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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Mar 05. 2024

알바도 안 써주는 30대 백수의 현실

취업률 낮춰놨으니 출산율이라도 올려야 하나요



취업률 낮춰놨으니 출산율이라도 올려야 하나요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대한민국의 취업률 통계에 카운트되는 당당한 사회인이 됐다는 생각에 꽤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은 느낌이었다.

매달 월급에서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세금조차도 그 증거인 것 같아서 한동안은(한동안만!) 싫지가 않았다.

나 이제 돈 벌잖아라는 무심한 말과 함께 부모님께 용돈을 쥐어 드릴 땐 뭔가 사람구실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에 세상 뿌듯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1년 뒤에 나는 백수가 됐다.


아빠는 빼도 박도 못하는 실업자가 되어있는 딸을 밥은 먹고 다니냐 라는 말과 함께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셨다.

거기에 동네사람을 통해 선자리를 알아왔다는 엄마의 기대 섞인 눈빛을 마주할 때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 번 사는 인생 네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펼쳐봐라 라는 말을 기대한 건 내 욕심인 걸까.

백수생활로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부모님의 걱정 어린 말씀을 듣고 있으면 '돈 벌기 힘들면 결혼해서 출산율이라도 올려라'하는 세상의 재촉처럼 느껴졌다.



나는 골칫거리 백수 노처녀가 되어있었다.







알바도 안 써주는 30대 백수의 현실


길어지는 백수생활에 알바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동안 알바어플을 뒤적거렸다.

모아둔 돈 까먹으면서 불안해하느니 돈도 벌고 몸을 움직이며 잡생각을 없애는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이 먹고 특별한 기술이 없으니 알바조차도 마땅한 게 없었다.

여자나이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나이에서부터 지원자격이 되지 않아서 걸리는 경우가 많았고, 나처럼 물경력에 나이만 많은 여성에겐 그 거름막이 더 촘촘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와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몇 개 지원한 알바자리에선 연락이 없었고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수록 괴로움이 커져갔다.


그리고는 엄청난 무기력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라는 생각에 며칠을 누워만 있었다.

내내 유튜브만 봤고 작은 자극도 버겁게 느껴져서 예전에 봤던 드라마나 예능을 반복 시청하며 무료함에 빠져들었다. 허한 마음이 극에 달할 때는 달아터진 간식을 쫓기는 사람처럼 마구 먹으며 어떻게든 채워보려 애를 썼다.


그렇게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맙고 고마운 나의 절망


인정의 시간을 지나 나를 찾아온 건 희한하게도 좌절이 아니라 가벼워진 마음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실망이 아니라 드넓은 우주에서 털끝 같은 인간임을 받아들이는 겸손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정말 작고 보잘것없는 한낱 인간이기에 크게 부담 갖지 않고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된 몸살을 앓고 난 것처럼 오히려 마음이 가뿐했다.



나를 숨 막히게 하는 건 알바 몇 개 지원한 게 안 됐다고 낙담하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는 게 당연한 건데, 내 멋대로 하고 싶다며 떼쓰며 우는 3살짜리 아이와 내가 다를 바가 없었다.



입이 원하는 음식만을 먹는 사람은 잘 자라기가 힘들다.

많은 것을 골고루 경험해 본 사람은 다양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과 지혜를 얻는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진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욕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내 삶을 풍성하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니 다시 일어날 힘이 생겼다.


하루라도 빨리 나를 찾아와 준 절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절망의 깊이만큼 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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