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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Sep 02. 2023

카톡을 엉뚱한 사람에게 보냈다

이 사람한테 보낼게 아닌데....


예전에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다. 두어 번 만나고 나서 더 만나보고 싶었는데 상대방은 내게 별로 마음이 없어 보였다. 속상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 친한 여자친구에게 카톡으로 하소연을 했는데 별로 친하지 않은 남자사람 친구에게 잘못전송을 해버렸다.



급히 전송 삭제를 눌렀으나 이미 읽었고... 하...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마디로 진짜 쪽팔렸다.

내가 매력 없는 사람임을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내입으로 소문을 낸 것 같아서 정말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카톡을 받은 친구는 별거 아니란 듯 심드렁하게 답장을 보내왔던 것 같다. 사실 뭐라고 왔는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의 우순선위에서 뒤로 밀릴 만큼 그 친구의 답장은 정말 별 내용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 친구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뉘앙스로 답장을 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이 친구는 나를 소개팅에 나가서 차이고 다니는 매력 없고 한심한 얘로 생각할 것이다'라고  단정 짓고, 지레짐작이라는 필터를 통해 친구의 답장을 내 마음대로 걸러 듣고 해석해 버렸다. 그렇게 대로 내린 결론을 허겁지겁 마음에 삼켰고, 꺼끌 거리면서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창피함을 뱉어내려고 애쓰며 이불킥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내가 소개팅에서 잘됐는지 까였는지는 전혀 관심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은 그 일을 기억조차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엉뚱한 사람에게 카톡을 보냈을 때의 나는, 진심과 진실을 외면하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내 확신대로 믿어버렸다. 이런 나를 발견할 때면 매일 비슷한 것만 추천해 주는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처럼 항상 비슷한 얘기만을 듣고 비슷한 내용을 주입시키며 나만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마치 많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것처럼 전혀 다른 한 세상에 시선을 고정하고 주변은 살피지 못하고 살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나의 여과지가 좀 더 다양했으면 좋겠다. 같은 여과지로 걸러진 익숙한 맛이 지겨울 때쯤 새로운 여과지에서 나온 신기한 맛을 음미하며 다양한 관점의 맛을 느껴보고 싶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고 기뻐하듯이 다양하고 새로운 관점을 통해 얻는 깨달음의 만찬을 즐기며 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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