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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Mar 01. 2024

월급쟁이 안 할 건데요

못하는 게 맞을지도


변하지 않는 마음 하나 : 아 회사 가기 싫어!



회사생활의 지겨움은 초단위로 변하는 이 세상에서 꽤나 지독한 일관성을 갖고 있다.


회사에 적응하는 과정은 너무 고달팠고,

어느 정도 일에 숙달이 되면 허무와 권태가 덮치듯 찾아왔다.



나는 MBTI에서 감성형인 F였지만 회사에서는 지극히 T처럼 행동했다.  

AI의 사람버전처럼 항상 무감정 무표정으로 일을 했고, 한 달에 한 번씩 수혈되는 월급을 확인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버텨냈다.



나는 항상 회색빛이었고 감정은 하얗게 메말랐으며 속은 새까맣게 곪아있었다.

차라리 타는듯한 붉은빛으로 이글이글 물들어 화를 내거나, 보기만 해도 차디찬 파란빛 냉혈인이 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난 화를 내다가 포기하고 차가워지는 단계를 지나서 아무 감흥이 없는 무채색상태가 되어있었다.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점점 더 탁해졌고 내 세상은 온통 흑빛이었다.








저는 가축 아니고요, 사람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뭘 그렇게 바득바득 버텼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여기서 나가면 뭘 또 할 수 있을까 싶었고 이 회사보다 좋은 회사에 들어갈 자신도 없었다.


부모님을 걱정시키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싶지 않았고,

떳떳한 사회인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의 신분하락이 무서웠다.

줄어가는 통장잔고를 상상만 해도 머리가 띵해졌다.


나는 회사라는 우리에 갇혀 매달 들어오는 급여이라는 먹이를 기다리는 가축화된 월급쟁이일 뿐이었다.


길들여진 동물이 갑자기 야생으로 방목된다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당황스럽고 두려운 마음에 주인집 앞에 엎드려 다시 들여보내달라고 애달프게 울다 굶어 죽거나 상위포식자 야생동물에게 잡혀먹게 될 것이다.



월급과 회사에 길들여진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노동착취를 당하다가 언제 잡혀먹을지 모르는 데도 우리를 떠나지를 못하는 내 모습이 답답하고 처량했다.


차라리 진짜 가축처럼 잡혀먹게 될 앞날은 까맣게 모른 채 주는 먹이나 받아먹었다면 덜 고달팠을지도 모르겠다. 뻔히 펼쳐질 미래를 알면서도 애써 외면을 하는 나에게 측은함마저 들었다.









월급쟁이 안 할래요. 안 하고 싶어요!


퇴사 직전까지도 퇴사를 수도 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숨이 턱턱 막혔고 수시로 현기증이 찾아왔다.

밀리고 밀리다가 마지막 남은 최종 방어선을 지키는 군인의 마음으로 나를 지키기 위해 퇴사를 했다.



퇴사하고 뭐 할 건데?라는 질문에 딱히 대답할 말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한 회사에 종속되어 영혼 없는 출퇴근을 반복하며 단순히 돈과 시간을 바꾸는 그냥 '월급쟁이'는 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나중에 다시 회사를 다니더라도 내가 원하면 언제든 이직을 할 수 있게 능력과 역량을 키우고 싶었다.

일방통행식 갑질에 지쳤고, 지지고 볶는 사내 인간관계에 넌덜머리가 났다.



'최대한 사람을 만나지 않으며, 나 스스로 먹고사는 일'이 하고 싶었고 마땅히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일단은 프리랜서라고 부르기로 했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나 스스로 하고 싶고 즐거운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직장인 외에 다른 삶을 생각해 본 적 없는 내가 과연 프리랜서가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직장생활은 해봤으니 다른 것에 도전해 보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는 믿음이 있었다. 가보지 않은 길은 아무도 알 수가 없고 또 의외로 잘 맞을지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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