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마드 노을 Jan 11. 2024

내일 유럽으로 출국하는데, 취소 안될까요?



2023년 2월, 11년 다닌 회사에 사직서를 냈더니 한 달 정도 쉬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보라고 했다.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한 달 쉰다고 돌아선 마음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직장인 신분을 유지하고 한 달 휴가를 받는 게 꽤 괜찮은 제안 같아서 일단 수락을 했다.



내가 일 년에 휴가를 썼던 날은 보통 6-7일 정도였다.

주말도 나와서 일하는 날이 많았고 유급휴가도 다 못쓰고 살았었다.

그게 한이 맺혀서인지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연월차휴가를 다 쓰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한 달 휴가를 받자마자 유럽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나라를 갈까 고민을 하던 중에 같이 태국여행을 갔었던 친구가 스페인을 추천해 줬다.

휴양과 관광이 적절히 어우러진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 스페인은 꽤 괜찮은 선택지였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스페인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처음엔 정말 설레었다.

그런데 출국일이 가까워올수록 상상이상의 공포가 밀려왔다.



나는 영어도 거의 못하고, 올라 그라시아스 가 스페인어인걸 출국 하루전날에 알았다.

해외여행은 한국에서 비행시간 6시간 이내의 나라들만 갔었고, 혼자 해외를 가는 건 처음이었다.



14시간 거리에 있는 먼 나라에서 언어도 안 되는 동양인 여자 혼자 잘 지내다 올 수 있을까.


호기롭게 비행기를 예약할 땐 생각지도 못했던 걱정들이 밀려와서 출국 전날엔 잠이 안 올지경이었다.


게다가 퇴사스트레스로 감기몸살에 호되게 걸려서 주사 맞고 약 먹고 영양제맞고를 반복하던 중이었다.


자신감과 설렘은 쪼그라들었고 그 자리엔 걱정과 불안이 부풀어 올랐다.





가능하다면 비행기를 취소하고 싶었다 정말.

제주도나 가서 쉬다 올걸 내가 미쳤지 싶었다.


하지만 지금 안 가면 그때 갈 걸 하고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비행기표는 취소할 수 없었고 나는 가야 했다.











그래도 하나 위안이었던 건 보기만 해도 마음 편해지는 내 나라 국적기를 타고 간다는 것이었다.


낯선 나라로 떠나는 길을 같이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감기몸살이 다 낫지 않은 상태여서 기운을 내기 위해 우걱우걱 기내식도 열심히 먹어뒀다.

국적기에서 한식을 먹으면서 위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정까지 배부르게 채웠다.




새삼 돈 쓰는 것도 이렇게 힘드네 싶어서 얕은 기침을 하다가 웃음이 났다.




콜록콜록 두근두근




하하하, 괜찮겠지?




그렇게 2023년 2월 6일 월요일, 14시간 반동안의 비행을 마치고 바르셀로나 공항에 내렸다.

나의 첫 유럽이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