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감정으로 돌아보는 소중한 것들의 소중함
바깥은 여름-김애란
책을 읽기 전에
정말 오랜만에 읽은 한국 소설이다. 주변의 추천을 받아 읽게 된 책이다. 책을 추천해줄 때 지인이 이 소설의 어느 구절을 이야기 했었는데 그 부분이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왜 이 책을 추천했고, 추천할 때의 표정이 왜 그리도 아련했었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책 내용에 대해서 구석구석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단어 하나, 문장 한 구절에서 느꼈던 콕콕 찔리는 아프고 싸한 느낌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그런 충분히 감동스러운 표정으로 지인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책이다.
요약
마치 우리 주변을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간직한 누구에게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을 엮은 소설
감상
비일상적인 사건에서 스치는 뜨거운 마음들
책을 읽는 내내 슬펐다. 슬프고 아팠다. 일상 속에서, 그리고 드물게 일어나는 비 일상 속에서 문득 무척 슬픈 순간들이 있다. 문득 무척 감사한 순간들도 있다. 그런 순간들은 보통 개인의 마음을 스치는 날카로운 감정일 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 스치는 차갑고 때로는 무척 뜨거운 감정들을 촘촘하고 깊게 엮어낸 책이다.
왜 그렇게 슬펐을까. 아마 내가 겪었던 비슷한 순간들, 그때 스쳤던 생각들이 너무나 정확하게 글로 쓰여졌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떻게 늙는 다는 것을 '액체화가 된다'고 그리도 정확하고 축축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걸까. 그 축축하다는 표현에서 나의 강아지가, 떠나간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과 .. 그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서 잠시 책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오늘밤 꼭 헤어지자 얘기해야지 라고 되뇌이는 도화의 마음과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여자가 자연스럽게 내뱉을 수 있는 말들과 행동이 과거 어떤 때의 나 같아서 마음이 덩달아 무거워졌다. 어떤 시절의 내가 생각나서. 그런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도 쉽게 끊어낼 수 없는 나의 연인과,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는 척 하는건지 그저 천진하기만한 연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을 너무나 알 것 같아서 슬펐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정이란 뭘까, 사랑의 마음은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 걸까. 이런 복잡한 생각을 했던 슬프고 어두웠던 내가 떠올랐다. 이런 생각을 깊게 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 그치만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고, 자꾸만 깊고 슬픈 감정의 구덩이 속으로 끌려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원래 인생은 고단함의 연속이란다
스무살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레스토랑 서빙이었다. 8시간 동안 일을 한 후 세상 느껴본 적 없던 고단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힘들었다고 투덜대는 나에게 했주었던 엄마의 말 한마디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인생은 하루하루가 고단함의 연속이란다" 그 때는 그 말이 힘들고 낯설었던 나의 첫 사회 생활을 우리 부모님이 가여워하지 않는 것 처럼 느껴져서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더랬다. 그 때의 부모님 마음을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 겪지 못한 인생의 긴 여정을 딸내미가 담담히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에 혹은 정말 그때 겪은 그 고단함은 별 것 아닌 것을 이미 알고 계셔서 해주셨던 말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이 말씀해주셨던 것 처럼 하루하루는 여전히 고단하며 점점 더 고단해지고 있다.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때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있거든
이 책은 그 때 부모님이 나에게 해 주셨던 말 같은 삶에 관한 날카롭고도 때론 냉정한 이야기들을 해주는 것 같다. 마치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있다는 듯이 자신이 겪은 비슷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그 말들은 깊은 슬픔을 겪고 있는 주인공을 통해, 어린 손자를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할머니를 통해, 그 밖에 여러 인물들을 통해 전해진다. 때로는 "힘들었지" "고생했어" "괜찮을거야" 라는 일상적인 위로의 말 보다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냉철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단단하게 하고, 차가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슬픈 순간들
내가 겪을 '슬플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 슬플 일의 크기는 누리고 있는 기쁨과 안정감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리고 '슬플 일'은 늘 갑작스럽게 '슬픈 일'이 되었다가 '슬펐던 일'이 되곤한다. 살면서 겪은 슬픈 순간들은 모두 '관계'와 연관되어 있다. 17년 동안 기른 강아지가 처음 우리 집에 온 순간부터 언젠가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덮쳐오는 슬픔이었으며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자 현재에 최선을 다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얼마 전 외할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퉁명스러운 대화였다. 우리 강아지를 보며 늘 생각했던 것 처럼 우리 할머니가 나와 함께 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은 단 한번도 이야기 한 적 없어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늘 관계에 대해 후회한다. 좀 더 기쁘게 해드릴껄, 좀 더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할 껄, 좀 더 다정하게 대할 껄, 한 번만 더 먼저 다가갈 껄 하는 생각 ..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아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걱정하고 사랑해 주었던 사람인 우리 할머니가 떠나 가셨구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남은 걸까" 라는 것이다. 때로는 그 사랑이 버거워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이제 돈버는 어른이 되었다고 일이 바쁘고 주변 관계가 복잡해졌다라는 핑계로 할머니의 사랑을 모르는 척 했던 것 같다. 무척이나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많지만 다시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후회하지 않게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 문득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을 드린다면 할머니는 더 큰 사랑을 줄 것이고 나는 이 나의 마음을 늘 부족하고 죄송스럽게 생각할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가만히 할머니와의 지난 관계를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주지 못해서 늘 미안해 했던 할머니의 마음도 사랑이고, 더 받지 못해서 미안해 했던 나의 마음도 사랑이다. 마음이 다쳤을까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랑이다.
바깥은 여름에 담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모든 슬픔은 관계에서 기인한다.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관계가 주는 기쁨은 슬픔보다 큰 것일까. 그래서 그토록 큰 시간과 마음과 몸을 희생하는 것일까. 나도 자꾸 사랑을 주고 마음을 주면 더 잘 알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