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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Jan 25. 2024

여자혼자 스페인 도장 깨기

해외여행 갈 때는 한국 인스턴트식품을 가져가곤 한다.

갈 땐 괜히 가져가나 싶고 귀찮다가도 막상 가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혹시나 하고 챙겨 온 간편 쌀국수를 한입 먹으니, 컵칼국수를 옷 짐 사이에 쑤셔 넣은 과거의 나를 칭찬하게 된다.

이어 이거지! 하면서 순삭을 해버리고 나니 몇 개 더 가져올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렇게 익숙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새로운 곳을 대면한다.

낯선 곳에서 먹는 익숙한 음식은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초반에 한국음식을 간단하게라도 먹었던 건 새로움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였다.

게다가 뜨끈한 국물음식이 별로 없는 바르셀로나에서 한국의 국물맛은 에너지드링크와 같은 효과를 낸다. 



그렇게 아직은 조금 많이 서먹한 바르셀로나와의 하루를 또 시작해 본다.

바르셀로나 거리는 여전히 멋지다.

사실 방에 혼자 있으면 여기가 유럽인지 외딴 바닷가 민박집인지 어느 순간 잊게 된다.

하지만 거리에만 나와도 내가 지금 유럽에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스페인에 와서 해보고 싶었던 것, 먹고 싶었던 것들을 찬찬히 하나둘씩 해보고 먹어볼 생각이다.

쫓기듯이 다니는 게 싫어서 하루 일정은 1-2개 정도로 정했다.

많은 도시를 다니는 게 아니고 주로 바르셀로나에만 있을 예정이어서 엄청 여유로웠다.











오늘의 첫 일정은 추로스사냥이었다.

스페인추로스가 엄청 맛있다고 들어서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했다.

먹순이가 스페인 첫 외식으로 추로스를 선택한 걸 보면, 이건 맛집방문이 아니라 사냥이라는 표현이 맞다.


아침 일찍 영업을 시작하는 유명 추로스집이 있어서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골목에 위치한 작은 추로스집이었고, 추로스 6개와 핫초코 세트가 4유로였다.

빵순이는 신이 나서 한 손엔 추로스, 한 손엔 핫초코를 받아 들고 가게를 나왔다.



방금 튀겨 나온 추로스에 설탕이 뿌려져 있어서 적당히 달달했고 걸쭉한 핫초코와 함께 먹으니 무난하게 맛있다.

만화 요리왕비룡처럼 눈이 번쩍 뜨이고 입속에 밀밭이 자라나며 달콤한 꿀 위에 나비가 뛰어노는 듯한 천상의 맛은 아니었지만 바삭하고 달달해서 만족스러웠다.

너무도 상상이 가는 바로 그 맛이었다.



추로스를 먹으며 출근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걸어간다.


바르셀로나 유흥가였던 아비뇽가의 창부를 그린 피카소의 그림 '아비뇽의 여인들'이 배경이 된 아비뇽길이 가까이에 있어서 그곳에서 남은 추로스를 마저 먹었다.


지금은 작고 평범한 골목이 되어버린 아비뇽길에서 추로스를 먹고 있자니 꿈인 듯 아닌 듯 또 모든 게 신기해진다.





출근할 시간에 출근을 하지 않는 것,

생전처음 유럽에 와있는 것,

유명 미술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추로스를 먹고 있는 것,


하루하루가 새로움이 연속이다.

한 번에 많은 자극이 들어오는 게 좀 버겁게 느껴져서 많은 걸 하지 않고 여유롭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 그런데 한 겨울 이른 아침부터 골목길에 앉아있으니 훌쩍훌쩍 자꾸 콧물이 난다.

낭만도 좋은데 얼어 죽을 것 같아서 호텔에서 쉬다가 다음 목적지를 향해본다.








두 번째 목적지는 피카소미술관이었다.

아티켓이라고 해서 바르셀로나 유명 미술관 몇 곳을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출국 전에 미리 구매했다.

난 1년 전에 4만 원 때에 구매한 것 같은데 지금 보니 5만 원 정도로 올라있다.


한국어해설 오디오 가이드북도 5유로를 내고 대여했다.

해당작품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을 감상해 본다.

한국어 오디오북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곳인 듯했다.



그림보고 가이드북 듣고 하다 보니 3시간이 후딱 지나버렸다.

내가 그림 보는 걸 싫어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잘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한 게 피카소그림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신기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신기한 거고

아이고, 장시간 서 있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역시 노는 것도 체력이 중요하다는 걸 나이가 들수록 느낀다.

예전엔 놀 때는 안 힘들었는데 말이다.

그림을 더 보고 싶었지만 체력이 안 되는 관계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점심을 먹으러 갔다.

미술관 주변에서 스페인식 볶음밥인 빠에야를 먹었다.

빠에야 13.5유로, 샹그리아 4.5유로였다.

밥이 주식이 아닌 나라에 오니까 밥종류가 엄청 먹고 싶었다.

양이 많아서 다 먹진 못하고 조금 남겼다.

빠에야 맛은 괜찮았고, 샹그리아는 그냥저냥이었다.

평소 궁금했던 빠에야와 샹그리아를 먹어본 자체로 그냥 즐거웠다.



동양인여자 혼자라서 항상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어두워지면 호텔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저녁을 미리 사들고 들어갔다.

스페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하몽이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했다.

원래 육포를 즐기지 않아서 하몽자체에 큰 기대는 없었으나 궁금증은 꼭 해소하고 싶었다.

권혁수가 다녀갔다는 샌드위치맛집에서 하몽샌드위치를 구매했다.

이베리코 하몽이 맛있다는 걸 대충 들었던 터라서 이베리코 어쩌고 쓰여있는 게 하몽샌드위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7.3유로로 다른 메뉴보다 좀 더 비쌌지만 구매했다.

너무 궁금한걸!



그 맛은...... 대실망!



하몽이 너무 짜서 반정도 먹고 룸 탁자에 올려뒀다. (아까워서 결국엔 다 먹었지만. 하하.)

빵은 바삭하고 맛있었는데 하몽의 짠맛이 선을 넘었다.

분명 맛있는 하몽이 있을 것 같아서 다음에는 샌드위치 말고 진짜 하몽을 먹어보는 걸로 하고 계속 물을 들이켰다.



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라서 실패마저도 재밌고 즐거웠다.

맛은 아쉬웠지만 먹어봤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이었다.


삶을 여행하듯이 살아야 한다는 게 이런 건가 싶어 진다.

모든 순간은 어쩔 수 없이 처음이기에 어설픈 게 당연하며, 잠시 실패하더라도 결국엔 실패한 게 아니기에 조금은 여유를 갖고 살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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