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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Mar 08. 2024

백수인데 독립을 했습니다

돈을 못 버는데 집을 나왔다


걱정은 시키지 말자 다짐했는데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넉넉하지도 못했다.


초등학생 때 학교 끝나고 구멍가게로 달려가서 자잘한 불량식품을 사 먹는 게 내 작은 낙이었다.

하지만 '엄마, 100원만!' 하며 돈을 받는 게 죄송해서 며칠을 참다가 가장 양 많고 싼걸 사서 아껴 먹곤 했었다.

매일같이 300원짜리 봉지과자를 사 먹는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늘 돈에 쫓겨사는 부모님을 보며 나는 일찍 철이 들었고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이 항상 안쓰러웠다.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부모님을 걱정시키거나 실망시키지는 말자 다짐하며 착하고 믿음직한 딸이 되고 싶었다.

취업을 하고 부모님과 살면서 집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가 됐다.


엄마는 지금도 '너는 초등학교 때도 준비물부터 해서 뭐 하나 신경 쓸게 없었어. 다 알아서 했으니까.'라고 말씀하신다.





K-장녀는 백수가 죄스럽다



퇴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부모님의 걱정은 아주 큰 고민거리였다.

11년 다닌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아빠는 많이 걱정하셨지만 그래도 내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항상 자식걱정이 많은 아빠의 성향을 알기에 퇴사를 하고 나서는 과하게 밝은 척을 했다.

기분이 5만큼 좋으면 10만큼 표현하며 호들갑을 떨었고 일부러 더 씩씩하게 지냈다.

하루는 노래를 부르며 거실을 뛰어다녔더니 쟤 왜 저래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시기도 했다.(너무 과했나, 하하)



나도 백수상태가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과 불안을 마주하다스리는 것도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과정이며 더 나이 들어서는 이럴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분명 내게 진짜 중요한 것을 가져다줄 거라 믿었기에 기꺼이 겪어내고 싶었다.


평생 일 안 하고 놀고먹기야 하겠어라는 생각과 함께 나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도 깔려있었다.

뭐 사실 나 자신보다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을 더 믿고 있긴 했다.


먹고살려면 뭐든 하겠지, 굶어 죽겠냐고! 내가 먹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돈을 못 버는데 집을 나왔습니다



나는 고정수입이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했다.


내가 눈에 보이면 부모님 걱정이 더 커질 것 같았고 그 걱정이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며 꿋꿋하게 걷는 와중에 부모님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독립은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내 나름의 노력이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거의 그렇듯 나의 부모님도 정말 표현이 서툰 분들이다.

그분들이 걱정을 하시는 것은 자식을 사랑한다는 가장 진실된 표현이다.

너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라는 말을 걱정하고 마음 졸이는 걸로 대신하신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사랑은 '네가 어떻게 살아도 든든한 네 편이 있으니 절대 걱정 말라'며 항상 나를 일으켜준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줄 마지막 안식처가 있다는 믿음이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한다.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법이니까.



앞으로 진짜 내 일을 찾게 된다면 부모님께 또 다른 기쁨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처음 취업했을 때 엄청 기뻐하셨으니까, 한 번 더 기쁘게 해 드릴 기회가 생겼다!

그때까지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게만 내 옆에 계셔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영원한 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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