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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un 24. 2020

17평 카페 인테리어, 어떻게 365만 원에 했냐고요?

마을이라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구한 공간은 재개발조합이 운영하던 사무실이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으로 나온 물건이었는에 월세가 부담되어 보증금을 1,000만원으로 올리고 월세를 30만원으로 낮추어 계약을 했다. 한동안 재개발 붐이 일었다가 꺼지면서 텅 비어버린 곳으로, 홀은 그냥 시멘트 벽면이었고 안쪽에 자리한 작은 방은 누런 벽지가 붙어 있는 상태였다. 있는 거라곤 홀 벽면에 달린 비뚤어진 수도꼭지와 거대한 르네상스식 액자 하나가 전부 인, 그야말로 휑한 공간이었다.


처음엔 넓은 게 장점인 줄 알았는데 막상 계약하고 보니 해야 할 일 투성이인 단점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도장을 찍어버린 걸. 돈은 부족하고, 할 일은 많았던 우리가 택한 전략은 '최대한 우리 손으로!'였다. 우리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즐거움과 보람, 함께 준비하는 가치를 추구한다기보다, 정말 돈이 너무 부족했기에 쓸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빈 공간에 가장 먼저 할 일은 페인트칠. 당연히 업자에게 맡길 형편은 안 되었다. 무료로 노동을 보태줄 일손이 필요했다.


'함께 페인트 칠 해주실 분~ 점심 제공! 아이들 환영!'


이렇게 SNS에 홍보글을 올렸다. 몇 명이 올지 알 수 없는 상태였지만 일단 매장에 가서 페인트를 샀다. 아이들도 자주 사용할 공간이니 돈이 좀 들더라도 페인트만큼은 친환경 제품으로 사자고 의견을 모은 터라 서울에 있는 유명한 친환경 페인트 매장까지 다녀왔다.




셀프 인테리어 첫 날.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와 함께 일찌감치 카페로 향했다. 출자에 동참한 J언니에게서 자기는 못 가고 대신 남편과 아들을 보내겠다는 문자가 왔다. 잠시 뒤 동네 마당발인 I언니는 유치원생 아들과 우리집 둘째와 베프인 딸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리도 두 명의 출자자 커플까지. 아이들을 포함한 총 10명이 모였다.


화장실과 홀, 작은 방까지 세 곳을 칠해야 했기에 어른을 중심으로 인력을 나누었다. 화장실에 어른 두 명, 홀은 어른 두 명과 아이들 넷, 작은 방에 어른 두 명. 이렇게 짝을 이루어 초벌 작업을 하고 나니 어느새 참을 먹을 시간이었다. 맥주와 아이스크림, 간단한 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두 번째 칠 작업을 했다.


한참 칠을 하는데, 아뿔싸. 천장에 칠할 페인트가 모자랐다. 일부러 강남까지 가서 사온 친환경 페인트를 지금 어디가서 구한단 말인가. 게다가 기본 색이 아닌 별도의 조색을 해온 제품이라 어째해야할지 난감했다. 동네에 작은 페인트가게 한 곳이 있긴 하지만, 같은 색이 있을리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쓰던 페인트 통을 들고 백여미터 거리의 페인트 가게를 찾았다.


가게 안은 발디딜 틈도 없이 페인트가 가득했다. 온갖 색깔의 페인트가 잔뜩 묻은 옷을 입고 벙거지를 쓴 사장님이 '나는 페인트칠로 먹고 사는 사람이오.' 하는 분위기를 풍기며 걸어나왔다. 나는 가져간 페인트 통을 보여드리며 물었다.


"저희가 페인트 칠을 하다가 페인트가 떨어졌는데요. 이 색이거든요. 혹시 이런 색 구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사장님은 대답도 하지 않고 뒤돌아서더니 선반에서 흰색 페인트 통 하나를 꺼냈다. 뚜껑을 열고 청록색 비스무리한 작은 물감병을 가져오더니 가볍게 톡톡 떨어뜨렸다. 그리고선 기다란 막대기로 페인트를 계란물 휘젓듯 젓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나와 함께 간 H언니의 눈이 점점 커졌다. 아저씨는 몇 번의 손놀림으로 우리가 가져 간 페인트와 똑같은 색을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물감 몇 방울의 감을 아는 그는 진정한 프로였다. H언니와 나는 카페로 돌아오는 길에 입이 마르도록 그 아저씨를 칭찬했다.   


친환경은 아니었지만 모자른 페인트를 급하게 공수한 덕분에 페인트칠은 무사히 끝났다. 마을카페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간다는 게 실감 나는 하루였다.


칠을 할 때만 해도 너무 휑해서 여기를 어떻게 마을카페답게 포근하고 아늑하게 꾸밀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처음 마을카페를 상상하면서 떠올렸던 첫 번째 이미지는 원목 테이블과 원목 의자였다. 하지만 원목 테이블은 결코 우리가 살 수 있는 가격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원목 테이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까짓 거, 테이블 만들지 뭐."


작은 목공방에 다니던 세 아이 엄마인 S언니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나중에 겪어보니 별일 아닌 게 아니었는데. '목알못'인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머리를 맞댄 결과, 다리까지 제작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대신 상판을 직접 만들고 다리는 황학동 가구거리에서 구입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상판에 쓸 나무는 지인의 공방에서 자작나무로 저렴하게 구입하고 재단까지 부탁했다.


재단된 나무가 마을카페로 도착하는 데는 며칠이 걸렸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아니 알았어도 어쩔 수 없을 일이다. 트럭에 실려온 상판을 아래층에서 2층으로 들고 올라오는 데서부터 일의 규모가 범상치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간 손으로 사포질을 하다가 근육경직과 호흡곤란을 경험했다.


사포질이 끝난 후엔 칠을 하고, 말리고... 다시 마감재를 바르고, 말리고... 또 바르고, 말리는... 지루한 과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주문해놓았던 스테인리스 재질의 다리가 도착했다. 미리 구입해둔 작은 전동 드라이버로 테이블마다 피스를 박았다. 홀에 비치할 8개의 테이블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해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드디어, 마침내, 비로소 테이블 작업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만큼 고생스러운 작업이었다.(가구 제작자 여러분 존경합니다ㅜㅜ)   


(좌)테이블 만들기 목공방에서 재단해온 8개의 테이블상판 사포질 작업. 지옥 문 앞까지 갔다 왔다. / (우)밥값을 아끼기 위해 식사는 도시락으로.


며칠간의 사포질에 지친 우리는 의자까지 만드는 것은 도저히 무리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중고가전을 사기 위해 들렀던 매장에서 마침 팔던 5천 원짜리 교실 의자를 대량 사들였다. 부엌 쪽은 지인을 통해 싱크대 하부장만 공사했고, 벽면의 타일 작업은 재료를 사서 직접 우리 손으로 직접 작업했다.


중고로 개당 만 원씩에 구입한 조명은 색을 다시 칠해서 달았는데 마침 전기 관련 일을 하는 H언니의 남편분이 무료로 설치해주신 덕분에 추가 요금이 들지 않았다. 그 뒤로 폐업하는 카페에서 몇 개의 중고 의자를 더 사 왔고, 인테리어 자작나무도 동대문의 쇼핑몰에서 중고로 내놓은 걸 직접 차로 실어 와 설치했다.


(좌)알고보니 별일 아니라고 말하는 게 습관이었던 S언니가 맨손으로 타일 위에 백시멘트를 바르는 모습/ (우)모두 중고로 들여 온 테이블 냉장고와 제빙기, 냉동고, 커피머신 등


셀프 공사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바로 간판 만들기였다. 간판을 아예 안달 수는 없고, 수십만 원이 넘는 간판을 맞출 돈도 없었던 우리로선 직접 만드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건물 입구 상부의 가로길이를 아래쪽에서 자로 재고, 세로 폭은 사다리가 없어서 눈대중으로 잰 다음 인근 목재상에서 방부목을 구입했다. 방부목으로 밑판을 만든 뒤 얻어 온 폐현수막의 목봉으로 글자를 만들어 못으로 박았다. 약 이틀에 걸쳐 페인트와 마감재를 칠하고 말리고 못질을 해서 만든 간판은 설치 업자를 통해 7만 원에 달았다.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5월 말에 시작한 셀프 공사는 7월에야 마무리됐다. 물론 그 후로도 할 일은 계속 생겨났지만 손님을 맞을 정도의 상태로 만들기까지 꼬박 두 달이나 걸린 셈이다.


로고 디자인과 칠판 글씨는 내가. 목공은 S언니가. 출입구의 간판조차 직접 우리 손으로 만들만큼 돈을 아끼고 아꼈다.


한 푼이라도 아끼자고 지난한 노동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단순히 비용을 아꼈다는 평가로는 모자를 만큼 고마운 분들이 많다. 많은 출자자분들과 일손을 보태주신 분들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 중 하나는 비용을 잘 정리하고 함께 공유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첫 출자자 모임을 통해 모든 분들께 설립 비용과 관련된 결산 내역을 보고했고, 7년이 된 지금까지도 증빙서류를 보관하고 있다. 엑셀로 정리를 해두었음에도 아직까지 영수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함께 발로 뛰고 땀 흘리며 일했던 열정과 추억이 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돈 뿐 아니라 노동과 시간, 열정을 보태준 출자자 33명의 노력과 땀이 영수증에도 배어 있다.


가끔 카페 운영이 어렵거나 힘들 때면 이 서류철을 들춰본다. '이때 누구랑 페인트를 사러 갔더라?' '못을 왜 이렇게 자주 샀지?' 하면서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면 그때 함께 페인트를 칠하고, 테이블을 만들던 사람들의 얼굴과 고생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어떻게 그렇게 해낼 수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그걸 해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마을에서 주민들과 복작거리며 놀 공간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꼭 전하고 싶은 두 번째 팁.


할 일이 많다고 소문을 내자.

정말 할 일이 많으니까!    




그렇게 두 달만의 지지부진한 셀프 인테리어 끝에 완성한 마을카페 나무의 모습.


3면으로 책과 컴퓨터, 서류 등 짐이 가득 들어 찬 작은 방. 당시 촬영한 폰에 무슨 필터 효과가 들어간건지 역광 때문인지 어둡게 나왔다.  
(좌)책장 너머로 보이는 부엌/ (우)힘들게 만든 테이블이 비치된 홀 전경


1화 => 33명이 함께 마을카페를 차렸습니다.


다음 화 => 월 매출 9만 원에도 살아남은 비결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2013년 기준입니다.)

<마을카페 나무 셀프 인테리어 비용 결산>

-친환경 페인트 및 부자재 구입 : 498,400  
-테이블 제작 및 배송 : 446,800(테이블 상판 180,800+ 다리 236,000+배송료 30,000)
-중고 의자 구입 및 운송료 : 175,000
-부엌 타일 작업 : 8,000(타일 0(기부)+백시멘트 4,000+실리콘 4,000)
-싱크대 하부장 설치 : 800,000
-데코타일 바닥 공사 : 620,000
-전등 설치 : 163,000(중고 전등 10개 100,000+전구 63,000)
-간판 제작 및 설치 : 148,000(방부목 및 바니시 등 78,000 + 설치비용 70,000)
-선반 제작용 목공비 : 44,000
-방석 제작 비용 : 60,000
-중고 인테리어 자작나무 : 50,000
-출입문(목문) 제작 및 설치(지인) : 90,000
-청소도구 및 기타 잡화 구입비 : 254,590
-주유 및 주차비 : 98,500 -식대 : 194,860
-운송비 : 100,000(기존 도서관 책장 및 도서, 컴퓨터 등)
-음료 냉장고 1, 등유 온풍기 기증

=> 합계 : 3,651,1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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