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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13. 2023

독일 갈 건데, 어디가 좋아요?

독일생활 초창기부터 나보다 오래 산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독일 갈 건데, 어디 가야 될지 추천 좀 해줘."


독일에 들른 여행유튜버를 만났을 때, 그 역시 내 얼굴에 카메라를 대며 같은 질문을 던졌다.


"독일 여러 도시를 여행하고 살아보셨는데 어디가 가장 좋으셨나요?"

 



대략 7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질문에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맥주를 제대로 맛보시려면 어디를 가시고, 자연을 좋아하시면 이 지역을, 아기자기한 게 좋으시면 이 도시로..." 마치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누르면 음성이 흘러나오는 기계처럼 질문 버튼만 누르면 대답은 자동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게 돼버렸다. 물론 지금도 예전처럼 머릿속에 도시목록과 특징이 리스팅 되어있으니 얼마든지 얘기는 할 수 있지만 그게 정말로 '진실된 대답'일지는 모르겠다. 성인이 되어 온 이 낯선 땅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잡고, 내 가족이 생기고, 집을 마련하고, 서양사람들의 얼굴과 이름도 한국사람만큼이나 잘 구분할 수 있게 되고, 한국 명절보다 독일 명절을 달력에 먼저 체크하는 게 익숙해지면서 독일 땅 어디를 가도 나에게 '낯설고 신기한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이제 관광객이 아니구나.'


독일 북부 발트해를 볼 수 있는 Laboe(라뵈). (출처=직접촬영)


내 눈에 독일은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어디든 희로애락이 존재하는 사람 사는 사는 곳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어느 도시의 웅장한 성이나 멋진 시청사보다 앞 건물에서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 발코니 난간에서 밖을 구경하는 고양이,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산책을 나온 강아지, 새벽부터 공사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분들 - 이런 모습 뒤에 숨은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그리고 사실 여행 오시는 분들에게 '어디 어디가 좋다'라고 백 번 말씀드려도, 나중에 돌아가서 기억에 남는 곳을 물으면 실제로 각자 다른 답변을 하실 것이다. 같은 장소를 가도 느끼는 바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가 "독일 갈 건데, 어디가 좋아요?"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요. 그러니 어느 도시든 일단 그냥 끌리는 곳으로 가보세요. 그곳에서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게 당신에게 독일에 대해 가장 잘 알려줄 겁니다. 어떤 것을 경험하시든 모두 다 독일의 모습입니다. "



제목,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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