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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선생 Dec 08. 2024

노동을 놀이로 탈바꿈시킨 햇님그네

지경다지기를 흉내내어 그네놀이로 만든 한국의 놀이천재

놀이의 탄생   

   최초 놀이가 어떻게 탄생 되었을까요? 유명한 영국의 민족학자 타일러(Tylor,E.B)는 <잔존기원설>을 주장합니다. 즉, ‘발생 당시에는 제사나 의식 등의 의례로 공동체 전체에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문화가 오랜 시간의 경과 속에서 원래의 의미와 기능을 상실하고 해체되어 겨우 연명하고 있는 습속’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윷놀이를 연구해보면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던 윷놀이판 암각화는 하늘의 별자리인 북두칠성을 그려놓았는데 처음부터 놀이가 아니었을 겁니다. 천손 민족이라 자칭했던 선조들이 해마다 일정한 때가 되면 하늘에 제를 올리면서 운세를 점치는 등 의례에 사용되다가 삼한시대부터 돼지, 개, 양, 소, 말 등 목축 사회에 필요한 의례 행위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그런 의미가 상실된 체 윷놀이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서양의 찬스게임도 옛날에는 신의 뜻을 묻는 신성한 복점으로 행해졌다는 것입니다.    

  

   놀이는 이처럼 자연 앞에 나약한 인간이 길흉화복을 점치던 의례 행위로부터 시작하여 생존에 꼭 필요한 행위인 ‘동작과 멈춤’으로 표현된 '숨바꼭질' 류의 회피와 사냥본능이 신체 놀이화되는 등 무수히 많이 생겨났습니다. 고대올림픽 종목인 달리기, 창던지기, 레슬링 등도 모두 이런 배경에서 놀이화, 스포츠화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옛날에는 노동 행위였던 것이 더 이상 그런 노동이 필요하지 않은 현대 사회에 놀이화된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햇님그네’와 서양의 팀빌딩 게임(Team Building Games)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노동행위였던 지경다지기

   일명 햇님그네(해오름) 놀이는, 전통 시대에 집을 짓기 위해서는 집터를 닦는 작업을 먼저 했는데, 큰 돌이나 통나무를 새끼줄에 매 지짐돌을 들어 올렸다가 내리치면서 땅을 다지는데, 이를 ‘집터다지기, 달구(고)질, 지경(정)다지기, 집터닦기 등이라 하였습니다. 이럴 때면 온 마을의 구성원들이 모여 공동노동을 하였는데 이때 제대로 땅을 다지기 위해서는 호흡이 맞아야 했는데 이를 위해 노래를 주고받으면서 노동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그런 날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재앙을 쫓고 축복하며 풍물놀이 패와 춤과 노래를 부르며 신명나는 잔치를 벌였습니다.     

   <지경다지기>로 알려진 이 노동 행위와 노래는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보호받는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지경다지기가 있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집터를 다지며 흥겹고 힘차게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남성노동요이면서도 기복적인 기능이 짙게 드러나 있습니다. 가사는 대체로 명산대천의 정기가 뻗어내린 터에 집터를 다져 훌륭한 재목으로 집을 지어놓으면 충효에 바른 자손이 만대에 번창하고 부귀다남하여 영화를 누리게 되리라는 소망을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노래는 노동에 적합한 4·4조로 이뤄졌는데 1행의 선소리가 끝날 때마다 여러 일꾼들이 “에여라 지경이요” 하며 후렴을 부르는 선후창 형식입니다. 다른 노동요와는 달리 유교 윤리와 풍수지리적 축원이 바탕을 이루는 지경다지기 노래는 성리학와 풍수 사상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제가 탐방하여 취재한 경기도 화성의 팔탄 지경다지기도 이와 유사합니다.

에여라 지경이여(중모리)

여보시오 여러분들/ 이내 말씀 들어보소/ 이 땅은 어디인고/풍수님을 모셔다가/ 좌향을 살펴보니/좌청룡 우백호는/ 화가가 그린 듯이/ 자연으로 생겨졌고/산이 높고 물이 맑아/ 금수강산이 여기 이터/단군 성대 소 성대/ 천산 민족이 웅거 한 터/요 터에다 집을 지면/ 아들 낳으면 효자 되고/딸을 낳으면 열녀 되고/ 

에여라 지경이여

   지경다지기를 끝내고 쉴 참이 되면 중중모리로 바뀌는데 “어럴럴럴 상사뒤야 어럴럴럴 상사뒤야”로 노래도 빨라집니다. 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든 경우도 있는데 강원도 무형문화재 9호인 철원 상노리지경다지기를 현대 창작극으로 만들어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2년 앞둔 2016년  ‘올림픽페스티벌 문화예술행사’의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았습니다.      


놀이로 탈바꿈한 햇님그네

   햇님(해오름)그네라는 건 아마 지경다지기를 하는 공동작업 형태를 응용하여 놀이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언제 누가 시작하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필자가 이 놀이를 접한 것은 10여 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전통 놀이에 햇님그네나 해오름 놀이는 문헌에 나타나지 않으며 경험해본 사람도 없습니다. 이 놀이는 주로 어른들이 아이들을 태워주는 놀이로 정착되었는데 햇님그네를 당기면 아이가 위로 뜨는데 이때 “하나~ 둘~ 셋~ 넷~ ” 숫자를 외치며 호흡을 맞춰야 안전하고 일정하게 그네를 들었다 내렸다 할 수 있습니다. 필자도 몇 번 타봤는데 몇 센티밖에 안 뜨는데도 약간의 공포심과 안도감이 교차하며 의외로 호습고 재미있는 놀이입니다.   

   

* 호습다는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말인데 전라도에서 쓰던 어휘로 재미있다 보다 강한 표현으로 ‘오금이 지릴 정도로 찌릿하고 즐거운 감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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