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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un 30. 2020

상품권 깡을 당했습니다.

만년 적자 카페의 비밀 거래


어느 날 두 명의 초등학생이 천천히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책을 보러 온 건가 싶었는데 바로 카운터 쪽으로 걸어오더니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이거 돼요?"


한 아이가 주머니에서 내민 것은 구겨진 문화상품권 한 장. 


구깃한 상품권의 모양새를 보니 아무 데도 못 쓰고 그동안 보관만 한 게 틀림없다. 


아이들 사이에 문화상품권을 생일선물로 주고받는 것이 유행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마땅히 쓸 곳을 찾지 못해 주머니 속에 넣어둔 모양이었다. 


당연히 안될 일이지만 아이들이 실망할 걸 생각하니 선뜻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내가 뜸을 들이자 옆의 아이가 거드는 말.  


"이거 된다던데요?"  


엥?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그러잖아도 적자 운영으로 힘든 마당에 월세도 못 내고, 재료도 살 수 없는 상품권을 받아서 어쩌라고. 하지만 상품권을 내밀며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두 명의 아이들에게 "안 돼. 우린 안 받아. 다음엔 돈을 가져와서 사 먹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음... 원래는 안 되는데 오늘은 받아줄게."


두 아이의 눈이 반짝거리더니 갑자기 목소리가 커진다.


"여기 뭐 팔아요?"

"너희들이 먹을 만한 건 오렌지주스, 아이스 초코 라테, 샌드위치, 토스트?"

"아이스 초코 라테는 얼마예요?"

"삼천 오백 원."

"그럼 오렌지주스는요?"

"이천 원."


요 녀석들이 흥정하듯 이것저것 가격을 묻는다.


"토스트는요?"

"이천 오백 원."

"그럼 토스트 하나만 주세요."

"그래."


아차. 그러면 이천 오백 원을 현금으로 거슬러줘야 하는데. 이거 어쩐지 손해 나는 장사를 하는 기분이다. 내가 조금만 장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음료는 뭘로 할래?" 이렇게 묻고 상품권 금액만큼 주문을 받았을 텐데. 


장사 머리라곤 1도 없는 나는 결국 거스름돈을 쟁반에 담아 두 손님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갖다 주었다. 


아이들에게 판매한 토스트와 서비스로 제공한 우유 두 잔, 그리고 거스름돈 2,500원.


"맛있게 먹어. 우유는 서비스야."

"네."  


아이들은 조잘거리며 신나게 토스트를 먹더니 접시와 컵을 깨끗이 비우고 잔돈까지 챙겨 유유히 카페를 빠져나갔다. 


빈 접시와 컵을 치우는데 갑자기 뒷목이 서늘해진다. 혹시 얘네, '선수'는 아니겠지? 학교 앞 분식집에 조심하라고 미리 언질을 줘야 하나? 설마 여길 또 오진 않겠지?(부탁이야, 제발 오지 마!) 


카운터로 돌아와 금고 속의 상품권을 보는데 착잡하다. 만원짜리가 가득해도 모자를 판에 문화상품권이라니. 이 거래는 다른 운영위원들에게 비밀이다. 그러잖아도 이윤 내는 일에 재능 없는 내가 상품권을 받고 토스트를 판 것도 모자라 거스름돈까지 준 것을 알면 한 소리 할 게 뻔하니까. 


얘들아, 부디 '마을카페에서 문화상품권 받아준다'라고 친구들에게 소문 내지 마라. 우리 망한다.

(문화상품권은 어떻게 했느냐고? 거래를 숨기기 위해 내가 현금 5천 원을 주고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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