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
독일에서는 2020년 초, 코로나 시기를 기점으로 재택근무(홈오피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급속하게 늘었다. 당시에는 바깥 외출 자체에 제한을 받았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직종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홈오피스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 독일의 많은 직장인들은 사무실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업무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코로나가 끝나도 사무실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고, 특수상황이었으니 결국은 다들 사무실에 돌아가는 게 암묵적으로 당연하다는 분위기였지만 독일은 달랐다. 직원들이 강경하게 의견을 합쳐 홈오피스의 일상화를 요구했다. 종종 '그래도 사무실 나가서 일하면 더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직원은 있었지만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 직원에게 게으르다느니, 월급루팡이라느니 하는 따가운 눈초리를 주는 일은 없었다. 우리 회사도 그중 하나였다.
한국에서도 비교적 유명한 독일기업인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이러한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코로나 시기 2년 간 최소 4회 이상 전 계열사 직원을 대상으로 근무형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고, 약 75%가 주 3회 이상의 홈오피스를 요구했다. 임원들은 달갑지 않아 하며 마지못해 주 2회 혹은 매니저의 승인 하에 주 3회 홈오피스를 추진했으나 그마저도 잘 지켜지지 못했다. A to Z로 모든 업무가 집에서 가능하고, 사무실에 가는 날짜도 제각각이라 같은 팀원을 보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나중에는 일주일에 2회 출근하는 직원조차 드물었다. 나도 당시 사무실에 나가면 아무도 없어서 무슨 목적으로 출근했는지 괜히 교통비만 썼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다.
홈오피스의 흐름은 직군불문 강력했다. 그리고 '원격업무가 가능한' 많은 직군들에서 아예 복지 중 하나로 '하이브리드 근무(재택+출근)' 혹은 '전면 홈오피스'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규모가 큰 회사들이 주도적이었다.
디지털노마드 하면 떠오르는 그래픽디자이너, 유튜버, IT전문가랑 아무 관련도 없는 직종도 홈오피스가 늘어났다. 그저 '인터넷과 노트북만 있으면 업무가 가능한' 직업이면 모두 해당됐고,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래픽을 다루지도, 코딩과 아무 관계없는 업무를 하지만 여전히 내 일은 '세계 어디서든' 가능하다. 내가 종사하는 분야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이다. 물론 현장직은 사업현장에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디지털 노마드에서 제약을 받는다 (그래도 다른 날에는 재택근무를 한다).
일부러 디지털 노마드가 가능한 직업을 찾은 게 아니다. 몇 년을 헤매어 정착하고자 하는 직군과 업무를 찾았는데 그게 우연히도 장소제약이 없는 직업이었다. 사실 디지털 노마드가 외부에 비춰지는 것처럼 마냥 좋고 자유로운 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여기까지 와보니 내 직업은 정말 '나다운' 것 같다. 딱 내 성격대로 성향대로 생긴 직업이다. 어떤 길이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멋대로 사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의Dave Weatherall