 직접 돈을 내거나 잔돈을 거슬러 가도 된다고 말하는 건 그 이상의 관계를 만들고 싶어서다.



실무자들의 손이 많이 가는 음료는 판매하지 않기로 하면서 시음회까지 거쳤으나 재고 문제까지 겹치면서 팔리지 못한 비운의 참외 주스와 수박주스.
더치커피를 자율적으로 타마시면 좋은 것은, 더치 원액을 넣고 싶은 만큼 넣어서 마실 수 있다는 것.



우리에게 음료 판매는, 이윤 추구나 일자리 창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공간을 이어나가기 위해 주민들이 서로 돕는 방식의 하나일 뿐이다.  


지역과 마을에 뿌리내리고 이웃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는 공간이 되고 싶어 '나무'라는 이름을 지은 우리. 돈은 많이 벌지 못하는 작은 동네카페에 불과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분명 소중한 그늘을 내어주는 공간일 거라고 믿는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nolda/55

https://brunch.co.kr/@nolda/59

https://brunch.co.kr/@nolda/58

https://brunch.co.kr/@nolda/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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