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밤 Nov 25. 2023

생일선물을 받는 대신 이걸 합니다

물건보단 기억을 선물해 줘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그래서 이맘때면 연말과 함께 내 생일도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어렸을 땐 생일이 특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 달 전부터 설렜던 것 같다. 이번엔 누가 축하를 해줄까, 어떤 선물을 받게 될까 등 '받는 것'에 대부분의 흥미가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30대를 넘기며 이젠 받는 것보다 '주는 것' 그리고 '오래 기억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이 간다.




먼저, 생일 당일 아침엔 엄마한테 문자와 전화를 드린다. n 년 전 오늘, 병원에서 힘들었을 엄마한테 고맙다고.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 것도 내가 아니라 엄마다. 한국에 있으면 끓여드렸을 텐데 그러지 못해 항상 죄송한 마음뿐이다. 나는 태어난 직후 아파서 엄마와 함께 집에 오지 못하고 병원에 몇 달간 혼자 남아있었다. 출산 후 약해진 몸을 돌보기도 힘든데 갓난쟁이를 병원에 두고 왔던 엄마 맘은 얼마나 안 좋았을까. 어느새 내가 그 마음을 헤아릴만한 나이가 되었다. 엄마도 그만큼 나이를 드셨단 뜻이겠지.


남편의 생일날 아침에도 똑같이 시어머니께 연락을 드린다. 고생하셨다고, 그리고 감사하다고. 비록 멀리 있고 언어는 다르지만 마음을 전달하는 데엔 국경이 없는 것 같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던 이탈리아 토스카나 (출처=직접촬영)


몇 달 전부터 남편이 생일선물로 뭘 갖고 싶은지 물었다. 처음엔 생각해 보겠다 했으나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명품이나 비싼 물건은 거의 없지만 솔직히 별로 필요가 없다. 뭘 갖고 싶지 않다는 건 적어도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는 뜻이니 지금의 상황에 나를 있게 해 준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남편도 올해 생일선물을 보류해 놓았던 터라, 우리는 서로의 선물 비용을 합쳐 여행을 가기로 했다. 남편도 나도 가보지 않은 곳, 너무 멀지 않으면서 추위를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는 포르투갈로 정했다. 아이러니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아닌 다른 곳을 갈 때 비로소 '진짜 휴가'라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친정과 시댁은 가족과 친구가 있어서 마음이 충만해지는 곳이지만, 완전히 모든 것에서 단절되어 떠난다는 느낌은 적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가지 않았다. 대신 유럽에 사는 장점을 이용하여 기회가 되면 휴가를 내어 가까운 유럽을 단기로 여행하는 편이다. 독일에 오래 살다 보니 솔직히 이젠 어딜 가도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상을 벗어난다는 점 자체로 휴식이 되는 것 같다.




독일인들은 적어도 크리스마스만큼은 만사 제쳐두고 가족을 보러 가는데 외국인들은 쉽지 않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 외로워지는 기간이다. 허전한 마음도 달래고 늦은 생일도 기념할 겸 연말에 떠나봐야겠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매거진의 이전글 글이 꼭 교훈적일 필요가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